▲박남정의 <멀리 보이네>는 대한민국 가요 역사에서 최초로 랩이 들어간 '타이틀곡'이었다.
한국음반산업협회
물론 80년대에도 랩음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팝음악을 좋아하는 소수의 마니아들 중에는 MC해머 같은 흑인 가수들이 영어로 빠르게 말하는 음악을 '랩'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랩곡을 앨범에 실었던 가수는 1989년10월 <김삿갓>을 두 번째 솔로 앨범에 실은 홍서범이었다. 박남정 3집은 홍서범 2집보다 한 달 늦게 발매됐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초의 랩'이라는 타이틀은 홍서범에게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홍서범 2집의 타이틀곡은 <김삿갓>이 아닌 발라드곡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였다. 홍서범은 타이틀곡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입소문을 타던 <김삿갓>으로 활동곡을 바꿨다. 반면에 박남정은 앨범을 준비하던 단계부터 <멀리 보이네>를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누구라도 2집에서 얻은 인기를 이어가기 위한 생각을 했을 시기에 박남정은 음악적인 발전과 새로운 도전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사실 <멀리 보이네>는 그저 낮은 음의 가사를 빨리 읽어 내리는 수준으로 요즘의 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랩이 들어간 노래를 앨범에 넣을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하물며 박남정은 바로 직전 앨범에서 골든컵 두 곡을 배출한 최고의 댄스 가수였다. 따라서 그 시절 박남정의 음악적 변신은 그야말로 대단한 도전이었다.
음악적으로는 아주 의미 있는 실험이었지만 상업적인 마인드로 생각하면 <멀리 보이네>를 타이틀로 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은 아니었다. 댄스음악이란 것도 이제 막 익숙해지기 시작한 그 시절의 대중들은 랩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고 박남정의 <멀리 보이네>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박남정은 2집 노래들과 분위기가 비슷한 <안녕 내사랑>으로 활동곡을 급하게 바꿨지만 2집 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만약 박남정이 처음부터 <안녕 내사랑>을 타이틀곡으로 들고 나왔더라면 훨씬 더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안녕 내사랑>으로 활동했을 당시 박남정의 백댄서는 무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양현석, 그리고 콜라 리더와 코요태의 객원멤버로 활동했던 김영완이었다.
박남정 3집에는 나미의 <빙글빙글>, 소방차의 <그녀에게 전해주오>, 정수라의 <환희> 등을 만들었던 인기 작곡가 김명곤과 주현미의 <짝사랑>, 현철의 <싫다 싫어>를 비롯한 많은 트로트 명곡들의 가사를 쓴 이호섭 콤비가 4곡을 함께 썼다. 특히 이들이 함께 만든 흔치 않은 댄스곡 <스물 한 알의 포도송이>는 박남정이 1990년 겨울에 세 번째 곡으로 잠시 활동했을 정도로 사랑 받은 곡이다.
이호섭이 가사를 쓰고 박남정이 곡을 붙인 <낯선 얼굴>과 이호섭-김명곤 콤비의 <이별에서 다시 만남으로>는 '댄스가수 박남정'의 고정관념을 깨준 곡이다. 두 곡 모두 트로트 풍의 멜로디에 쓸쓸한 가사, 그리고 박남정 고유의 음색을 느낄 수 있는 노래들이다. 박남정 3집은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박남정의 음악적 실험과 보컬리스트로서 가진 음색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앨범이다.
스테이시 시은 아빠가 아닌 레전드 댄스가수
▲박남정은 <복면가왕> 출연 당시 많은 연예인 판정단이 목소리를 알아 들었을 정도로 독보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다.
MBC 화면 캡처
3집에서 주춤했던 박남정은 1990년 <여인이여>를 타이틀로 한 4집을 발표했지만 1989년의 영광을 재현하기엔 변진섭, 김민우, 조정현, 햇빛촌 등으로 대표되는 발라드 군단의 기세가 너무 대단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1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졌던 박남정은 1992년 5집 <비에 스친 날들>로 컴백했지만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겹치면서 노래의 완성도에 비해 큰 사랑을 받진 못했다.
박남정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에 활동했던 여느 인기가수들처럼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옛날가수'가 됐다. 하지만 박남정은 2004년 정규 7집을 발표하며 꾸준히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2011년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 카메오로 출연한 박남정은 2013년 JTBC <유자식 상팔자>에서 아역배우 데뷔 전의 박시은과 함께 출연하며 '딸바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박남정은 작년 한 해 동안 <불후의 명곡>과 <사랑의 콜센타>, <복면가왕>에 차례로 출연하며 아역배우 또는 스테이시 시은의 아빠가 아닌 '댄스가수 박남정'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비록 예전만큼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는 현역가수로 활동하긴 힘들지만 5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박남정이 여전히 '한국의 마이클잭슨'으로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춤-노래-음악성 겸비했던 '한국의 마이클잭슨'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