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분데스리가 라이프치히에서 주전경쟁에 밀린 황희찬이 겨울이적시장에서 '소속팀 탈출'에 실패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의 임대 이적설이 나돌았던 황희찬은 최근 소속팀 사령탑인 율리안 나겔스만 라이프치히 감독이 공개적으로 황희찬의 거취에 제동을 걸면서 그대로 팀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교롭게도 이적이 무산된 직후 소속팀 경기에서도 황희찬은 여전히 뛰지 못하고 있다. 지난 31일 열린 2020-2021 독일 분데스리가 19라운드에서 라이프치히는 바이엘04 레버쿠젠을 1-0으로 꺾었지만 황희찬은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황희찬의 후반기 행보가 여전히 순탄하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황희찬은 지난해 여름 오스트리아 레드불 잘츠부르크를 떠나 라이프치히에 입단했으나 9경기에서 고작 1골에 그쳤다. 지난해 11월에는 오스트리아에 열린 대표팀 A매치에 합류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위기에 몰렸던 황희찬은 겨울이적시장에서 돌파구를 모색했다. 특히 EPL 웨스트햄 은 황희찬의 행선지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었던 팀이다. 황희찬이 지난해 오스트리아리그와 유럽클럽대항전에서 보여준 활약상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 데다, '꿈의 무대' 프리미어리그 도전은 선수 본인으로서도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라이프치히는 황희찬의 이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겔스만 감독은 지난 29일 레버쿠젠전에 앞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팀이 공격수를 더 데려오지 못하면 황희찬을 보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분데스리가에서 선두 바이에른 뮌헨 등과 치열한 순위 경쟁을 펼치고있는 라이프치히 입장에서는 공격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공격진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황희찬까지 보낼수 없다는 의미였다.
씁쓸한 부분은 황희찬을 잡은 이유가, 선수가 반드시 전력 구상에 포함되어야 할 존재여서라기보다는, 아무리 봐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보험용'의 성격이 더 짙어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나겔스만은 황희찬이 "아직 실력을 보여줄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했다"며 후반기에는 더 출전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겼다. 하지만 이는 출전시간에 불만을 느끼는 선수를 다독이기 위한 감독들이 흔히 하는 변명이기에 100% 진심으로 믿기는 어렵다. 반드시 전력에 활용해야 할 선수라면 이적이 무산된 상황에서 동기부여 차원에서라도 뭔가 기회를 줄만 한데, 나겔스만 감독은 지난 레버쿠젠전에서도 황희찬을 끝내 배제했다.
물론 모든 선수라면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하지만 선수에게 있어서 자신이 '감독의 플랜'에 포함되어 있느냐 아니냐 믿음의 차이는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마친다. 지금은 토트넘의 에이스로 성장한 손흥민도 잉글랜드 진출 첫해는 고전을 면치못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복귀를 심각하게 고려하던 손흥민을 만류한 것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었다.
사우샘프턴 시절부터 손흥민의 영입을 원했던 포체티노 감독은 개인 면담을 통하여 그가 적응기를 마치면 EPL에서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는 신뢰를 내비치며 붙잡았다. 손흥민도 그런 감독을 믿고 고심끝에 팀잔류와 재도전을 결정했다. 결국 손흥민은 2년차부터 눈부신 활약을 선보이며 토트넘을 넘어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공격수의 반열에 올랐다.
과연 나겔스만 감독이 황희찬에게 '포체티노-손흥민'의 관계만큼 충분한 기대와 신뢰를 가지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결과적으로 '감독의 이적반대'는 선수 입장에서 비극적으로 끝난 사례가 더 많다. 한국인 선수의 사례만 놓고봐도, 크리스탈 팰리스 시절의 이청용(울산), 퀸즈파크레인저스 시절의 윤석영(강원) 등은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는 감독의 '립서비스'를 믿고 임대나 이적을 포기해야 했지만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감독의 입장에선 어차피 모든 선수에게 균등한 기회를 줄 수는 없고 팀성적이 우선이라는 상황에 따라 장기말처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코로나 확진이라는 악재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황희찬은 나겔스만 감독의 주전 라인업에서는 밀려난 상태였고 오히려 황희찬보다 더 늦게 영입한 이적생들에게 더 많은 출전기회를 주기도 했다. 유수프 포울센, 알렉산드르 쇠를로스 등을 중용한 것이나, 스트라이커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윙어자원인 에밀 포르스베리를 최전방으로 올린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만일 라이프치히가 황희찬을 보내주지 않은 이유가 선수의 필요성보다 단순히 계약조건의 차이였다면 더 걱정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라이프치히는 잘츠부르크에서 황희찬을 영입하며 약 900만 유로(약 121억 원) 정도의 이적료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입장에서 이적후 한 시즌도 제대로 뛰지 않은 황희찬을 보내주려면 먼저 투자한 이적료를 회수하고 싶은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현재 시장 상황상 그 정도의 조건을 제시하는 구단이 나오기란 쉽지않아보인다.
결국 황희찬이 이번 겨울이적시장에서 임대가 불발된 이후, 지금처럼 후반기에도 여전히 경기에 뛰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황희찬은 어쨌든 이제 소속팀에서 경기력을 증명하여 다시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과연 선수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 시련을 기회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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