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힘내라 인류! 신춘 스페셜!!>의 한 장면.
도라마코리아 갈무리
일본은 1898년 메이지유신 때부터 부부동성제를 채택해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채택해야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혼을 하면 대부분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일본에서 성을 바꾸면 신용카드나 은행 명의를 바꿔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재혼할 경우 또 다시 성을 바꿔야 해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어떻게 드라마에서 살아있는 사회 이슈를 한발 앞서 나간 감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사실 이 드라마에서는 놀랍진 않은 이야기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힘내라 인류! 신춘 스페셜!!>은 2016년 TV 시리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속편이다.
2016년 방영 당시 '계약 결혼'이라는 틀 속에 고용주인 남편이 가사노동을 하는 피고용인인 아내에게 월급을 지급한다는 이야기가 화제를 모았다. 일본의 기회비용법을 언급하며 "전업주부의 연간 무상 노동 시간은 2199시간"로 환산한 뒤 여기에 시급을 더해 월급을 준다는 개념을 드라마에 녹였다.
전업주부가 하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찾아주는 유의미한 장면이었다. 진짜 부부가 되기로 한 뒤에는 둘은 남편과 아내를 공동경영책임자로 규정하고 가사노동의 비율을 거의 5대5로 분담한다. 일상생활에서 평등한 부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4년 만에 2시간 분량의 스페셜드라마로 돌아온 속편은 미쿠리가 임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알콩달콩 하는 주인공들을 바라보다가도 곳곳에서 언급되는 동시대 사회 이슈들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출산휴가를 받아도 충원을 하지 않는 회사, 남자의 출산휴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남자 상사, 성소수자의 고백, 계획 무통분만 등 여러 에피소드를 힘 있게 그려나간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힘내라 인류! 신춘 스페셜!!>의 한 장면.
도라마코리아 갈무리
츠자키 부부가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고민하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탯줄이 가랑이에 껴 출산 전까지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없자 미쿠리는 "남자든 여자든 통용되는 이름으로 하는 건?" 히라마사가 답한다.
"그렇군요. 살아가는 가운데 성별이 변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 그것도 부모가(!) 한쪽 성별에 치우친 미래가 아니라 또 다른 기회를 열어둔다는 점은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저 대사 몇 마디에는 가족을, 사람을, 타인을, 사회를 따스하게 바라보는 확장된 시선이 담겨 있다.
부모가 되는 일은 남편과 아내의 공동의 일이라고 분명히 전한다. 히라마사는 "아이가 태어남에 있어 저는 전력으로 미쿠리씨를 서포트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미쿠리는 곧바로 지적한다.
"돕는거야? 같이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저도 아이를 낳는 건 처음이라서 아무것도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하다고요. (중략) 같이 공부하고 같이 부모가 되고 부부란 그런 거 아닌가요?"
육아가 어느 한 명만의 몫이 아니라고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평소 배려가 몸에 익고 가사노동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남성인 히라마사마저 '육아는 돕는 일'이라고 무심코 말했을만큼 육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힘내라 인류! 신춘 스페셜!!>에서 주인공 미쿠리(아라가키 유이)가 마스크를 쓰고 나오는 장면
도라마코리아 갈무리
드라마는 동시대적 문제들을 골고루 배치한 만큼 코로나 펜데믹 세상도 과감없이 보여준다. 마스크를 포함한 방역물품이 금세 동이 나고 직장에서는 전 직원이 마스크를 쓰는 장면이 그대로 등장한다. 직장에서 돌아온 히라마사는 방문 손잡이를 팔꿈치로 연다. 코로나 시대 부부에게 닥친 위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것도 몰입도를 높인다. 마스크를 낀 장면을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한국과는 대비된다.
로맨스의 외피를 두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힘내라 인류! 신춘 스페셜!!>은 강렬하게 동시대 직면한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일상에서의 깨우침을 전하는 현실감 넘치는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2시간이라는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무엇보다 코로나라는 어려운 시대를 겪어내는 인류를 기억하는 하나의 기록물로도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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