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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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프닝 장면과 함께 보면 <미스터 존스>는 존스의 역경이 갖는 가치만큼이나 그가 발견하고 전달한 진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조지 오웰이 타자기 앞에서 글을 쓰는 장면과 돼지들이 농장 안에서 요란하게 울부짖는 장면을 교차하며 시작된다. 이때 "진실은 너무 이상해서 다른 식으로 말하기 어렵다(...) 나는 괴물들의 침략을 받고 있는 시대에 산다. 하지만 그 얘기는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오웰의 내레이션도 함께 흘러나온다.
결국 영화의 오프닝은 앞으로 약 2시간 동안 들려줄 존스의 이야기가 결국 진실을 마주할 때의 아픔을 극복하는 용기와 고통에 관한 것임을 알려주는 셈이다. 작중 기자가 아닌 이들만이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세상에 알린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오웰이 존스의 목격담을 흔히 허황된 이야기로 여겨지는 소설에 담은 대목은 꼭 정해진 방식이 아니더라도 진실을 대면하고 인정하고 그것을 풀어낼 용기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4. 영화는 언론의 역할에 희망과 비관을 동시에 던지면서 마무리된다. 그 중심에는 존스의 조력자로 활동한 인물인 에이다가 있다. 월터 듀란티 밑에서 일하는 기자인 그녀는 듀란티도 인정하듯 빼어난 실력자다. 그러나 그녀마저도 생존을 위해 진실을 짐작하면서도 회피하며, 자신의 짐작이 현실이 되어 일상을 파괴하는 것을 거부하며 소련의 감시에 순응한다. 그래서 그녀는 존스가 우크라이나로 떠나기 직전 그와 더 깊은 관계를 맺기를 거절한다. 그녀에게 그는 단지 매력적인 한 남자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애써 외면하고 있던 기자로서의 정신, 윤리,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춘 불편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목숨을 건 존스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듀란티의 회유를 힘겹게나마 거절할 용기를 얻는다. 또한 안정된 직장과 일상을 거부한 채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발언의 자유가 사라져 가는 히틀러와 나치 치하의 베를린으로 되돌아갈 기개도 되찾는다. 그녀가 존스에게 자신의 힘이 닿는 한 독일에서 점차 사라지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그녀의 변화와 각오는 영화 말미 비관적인 현실을 일깨우는 자막이 흘러나오는 와중에도 언론에 기대할 수 있는 일말의 자정 가능성과 희망이 있음을 알린다.
5. 저널리즘의 본질이 진실 추구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실에서 이러한 기자들의 직업정신과 윤리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감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찾아낸 사소한 듯 보이는 불씨는 이내 세상을 바꾸는 촛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언론인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진다.
다만 강한 자부심은 강한 고집과 편견으로 변질되어 기자들이 보려고 하는 현실이 진실을 모두 담지 못하는 문제를 발생시키도 한다. 그래서 언론은 언제나 보이는 것 이면에 숨겨진 진실은 없는지를 꾸준히 성찰해야 한다. 또한 언론은 자신이 현실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자각하고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해야 한다. 이는 월터와 존스가 함께 있을 때 카메라가 그들을 직접 잡기보다는 유리창과 대리석 등에 비춘 그들의 모습을 잡는 이유다. 더 나아가 영화가 창문틀(프레임)을 통해 조지 오웰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 개러스 존스가 창문틀(프레임) 밖으로 나가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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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