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KBS2
태인현 아전들의 범법 사실을 포착한 그는 어사출도를 준비했다. 그런데 끼니를 때운 뒤 어사출도 할 목적으로, 그 직전에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국밥이었다. 객지였으니, 주막 같은 데서 먹은 듯하다. 이 식사는 그의 생애 마지막 식사가 됐다. 위 날짜 <영조실록>은 "점심밥을 먹은 일로 인해 갑자기 죽었다"고 알려준다.
당시 여론은 태인현 직원들을 겨냥했다. 태인현감과 서리들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래서 형조가 수사에 착수했지만, 증거가 나오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어사를 수행한 사람들이 "어사께서 드시고 남은 국밥을 저희들이 먹었습니다"라고 진술한 데다가 형조 역시 독살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금 혼자만 어사 파견을 주관한 게 아니었다. 삼정승 혹은 동급의 기구가 후보를 추천하고, 승정원(비서실)이 실무 처리를 진행했다. 그래서 임명 단계에서부터 비밀이 새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한양에는 말을 타고 지방으로 가서 어사 파견을 귀띔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어사가 도착하기 전에 현지 관청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당시 사람들이 홍양한의 죽음을 독살로 의심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사전에 신분이 노출됐기 때문에 어사출도 전에 변을 당했으리라는 추론이 나왔던 것이다.
신분을 밝힌 뒤에도 봉변을 당했던 어사들
홍양한의 사례는 어사 신분이 공개되기 전에 위협이 가해진 케이스인 데 비해, 지금 소개할 또 다른 사례는 신분이 드러난 뒤에 위협이 가해진 케이스다. 순조 때 암행어사인 권준의 사례가 그것이다.
정조가 죽고 10세 된 순조가 왕이 된 지 2년이 흐른 1802년 상반기에 권준은 경상도 암행어사로 임명됐다. 그는 이전에 강원도 암행어사를 역임했었다. 1801년 10월 22일(음력 9월 15일) 당시에는 사간원 정언(정6품)으로 근무했다. 홍양한보다 1단계 정도 낮은 관료였다.
경상도에 간 암행어사 권준은 안동에서 봉변을 당할 뻔했다. 하마터면 포승줄에 묶일 뻔했던 것이다. 그곳 군대 사령관인 안동영장 김치준이 그를 가짜어사로 간주하고 포박 절차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 직후의 상황은 실록에 기록돼 있지 않다.
순조 2년 4월 20일자(1802년 5월 21일자) <순조실록>에 따르면, 그 뒤 김치준은 한양으로 압송돼 문초를 받았다. 만약 거꾸로 권준이 김치준에게 포박돼 압송됐다면, 그는 폐포파립 차림으로 갔던 노선을 포승줄에 묶인 채 다시 밟아야 했을 것이다.
암행어사로 부임하기도 전에 어사 흉내를 내는 드라마 속 성이겸처럼,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는 어사 행세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 그래서 폐포파립 차림으로 어사 행세를 하고 다니며 이런저런 대접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지방 관원들은 낯선 사람이 암행어사처럼 보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부터 판단해야 했다. 이런 분위기를 악용해 일부 관원들은 진짜 어사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가짜어사로 몰아 포박하고 때리기도 했다.
권준은 다행히 포박을 면한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수 어사들은 신분을 밝힌 뒤에도 봉변을 당했다. 그래서 경험이 좀 있는 어사들은 어사 신분을 밝히기 전에 '저 사람들이 허리를 숙일 것인가 아니면 가짜어사로 오인하고 혹은 가짜어사로 몰아 나를 공격할 것인가'도 계산해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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