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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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하들은 군주에게 역사서보다는 유교 경전을 더 많이 추천했다. 유교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면 마음 수양도 되고 유교적 가치관도 함양하게 되어 유학자 출신 신하들과 호흡을 맞추기 쉬울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군주가 역사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권력의 이치에 통달하게 되어 자신들이 다루기 힘들어질 거라는 게 신하들의 우려였다. 신하들은 세상물정을 너무 잘 아는 군주를 경계했다. 그래서 역사서보다는 경전을 더 많이 추천했던 것이다.
그런데 즉위식을 앞둔 철종에게 신하들은 역사서부터 읽으라고 제안했다. 유교 경전을 배우기 전에 세상물정부터 배워야 할 청년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신하들이 철종을 낮게 평가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날 철종이 보여준 모습은 쇼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점은 그로부터 6년 뒤 철종을 만난 면암 최익현의 기록에서 드러난다. 1855년인 이 해에 만 21세였던 최익현은 훗날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떠오른다. 이때 성균관 유생이었던 최익현의 눈에 포착된 철종은 웬만한 유생들은 범접할 수 없는 상당한 학식의 소유자였다.
최익현 문집인 <면암선생문집> 연보 편에 따르면, 1855년 봄에 최익현은 우수한 성균관 유생들만 응시하는 춘도기(春到記)라는 특별 과거시험을 치렀다. 이날 시험장에 나온 만 23세의 철종은 단순히 참관만 한 게 아니라 직접 문제를 내고 채점까지 했다. 철종은 유생들을 일대일로 마주한 자리에서 고대 중국 역사서인 <서경>에서 문제를 내고 즉석에서 채점을 했다.
그런데 시험시간 내내 철종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위 문집은 "임금께서 즐겁지 않은 기색"이었다고 말한다. 유생들의 답변이 철종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철종의 표정을 단번에 바꾼 것이 마지막 수험생인 최익현의 등장이었다. 최익현이 막힘없이 술술 답변하자 철종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철종은 "순통(順通)이로다"라며 우수 판정을 내렸다.
만 18세에 10세 전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불과 6년 뒤인 만 23세에 우수 성균관 유생들을 지도할 정도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최고의 엘리트 유생들에게 직접 문제를 내고 답변을 들으며 인상이 구겨지는 모습은 그들을 가르칠 만한 단계에 도달한 사람한테서나 나올 수 있다.
이는 1849년 당시의 철종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1855년의 일이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것은 즉위 당시에 철종이 보여준 모습이 쇼에 불과했음을 뜻한다. 왕실과 대신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거짓 행동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왕위에 무사히 즉위하기 위해 거짓 연출을 했던 것이다. 철종보다 38세 많은 정원용이 그런 연출에 속아 사람을 잘못 판단했던 것이다.
이처럼 철종의 까막눈 이미지는 실제 역사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 <철인왕후> 속의 철종은 그렇게 동떨어지지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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