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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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인왕후 몸속의 장봉환은 불량소녀처럼 행동하고 있다. 철인왕후와 그 가문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은 채, 왕후의 위신을 깎아내릴 만한 언행을 서슴없이 벌이는 것이다.
철인왕후가 중전이 된 것은 안동 김씨였기 때문이지만,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행운도 작용했다. 대왕대비와의 촌수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던 데에도 기인했다.
조선시대에 왕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씨는 김씨다. 남편이 죽은 뒤에 왕비로 추존된 경우를 제외하고, 살아생전에 현역 왕비가 된 36명 중에서 10명이 김씨였다. 김씨 다음으로 많이 배출한 성씨는 6명을 배출한 윤씨다. 한편, 이씨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왕실이 이씨였기 때문이다.
왕후가 될 수 없는 혈통상의 제약이 더 있었다. 대비의 혈통도 일정 범위로 제한됐다. 철종 즉위 당시에는 대비가 셋이었다. 대왕대비·왕대비·대비가 각각 있었다. 이들 각각과 일정한 관계에 있는 여성들도 간택에 지원할 수 없었다.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경우에는, 순원왕후와 성(姓)이 같은 7촌 이내 친족과 성이 다른 6촌 이내 친족은 왕비 후보가 될 수 없었다.
철인왕후는 순원왕후의 동성(同姓) 친족이므로, 만약 7촌 이내였다면 간택에 나갈 수 없었다. 그가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원왕후와 9촌 관계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원래는 13촌 관계였지만, 철인왕후의 아버지인 김문근이 입양됨으로 인해 9촌으로 좁혀졌다.
순원왕후의 동성 7촌 밖이면 지원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촌수가 너무 멀어지는 것도 불리했다. 아무리 안동 김씨일지라도 촌수가 너무 멀면 순원왕후가 믿음을 갖기 힘들 수도 있었다. 촌수가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사람이 적격이었던 것이다. 철인왕후는 9촌이라는 점에서 이 요건을 절묘하게 충족했다.
이처럼 중전이 되는 데에 일정 정도의 행운도 작용했기 때문에, 철인왕후와 그 직계가족으로서는 중전 자리를 더욱 더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속의 장봉환은 그런 철인왕후의 속도 모르고 몸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다. 물속에서 장봉환을 만났을 때, 철인왕후는 입맞춤을 하기보다 '몸 사용 설명서'부터 건네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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