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이 7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로서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히딩크 감독은 최근 네덜란드령 퀴라소 축구대표팀의 사령탑 겸 기술위원장으로 부임했다. 계약기간은 2022년 카타르월드컵까지로 알려졌다.
퀴라소는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으로써 2010년 해체한 구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제도의 역사를 계승했다. 네덜란드의 일부지만 지역적으로는 카리브해 남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FIFA(국제축구연맹)에는 북중미카리브 축구 연맹(CONCACAF)의 일원으로 소속되어있으며 FIFA 랭킹은 80위다.
안틸레스 시절인 1958년부터, 퀴라소라는 이름으로는 2014년부터 꾸준히 월드컵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으나 본선진출 경험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북중미 대륙선수권인 골드컵에는 총 23회 출전하여 안틸레스 시절 3위를 두 차례 기록한 것이 최고 성적이지만 당시는 출전국이 4~6개국밖에 되지 않던 1960년대의 이야기다. 1970년대 이후로는 줄줄이 예선 탈락의 아픔을 피하지 못하는 등 철저히 축구 변방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퀴라소 축구협회의 궁극적 목표는 히딩크 감독을 영입해 대표팀 운영의 전문성을 더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4강 진출을 이끌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히딩크 감독은 올해로 어느덧 74세가 됐다. 지도자로 어느덧 명예롭게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됐지만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도전에 배고프다. 퀴라소를 맡기 전 히딩크 감독의 가장 최근 경력은 도쿄올림픽 준비에 나선 중국 23세 이하(U-23)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과 AFC-23챔피언십 조별리그에서 한조에 편성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98 프랑스월드컵 이후 21년 만에 히딩크 감독을 적장으로 만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듯했지만, 아쉽게도 평가전에서의 성적부진으로 지난해 9월 갑작스럽게 경질되며 히딩크와 한국축구의 재회는 불발됐다.
2002 월드컵 이후 어느덧 18년이 흘렀지만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한국축구 팬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불과 3년 전만해도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본선진출에 성공한 한국축구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깜짝 복귀설이 거론되어 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실제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복귀 가능성만으로도 여론이 상당히 들썩였을만큼 국내에서 히딩크 감독의 영향력이 아직 크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지도자로서 히딩크 감독의 전성기는 1980~1990년대 PSV 아인트호벤과 네덜란드 대표팀 등을 이끌며 유럽에서 '콧수염의 명장'으로 명성을 쌓은 1기, 2002년 한국대표팀을 맡고난 것을 전환점으로 가히 전세계를 누비며 활약한 '글로벌 더치맨' 시절의 2기로 나뉜다. 히딩크 감독은 자국 명문인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1988년 트레블(3관왕)을 달성하며 세계적인 명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1998년 월드컵에선 자국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을 5-0으로 대파하며 한국축구와 첫 인연을 맺었고 팀을 4강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 레알 베티스 등의 사령탑을 맡았지만 모두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조기에 경질되고 한동안 하향세를 겪었다.
당시 히딩크 감독에게 월드컵 개최국이지만 본선에서는 정작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 대표팀 사령탑은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축구계의 유례 없는 전폭적 지원과 홈어드밴티지, 여기에 본인의 풍부한 지도자 노하우를 결합하여 2002년 4강 신화이라는 기대 이상의 업적을 이뤄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히딩크 감독은 유럽 축구계 주류로 다시 명예롭게 귀환할 수 있었다.
이후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으로 다시 한번 복귀하며 4년간 팀을 3번이나 정상에 올려놓았고 2005년에는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성과도 올렸다. 2006년에는 호주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32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과 독일월드컵 16강을 이뤄냈으며, 2008년에는 러시아 대표팀을 맡아 유로 2008 본선 4강이라는 또 한 번의 쾌거를 일궈내며 '히딩크 매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9년에는 러시아대표팀을 겸직하면서 잉글랜드 첼시의 임시 사령탑을 맡아 FA컵 우승을 견인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0년대는 히딩크 감독의 커리어가 서서히 내리막길에 접어든 시기였다.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러시아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한 것을 시작으로, 터키 대표팀-네덜란드 대표팀 2기, 러시아 클럽 안지 마하치칼라-잉글랜드 첼시 임시 감독-중국 23세 이하 대표팀의 지휘봉을 연이어 잡았으나 모두 기대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어느덧 현대축구의 흐름에서 뒤떨어졌다는 혹독한 평가가 뒤따랐다.
네덜란드는 유럽의 축구강국이지만 퀴라소는 인구가 약 16만에 불과하고 축구 인프라도 본국에 비하면 그리 발전한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다만 본토인 네덜란드 리그(에레디비지에)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퀴라소의 이중국적 선수 중에서 수준급 유망주가 다수 존재한다는 평가다. 네덜란드내 인맥이 탄탄한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대표팀 승선 가능성이 낮은 유망주들을 퀴라소 대표팀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할 수 있다면 북중미 축구의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사실 히딩크 감독의 진가도 우승트로피 수집보다는 약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량에 있다. 과거에도 국가대표팀을 맡았을 때 이미 완성된 강팀보다는 한국이나 호주, 러시아처럼 발전 가능성이 높고 확실한 동기부여와 지원이 보장된 '언더독' 팀을 맡았을 때 최상의 시너지효과를 냈다.
알렉스 퍼거슨-아르센 벵거-비센테 델 보스케 등 동시대에 활동했던 감독들은 대부분 지도자 생활을 은퇴하거나 아예 축구계를 떠났다. 7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 이미 돈도 명예도 충분히 누린 히딩크 감독이 굳이 변방의 약팀을 맡아 고생을 사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국대표팀 시절 남긴 "나는 아직 배고프다"는 어록처럼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도전을 갈망하고 있다. 어쩌면 중국 23세 대표팀과 더불어 히딩크 감독이 맡았던 역대 최약체 팀이라고도 할 수 있는 퀴라소에서도 '히딩크 매직'은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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