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영원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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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던 SBS 금토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아래 <더 킹>)가 예상밖으로 고전하고 있다. 시청률 보증수표로 꼽히는 김은숙 작가와 한류스타 이민호-김고은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뚜껑을 열자 호평보다는 혹평이 더 쏟아지고 있다. 난해한 설정과 공감대가 부족한 스토리-캐릭터에 드라마 외적인 논란에 이르기까지, 거듭된 악재 속에 시청률도 벌써 정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 킹>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 평행세계로 공존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차원의 문을 넘나드는 대한제국 황제 이곤(이민호)과 대한민국 형사 정태을(김고은 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김은숙 작가는 그동안 국내에서 만화적인 설정과 소재를 낭만적인 로맨스로 풀어내는 데 남다른 역량을 발휘해왔다. 전작인 <시크릿 가든>에서는 남녀의 영혼이 뒤바뀐다는 황당한 설정을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냈고, <도깨비>에서는 운명의 짝을 찾아야만 죽을 수 있는 도깨비 설화를 현대적인 순애보 감성으로 풀어낸 바 있다.
심지어 귀신이나 타임슬립같은 판타지적인 소재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 <태양의 후예> <신사의 품격> <파리의 연인> <상속자들> 같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설정과 캐릭터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세계관이라는 점에는 모두 '김은숙 월드'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김은숙 월드가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작품마다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매력은,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대리만족의 효과 때문이었다. 능력있고 까칠하고 능글맞다가도,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한없이 헌신적인 '츤데레 직진남', 그러한 남주인공의 순애보에 기대어 온갖 역경과 훼방을 이겨내는 캔디형 여주인공은 김은숙 월드의 단골 조합이었다. 그것이 이민호이든, 송중기나 장동건, 박신양, 현빈이든 연기하는 배우와 캐릭터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동일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이루어질 것 같은, 이뤄졌으면 싶은 기분이 드는 이야기라는 것은, 김은숙 작가의 판타지에 몰입하게 되는 시청자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남녀의 몸이 뒤바뀌고, 도깨비가 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재벌 2, 3세가 가난하고 초라한 배경의 여성에게 빠져 구애를 하는 설정들은 하나같이 현실과 거리가 멀지만, 전작에서는 이런 설정이 이야기의 서사에 몰입하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김은숙표 로맨스물의 핵심은 남녀주인공들의 캐릭터성이 주는 매력에서 나오는 공감대였고, 판타지 설정은 필수적이라기보다는 로맨스를 받쳐주는 양념이나 과정에 불과했다.
그런데 <더 킹>에서는 판타지의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커졌다. 판타지 소재를 차용했다고 해도 등장인물의 캐릭터성은 어느 정도 현실적 공감대에 기반을 두고 있던 전작에 비하여, <더 킹>은 아예 평행세계라는 설정을 통하여 다른 차원을 넘나들며 나라도, 사랑도 동시에 지켜야하는 주인공의 분투기로 이야기의 스케일이 확대됐다. 문제는 복잡하고 치밀한 세계관 구성이나, 로맨스를 제외한 장르극을 전개하는 역량은 김은숙 작가의 장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은숙과 이민호-김고은의 조합에서 달달하게 유쾌한 로맨스 이야기 정도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더 킹> 초반부, 피칠갑이 난무하는 무거운 분위기라든가, 산만하고 난해한 세계관, 어두운 음모극과 달달한 로맨스를 오락가락 넘나드는 서사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연히 '본론'이 되어야할 주인공 이곤의 매력이나 정태을과의 로맨스에 대한 공감대가 떨어지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시청자들을 몰입시키지 못하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대사, 복장, 의상 등 디테일한 각 부분에 있어서도 위화감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주인공 이민호가 연기하는 이곤의 캐릭터가 극중에서 전혀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은숙 월드의 전작들도 구성이나 세계관을 하나하나 놓고보면 허점이 많은 작품이었지만 주인공의 특출한 매력만으로 모든 약점을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킹>에서는 일관성 없고 매력포인트도 애매한 이곤의 캐릭터가 드라마의 가장 큰 약점이 되고 말았다.
<더 킹>의 판타지는 오로지 '전지적 이곤 시점'에서만 진행되는 일방적인 이야기와 감정선부터 적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차원의 문을 넘어 다른 세계로 이동했다면 보통 사람은 당황하거나 갈팡질팡하겠지만, '주인공 보정'을 받은 이곤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금새 상황을 간파하고 빠르게 적응한다.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정태을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청혼하려는 '금사빠'로서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는 정작 자신이 다른 세계에 왔다는 사실을 자각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하대하는 '황제체'의 사극투 대사나, 당당히 무전취식을 요구하는 뻔뻔함에서는 실소가 나올 정도다. 한마디로 주인공의 행동에는 어떤 논리적인 개연성이나 설득력도 찾을 수 없다.
아직 이곤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는 극중 인물들은 물론이고, 극의 내용을 모두 아는 시청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이곤은 '여심을 흔드는 멋진 주인공'은 고사하고 그저 분위기 파악못하고 여기저기 들이대는 이상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미 캐릭터가 무너져버린 인물을 진지하게 연기해야하는 배우 이민호가 오히려 불쌍해보일 정도다.
<더 킹>은 이미 배우 정은채의 사생활 논란에서부터, 편집 과정에서의 왜색 논란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악재에 봉착해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드라마 자체의 매력이 뛰어났다면 이런 논란은 그저 부수적인 해프닝에 불과했을 것이다.
김은숙 월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맨스 세계관에 대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과, 공감대를 잃어버린 캐릭터의 붕괴가 <더 킹>의 몰락을 초래하고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기존의 흥행공식에 지나치게 안주하다가 자기복제와 퇴행의 위기에 몰린 김은숙 월드가 자초한 시련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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