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 한 장면.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나딘 라바키 감독은 극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몇 안 되는 창작자란 생각이 든다.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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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지 못하는 건 자인의 삶만이 아니다. 우리는 자인의 부모 역시 알지 못한다. 자인을 따라 그의 부모를 비난하던 우리는 이내 그 비난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다름 아닌 자인의 행동을 통해서다.
영화는 이를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세상에 던져진 자인은 스스로 부모의 행동을 따라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자인의 부모는 어린 자인의 동생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발목을 줄로 묶어놓곤 하였다. 자인은 이를 못 마땅히 여겨 동생을 묶은 줄을 몰래 풀어주곤 했는데, 그가 요나스를 책임지게 되자 그는 어느새 그의 부모가 그랬듯 요나스의 발목을 끈으로 묶어 두고 제 할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법정에서 "당신이 내 상황이었다면 달랐을 것 같으냐"고 "오직 나만이 내 자신을 비난할 수 있노라"고 절규하던 자인의 어머니를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언니였을 그녀가, 다 자라지 않은 제 딸을 팔아치우듯 시집보내기까지 어떤 일들을 겪었을지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탈북자이기도 한 장진성 시인의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란 시가 있다. 백 원에 딸을 판다는 팻말을 세워두고 딸을 팔던 청각장애 여인, 팔리는 딸 아이와 팔고 있는 모성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어미는 땅바닥만 내려 보았다고 했다. 지나치던 어느 군인이 딸이 아니라 모성을 산다며 백 원을 쥐어주자, 여인은 딸을 판 그 돈으로 밀가루빵을 사들고 허겁지겁 뛰어와서는 이별하는 딸애의 입 안에 그 빵을 밀어 넣고서 '용서하라'며 통곡했다고 했다.
누가 나쁜 것인가. 딸을 파는 여인인가, 딸을 사는 군인인가. 북한 시장의 청각장애 어미와 <가버나움> 속 자인의 어머니가, <아무도 모른다>의 집 나간 부모와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딸을 내주던 어머니가 또 얼마나 닮아 있던가를 생각해본다. 그들과 나와 내 어미는 과연 다른가?
내가 사는 이곳도 가버나움이다
▲영화 <가버나움> 한 장면. 열두 살 아이에게 어떤 손길도 내밀지 않는 세상이 '가버나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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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은 기독교 신약경전 <마태복음> 가운데 등장하는 도시다. 예수가 사랑하여 많은 기적을 행했다는 이 도시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죄악이 끊이지 않아 끝내 예수의 저주를 받고 만다. 신의 사랑을 받았으나 인간의 죄악으로 몰락한 도시, 어느덧 잊혀버린 그 도시의 이름을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으로 삼았다.
내가 사는 이 쓸쓸한 도시에 예수가 나타나 기적을 행한다 해도 나는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미 예수가 기적을 행할 법한 곳을 알지 못한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면서도 누구의 죽음과 누구의 절망과 누구의 지옥을 나는 모르는 것이다. 그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 도시에선 누구도 누구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내가 사는 이곳엔 너무 많은 불행이 있어, 나는 그 불행을 평범한 무엇으로 여긴다. 2014년 송파구의 세 모녀가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2017년엔 충청북도 증평군에서 사망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체 두 구가 발견됐다. 40대 어머니와 네 살 딸의 시신이었다. 그 한 달 뒤인가.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20대 남성과 두 살짜리 아이 시신이 발견됐다. 지난달에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 반지하방에서 치매를 앓던 노모와 5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이 죽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우리는 아무도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가버나움은 레바논 베이루트도, 다른 어느 도시도 아니다. 자인이 사는 곳이며, 무니가 사는 곳이고,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온다던 엄마를 기다리는 아키라와 교코, 시게루와 유키가 사는 곳이다. 송파구 세 모녀와 증평군 모녀, 구미시 부자와 망우동 모녀가 죽은 도시다. 그리고 나 역시, 가버나움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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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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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고소한 열두살 아이... 한국 역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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