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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멕시코에서 일어난 일... 이 영화가 보여준 '휴머니티'

[리뷰] 영화 <로마>

19.02.03 17:05최종업데이트19.02.0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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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마>의 작품 포스터
영화 <로마>의 작품 포스터 판씨네마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좋은 영화라는 평이 자자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는 프리미엄과 영화평론가들의 아낌없는 찬사 그리고 알음알음 퍼진 입소문까지.

영화 <로마>는 1971년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한 백인 중산층 가정의 이야기를 원주민 하녀 클레오의 시선으로 펼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 영화이다. 그는 "클레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다. 그녀의 상처와 나의 상처, 나아가 한 가정의 상처 그리고 전 인류의 상처를 표현(2019년 1월 3일 <씨네21> '로마' 알폰소 쿠아론 감독 "<로마>는 언젠가 만들었어야 할 영화다")하고자 했다. 그가 어릴 적 '페페'로 돌아갔다.
 
알폰소 감독은 '클레오'의 눈을 빌려 어린 시절을 재현하며 곳곳에 애정을 담아냈다. 전업 배우가 전혀 아닌 얄리차 아파리시오를 클레오역에 맡긴 것은 그로서는 모험이었을 것이다. 영리한 시도였다.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은 얄리차의 연기는 오히려 영악하지 못한 클레오의 성정에 더 닿아 있다. 그런 그녀가 관객에게 다가온 것은, 영화와 실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은 때문일지도 모른다. '클레오'라는 백인 이름보다, '얄리차'가 보다 그녀답다.

하녀 클레오
  
 <로마> 스틸 컷.
<로마> 스틸 컷.판씨네마(주)
 
'클레오'는 시골 출신 원주민이다. 그녀의 본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부모의 곁을 떠나 도시에서 하녀로 살아가는 까닭은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아서일 테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운명이다. 함께 일하는 하녀 아델라(낸시 가르시아)도 같은 처지다. 하지만 이 둘은 신세 한탄에 젖어있지 않다. 쾌활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알량하나마 인생을 즐기기도 한다.

클레오에게는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가 있다. 수줍은 연애는 달콤했다. 하지만 애인 페르몬(호르헤 안토니오 게레로)은 연애의 목적이었던 섹스를 이루고 클레오가 임신하자 버린다. 클레오가 임신 사실을 말하자마자 극장에서 줄행랑을 놓는 페르몬의 비겁함은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말해 준다.
 
클레오는 어린 '페페'(마르코 그라프)와 '소피'(다니엘라 데메사)를 엄마처럼 돌본다. 페페와 소피도 클레오를 무척 좋아한다. 엄마보다 하녀 클레오를 더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은 낯설지만 낯설지 않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정서적 친근함을 제공하던 흑인 여성 하녀 캐릭터는 미국 영화에 이미 익숙하게 등장해 왔다. 영화 <미씽>에서 '한매'는 조선족 출신 아기 돌보미이다. 엄마의 대리자라 하기 무색하게 친모보다 아기에게 헌신한다. 지독한 아픔을 가진 채. 그러나 아이들과 유대가 아무리 끈끈하다고 해도, '하녀'는 '인종'과 '계급'의 벽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로마>에서는 어떨까?
 
주인집 가족들
  
 <로마> 스틸 컷.
<로마> 스틸 컷.판씨네마(주)
 
클레오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페페네 가족은 클레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것과 가족인 것은 다르다. 페페의 할머니는 클레오에게 아기 침대를 사 줄 만큼 '친절'하다. 하지만 클레오의 이름, 나이를 묻는 병원 직원의 질문에 하나도 대답하지 못한다. 의사인 페페 아버지 '안토니오'는 위중한 상태로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 와 있는 클레오를 위로하지만 그녀의 고통을 나눌 마음은 없다.

페페의 엄마 '소피아'는 클레오의 딱한 처지를 도울 정도의 '휴머니티'는 있다. 하지만 사산을 하고 심신이 약해진 클레오를 바닷가 휴가에 굳이 동반시킨다. 그녀는 아이들을 혼자 돌볼 수 없다. 다들 클레오를 사랑한다지만, 쉴 새 없는 집안 일과 아이를 돌보지 않는 하녀인 클레오는 그들에게 존재할 수 없다. 내가 누리는 편안함이 타인의 불편함에 기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종종 모른 체하며 산다.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는 남편 안토니오와 이혼의 위기에 처해 있다. 다른 애인이 생긴 안토니오는 이제 소피아와 아이들을 떠날 참이다. 아이 넷을 부양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제 혼자 아이들을 키워야 할 소피아는 어떻게든 힘을 내보려 한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살아야만 하는 그녀는 네 아이들을 지킬 것이다. 남편 대신 클레어에 의지하며. 소피아는 다짐한다. "엄마한테는 또 다른 모험이 될 거야. 우리는 뭉쳐야 해." 아이들은 부모의 이상기류를 본능적으로 감지하지만 드러내놓고 묻지 못한다. 압도당할 진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은 받아들이겠지만, 자기들을 고아처럼 버린 아버지를 용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971년 멕시코시티
  
 <로마> 스틸 컷.
<로마> 스틸 컷.판씨네마(주)
 
민간 용역 진압대가 훈련하는 장면에서 흘깃 흘러나온 "차렷"이란 기괴한 구령에 나는 잠깐 멈춤 버튼이 눌러졌다. 1971년 멕시코시티는 1980년 광주를 불러냈다. 1968년, 68혁명의 도도한 물결을 타고 멕시코시티에 반정부 민주화시위가 있었다. 올림픽을 앞둔 멕시코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강경 진압하다 발포했다. 무고한 사망자가 이백 명이 넘었고 실종되거나 끌려간 시민들도 부지기수였다. 기시감이 든다.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의 만행은 시공을 넘나들며 정의를 부순다.
 
<로마> 속 1971년 멕시코시티에서는 1968년 학살을 추모하며 시위가 계속된다. 군대가 진압훈련을 시킨 민간 진압대에 페르몬이 있다. 따뜻하게 기억할 어린 시절이 한 조각도 없는 페르몬은' 이망생'을 벗어날 길로 살인청부업자를 선택한다. 사람을 죽여 공을 쌓아도 그가 바라는 삶은 오지 않을 것을 부정한 채. 억압받은 자가 그 고리를 스스로 끊어 내는 일은 이토록 어렵다. 출산 준비를 하러 시내에 나간 클레오는 총을 들고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페르몬과 맞닥뜨린다. 아이의 아버지가 살인 용역 깡패라니. 클레오는 충격과 공포로 조산하게 된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무자비한 시위 진압으로 병원에 너무 늦게 도착한 클레오는 사산한다. 심장이 뛰지 않는 아기를 심폐 소생하는 현장은 무력하다. 자궁에서 겨우 빠져나와 생명이 되었는데 이미 죽었다니. 목숨을 걸고 낳았지만 죽어 버린 아이를 가슴에 안는 이의 마음은 어떤 걸까? 클레오의 고통은 상실보다 미안함으로 사무친다. 자식을 잃은 깊은 죄책감은 총을 들고 설치는 페르몬에겐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클레오에게만 현실이다.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로마> 스틸컷
<로마> 스틸컷판씨네마(주)
 
바닷가에 여행 온 아이들 넷은 파도와 태양을 맞고 부드러운 모래밭에 뒹군다. 페페와 소피가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조그만 몸들은 의지와 달리 크게 달려드는 파도에 먼바다로 밀려난다. 아이들이 큰 파도에 눌려 돌아오지 못하자, 클레어는 무작정 바다에 뛰어든다. 작은 그녀의 키를 훨씬 넘는 파도가 그녀를 덮친다. 클레어는 파도가 집어 삼키려는 페페와 소피를 겨우 꺼낸다. 구해낸 아이 둘을 끌어안고 안도하며 클레어는 고백한다. "아기가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낳은 아이는 잃었지만 두 아이는 붙잡을 수 있었다. 아이들을 살린 그녀는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죽은 아기를 애도하며.
 
파도에서 탈출한 셋은 서로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은 안다. 클레어가 수영을 못 한다는 것을. 이 바닷가 풍경은 이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살다 문득 이 기억을 꺼내들 때, 그들의 시린 마음은 따뜻하게 데워지리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됐습니다.
로마 알폰소 쿠아론 감독 클레어, 얄리차 멕시코시티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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