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그러나 신의 대리인은 따로 있다. 영화가 말하고 있는 신이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레바논의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고려하면 자연스럽다. 자인과 라힐이 갇힌 구치소에는 다양한 종교인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무거운 배경음악과 함께 종교가 주는 위안의 바깥을 조명하려 한다.
악기를 들고 찾아온 한 무리의 종교인들과 수감자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순간에도 고통에 젖어있는 얼굴들, 한 곳을 향해 기도하는 무리 사이로 슬픔에 잠긴 얼굴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들은 신의 은총 바깥에 있다. 한 화면에 담긴 이 두 극명한 대비는 마치 가시화된 은총의 경계선처럼 보인다. 그 뚜렷한 구분을 응시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제목 '가버나움'의 역설이다.
성서에서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가장 많은 기적을 베푼, '예수의 도시'다. 그러나 이 은총의 도시는 책망 끝에 멸망을 경험한다. "화가 있다.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는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성서의 이 구절에서 가버나움은 의인화되어 '은총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은총을 이미 얻었으나 공의로운 신의 나라를 이루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돌이키지 않은 사람들이 책망받고 있는 것이다. 가버나움의 은총은 신의 나라, 즉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차별이 없는 나라를 이루어야 할 책무와 함께 주어진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했던 예수의 가르침처럼 신의 나라가 이 땅에서 구현될 수 있다면 은총은 탈종교적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 이때 자인이 갖지 못한 최소한의 권리는 곧 은총이다.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를 가르는 비정함, 그 경계가 선명할수록 가버나움의 책망은 무겁게 다가온다. 존재를 잃은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예언자와 같은 자인의 목소리가 새해 초 강력한 경종으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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