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인터뷰 차 방문했던 태릉실내빙상장. 쇼트트랙 락커룸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당시 만난 한 선수의 어머니는 사건 발생후 락커룸에 자물쇠가 채워졌다고 말했다.
박영진
더는 선수들을 좌절하게 만들지 말아야
지난 7일 심석희 선수는 자신이 과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어렵게 밝혔다. 그가 피해를 폭로한 것은 빙상연맹이 해체되길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체육계의 악습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심석희를 지지한 것도 결국 빙상계 선수들이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석희 선수의 폭로 후 보름가량이 흐른 현재, 한쪽에서는 지속적으로 폭로를 이어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형국이다. 21일 기자회견으로 양측의 신경전은 더욱 거세지며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체육회마저 빙상연맹 해체를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양측의 공방전과 체육회의 꼬리 자르기 시도로 결국 선수들에게 다시 화살이 돌아오는 모양새다.
그동안 연맹과 체육회는 자신들의 존재의 목적인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힘쓰기보다는 책임 전가를 비롯해 책임을 부인하고 심각성을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나서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부상과 끊임없이 싸우다가 눈물을 흘리고, 제대로 된 지원이나 후원이 없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 시름하면서 오늘도 스케이트를 타는 선수들이 상당수다. 그런데 일부 지도자와 코치의 잘못된 행동으로 상처 받고, 체육회마저 이들을 먼저 보호하려 하기보다는 미봉책으로만 덮으려고 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은 현재 빙상계 선수들은 물론 미래의 심석희·이상화·김연아 등을 꿈꾸고 빙상장을 찾으려는 이들마저 참담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17일 기자가 인터뷰차 방문했던 태릉 실내빙상장은 조재범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언급된 곳 가운데 하나였다. 성폭력 혐의가 알려진 직후 이곳에 보안시설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 지적됐지만, 그로부터 약 열흘가량이 지난 뒤에도 CCTV를 비롯한 주요시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딱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쇼트트랙 대표팀 라커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는 점. 완전히 잠겨버린 문이 마치 선수들을 숨막히게 만드는 현재 빙상계의 현실처럼 느껴졌다.
진정으로 빙상계가 나아지길 바란다면, 순수하게 꿈만을 바라보고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보다 명확한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언제까지 빙상계 선수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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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