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4일 오전 서울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탤런트 고 최진실의 운구차량이 경기도 성남시 갈현동 영생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성호
이렇듯 20년 넘게 톱스타의 자리를 지켰던 최진실은 대중과 가장 가까웠던 인간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신비주의'가 연예계에 광풍처럼 몰아닥쳤을 때도 그는 끝까지 대중 곁에서 친근한 미소를 보여주었고, 서민적인 말투와 소박한 미소로 여느 톱스타답지 않게 언제나 살가운 며느리이자 귀여운 막내딸 같은 이미지를 자랑했다.
돌이켜보면 최진실은 이미지 메이킹에 있어서 타고난 승부사였다. 20대에 귀엽고 상큼한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그는 30대에 이르러서는 똑소리 나고 현명한 맏며느리 이미지로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으며, 온갖 풍파를 겪고 홀로서기에 나선 40대에는 다소 억척스러우면서도 소녀 감성을 간직한 엄마이자 아줌마로 자연스럽게 변신했다.
여러 위기 상황과 굴곡 속에서도 최진실이 여전히 최진실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진실은 대중과 함께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나이에 맞는 역할과 작품을 적절히 소화해 내는 동시에 여전히 젊고 귀여운 감성을 은근히 드러낼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2000년대 들어 고 조성민과의 결혼과 이혼, 가정폭력 등으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곧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최진실 특유의 '친 대중적' 성향이 큰 몫을 차지했다. 대중에게 최진실은 단순한 배우가 아니었다. 언제든 TV를 틀면 나와야 했고, 옆에 있으면 당장이라도 웃고 떠들 수 있을 것 같은 가족과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실제로 최진실은 주변 사람을 매우 좋아하고 사랑한 배우였다. 힘든 촬영 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별명이 '삼자대면'일 정도로 친구들의 일에 앞장서며 나설 줄 알았으며, 어떤 어려운 부탁에도 "그렇게 쉬운 이야기를 뭐 그렇게 어렵게 하니?"하며 선뜻 나섰던 사람이었다.
시대의 아이콘, 영원히 잠들다
그녀는 80-90년대 대중문화계를 관통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큰 사랑을 받은 '마지막 신데렐라'였다. 뛰어난 미모도, 신들린 듯한 연기력도 가지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수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최진실이었지만 2008년 10월 2일을 끝으로 영원히 볼 수 없는 별이 되었다.
문화 평론가 조지영의 말처럼,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한 여자. 쉽게 사랑 받았고, 쉽게 버림도 받았던 여자. 눈물도 웃음도 많았던 그 여자가 떠났다. 우리는 요정으로 나타나 연인이었다가 누이이자 언니였고, 아내 혹은 며느리이자 엄마가 되어 주던 사람, 언제나 돌아보면 거기 있어줄 것 같았던, 대체 불가능한 시대의 아이콘을 그토록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최진실이 떠난 지 10년, 그녀는 가고 추억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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