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나> 스틸사진
영화사 마농
그리고 나는 이제 영화가 왜 한나의 사소한 일상을 집요하고 길게 담았는지 이해한다. 밀쳐진 삶이라고 가치가 없는 삶은 아니다. 그런 인생에 일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참하리만치 사회에서 비가시화 되어있고 그래서 누구도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어딘가에선 먹고, 마시고, 집을 정돈하고, 잠을 청한다. 한나는 그리고 한나와 같은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한나>의 롱테이크는 이 당연하지만 쉽게 무시되어온 사실을 치열하게 인지시키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한나의 남편이 왜 감옥에 갔고 어쩌다 가족 관계가 파탄이 났는지 설명하지 않은 게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관객이 한나의 행적을 알고 그녀를 판단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녀가 그런 삶을 살만한 일을 저릴렀다고 평가할 가능성을 차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을 보며 선입견 없이 한나의 일상에 함께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외된 자리에서 느껴지는 고요와 적막을 체험할 수 있다. 때문에 내게 <한나>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퀴어'한 영화로 다가오기도 한다. <한나>는 소수자의 삶을 세상에 기입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며 윤리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연극수업에서 한나는 자신이 준비한 연기를 보여주려다 실패하고 집으로 향한다. 그녀가 지하철의 기둥에 몸을 기대고 열차가 출발하자 한나와 같은 자세의 탑승객들이 무수하게 화면을 지나간다. 이 장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정도만 다를 뿐 우리가 인생에서 늘 주인공일 수는 없다. 심지어 기회가 찾아온 순간에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실패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누구나 소외의 경험은 한 번쯤은 하기 마련이다. 화려하고 주목 받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이 외로움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한나였다'는 말이 그런 의미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나의 삶이 우리의 것은 아니지만 때로 나는 그녀와 비슷한 위치에 서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인생이 견딜 수 없이 하찮다고.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일상을 묵묵히 살아나간 한나를, 그 곁에 끈질기게 서있던 카메라를 생각한다. 나는 감히 나의 인생을 하찮다고 말해선 안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한나에 대한 큰 모욕이다. 우리는 모두가 한나였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밀쳐진 이들의 삶을, 때로는 밀쳐지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알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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