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이'
시너지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 클로이가 자신이 이야기한 일,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일을 다른 어떤 캐릭터가 아니라 그녀가 해낸 것이 <클로이>의 가장 급진적인 면이 아닐까 싶다. 결국 캐서린과의 관계를 유지할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자 클로이는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캐서린이 아니라면 그녀의 아들이라도 갖겠다고 협박한다. 자신을 위협하는 클로이에게 캐서린은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클로이는 캐서린에게 키스할 것을 요구하고 두 사람은 입을 맞추지만, 캐서린은 유리창에 비친 아들의 모습을 보고 황급히 클로이를 밀어낸다.
나는 그 순간에 클로이가 깨달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녀와 캐서린이 느꼈던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음을, 하지만 캐서린에게는 보다 더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음을. 클로이를 곁에 두며 캐서린이 자신의 가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클로이는 캐서린에 대한 애착을 거두지 않고 멀어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녀의 바람대로 사라지고자 한다. 그녀가 캐서린의 눈앞에서 세상을 떠나는 길을 택한 이유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화가 그녀의 퇴장을 아름답게 묘사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녀는 사랑을 했다<클로이>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인터넷을 검색했다. 대부분의 관람객 평가들이 이런 식이었다. '애정 결핍이었던 여성의 잘못된 선택', '광기와 집착이 만든 비극적 최후'. 너무 화가 났다. 왜 클로이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광기인 것일까. 그녀의 '선택'은 왜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가. 클로이가 성매매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가 이성애 결혼 관계 내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 규범은 체제 외부의 사랑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든다. 아예 감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추행 혹은 광기로 치부될 뿐이다. 누가 더 성실했고, 더 많은 것을 포기했으며, 그 내용이 무엇이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다른 모든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은 보편이자 모범으로 남는다. '사랑이 광기와 집착으로 변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치정극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이유다.
▲영화 '클로이'
시너지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는 캐서린의 아들과 데이비드 그리고 캐서린의 모습을 차례로 비춘다. 그리고 끝에는 화면 위로 클로이가 캐서린에게 그토록 선물하고자 했던 머리핀이 등장한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이 무엇을 외부로 두고 배제하면서 유지되는지 상징한다고 적으며 글을 마치려 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보다 캐서린이 자신을 향한 클로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기억하려 했다고 믿고 싶다. 응당 그래야만 한다. 내게 있어 클로이는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한 캐릭터였다. 단지 그 마음이 제도와 규범을 벗어나있기에 편견과 오독에 휩싸일 여지가 많았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애정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그렇게 읽고 싶다. 그녀의 이름은 이 영화의 제목이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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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의 광기와 집착? 그녀는 '사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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