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에서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가 4년 만에 바로 세워졌다.
유성호
- 방송분을 보면,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다가 중간에 직립일 상황을 삽입하셨던데 이유가 있을까요?
"전체 구성은 그날의 일이에요. 5월 10일이라는 하루의 기록인데 그때를 기점으로 5월 10일이 오기까지 과정이 있잖아요.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 과정이 있고 유가족은 그들대로 중간 중간 일들이 있었죠. 5월 10일이라는 날을 기준으로 오가는 구성을 만든 거죠."
- 어떤 사람이 밤에 아이들 사진에 비비탄 총을 쏜 장면이 나오던데요."컨테이너에서 어머님들이 숙식하세요. 전날 밤 10시 이후인 것 같아요, 어머님들 말에 의하면 폭주족 비슷한 차가 왕왕거리면서 지나갔대요. 그땐 '왜 이리 시끄럽냐' 정도였는데 이튿날 보니 그런 거죠. 그래서 폭주족 사람들이란 의심을 하시고 인양분과장님이 CCTV 확인한다고 하셨는데 저희는 못 오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까지 못 담았죠."
- 어디에 중점을 두고 이번 다큐를 만드셨나요?"제목이 '누운 배 94일의 기록'이잖아요. 바로 세우는 목적이 미수습자들 더 찾기 위해서잖아요. 또 침몰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명확히 규명된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적폐를 바로 세운다는 거죠. 이 세 가지가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목적이거든요. 방송 중간 중간 멘트가 나갔어요. 그런 부분을 가지고 뼈를 만들어서 간 거죠."
- 마지막 부분에서 세월호 내부를 담으셨던데."내부 모습은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배 안에서 아이들이 뛰어놀았고 4월 15일 잠을 잤죠. 아이들이 부푼 마음으로 갔을, 수학 여행길의 마지막 장소라서 꼭 보여주고 싶었죠. 시청자들이 그걸 보고 비록 지금은 망가졌지만, 저 안에 차가 있었고 등등... 침몰 전 모습을 상상하면 좋겠어요."
- 방송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면 다를 것 같아요. 실제 내부 모습은 어땠나요?"저는 2월 5일 밤에 목포 신항에 가서 세월호를 봤어요. 불이 켜져 있었는데 유가족분이 옆을 지나치며 아이들이 옆으로 매달려 있는 거 같다는 말씀을 하더라고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하늘로 올라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바로 세워서 아이들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부에선 특히 기관실이 굉장히 위험해요. 저희도 처음 갔을 땐 못 들어갔는데, 소장님 설득해서 선조위 사무처장님하고 같이 들어갔거든요. 촬영하는 사람은 그런 위험 요소를 생각하고 가긴 하는데 '이게 과연 배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A데크, B데크가 객실이고 C데크, D데크가 화물칸이고 E데크가 기관실이에요. 저희는 기관실까지 들어간 거죠. C, D데크는 넓어요. 기관실은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곳이에요. 기관실은 일하는 사람 이외엔 못 들어가는데 거기서 일반인 유해가 나왔어요. 물에 쓸려 들어간 거죠. 기관실 쪽은 그 당시에도 위험했어요. 미끄럽고 뻘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작하는 사람 입장에선 위험보다는 저곳에 어떤 의문이 있을지가 더 궁금했어요."
- 촬영하며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촬영 초반엔 유가족분들이 마음을 안 열어주셨어요. 거기에선 416연대 기록단이 상주하며 촬영하고 있었거든요. MBC 이미지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과거의 그런 껄끄러움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 MBC 스페셜 >로 다큐 한다고 잘 설명해드렸지만 저희와 거리를 두는 게 보였어요. 저희는 빨리 친해져야 할 분들인데... 제가 416연대에서 활동했다거나 이전에 유가족들을 만난 것도 아니어서 같은 마음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밤에 야식을 사가지고 가서 같이 먹기도 했고요, 매일 출근해서 촬영 전에 유가족 컨테이너에 가서 인사드리고 그랬어요. 유가족분들 마음을 열기까지가 가장 힘들었죠."
- 촬영하며 느낀 점도 있을 것 같아요."저는 늦게 애를 낳았지만 비슷한 부모 세대거든요. 젊은 부모 중 한 명일 수도 있어요. 저 역시 부모 마음이었어요. 저렇게 만든 원인이 뭘까 생각하게 됐죠. 같은 부모로서 분노가 있었고 그 다음 감정은 창피함이었어요. 직접 와서 보니 마음으로 와 닿는데... 분향소 있을 때 안산 간 것 외에는 없거든요. 그런 부분 때문에 굉장히 미안했어요. 세월호를 왜 세워야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게 반드시 세워져서 유가족분들이 원하는 정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들은 세월호가 바로 서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 된다고 했어요. 사실 전 잘 이해를 못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알겠더라고요."
"대한민국의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했다"
▲세월호 참가 유가족들이 지난 5월 10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에서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 바로 세우기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유성호
- 촬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엔 세월호 현장 일반인 참관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도 있었고 (세월호 희생자들) 또래인 대학교 2학년 학생들이 단체로 온 적도 있었어요. 특히 4월 말 비 오던 일요일에는 목포 소재 여고생들이 단체로 왔는데 세월호 모습을 보고 우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저 안에 언니·오빠들이 며칠 동안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고 왜 어른들이 빨리 구해주지 않았을까란 생각에 어른들이 미웠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대한민국의 같은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했고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어요. 집에 있는 우리 딸도 같은 생각이겠구나 했지요.
제가 20여 년 동안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인터뷰어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4월 15일 밤 노란나비를 만들고 있는 유가족 컨테이너에서 어머니들께 질문을 하고 있었어요. 건우 어머님이 정문 앞에 있는 아이들 사진을 매일 닦으며 '이 사진 속에 우리 아이가 없었으면 난 유가족이 아닐 텐데'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로서 꿈같은 간절함이 느껴졌어요. 원래 PD는 인터뷰어 앞에서 감정을 비치면 안 되는데 그때 처음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다신 이런 일어나지 말아야죠. 아픈 일로 인터뷰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 이번 다큐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일부에선 '돈 그렇게 들여서 굳이 세워야 하냐'고도 말해요. 그런 분들이 방송을 보시고 왜 이 배가 세워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 가지라도 알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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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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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왜 세우냐'는 분들, 이거라도 아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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