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브라더스코리아
놀란은 <인터스텔라>로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 중심엔 다른 누구도 무엇도 아닌 '인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볼 거리와 감상할 거리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으면 했을 텐데, 보는 이로 하여금 과학적으로 단련된 상상력의 구현과 함께 그와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랑과 가족애가 돋보였다.
영화는 현재까지 물리학, 그중에서도 우주론에 입각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들이 다수 나온다. 인듀어런스호가 웜홀 입구로 가기 위해 화성 주변에서 화성의 중력을 이용하는 건 '중력기둥'이라 한다. 인듀어런스호가 계속 회전하는 이유는 '등가원리' 때문이다. 이것을 활용하면 인위적인 중력을 만들 수 있어 불편함 없이 우주선 생활이 가능하다. 그리고 '블랙홀과 웜홀'이 있다.
<인터스텔라>는 블랙홀의 '중력렌즈' 효과, 즉 블랙홀을 원반층이 적도를 가로지르고 있고 블랙홀 주면으로 고리 모양의 층이 보이는 모습을 최초로 묘사했다. 웜홀을 이용한 시간여행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인데, 영화의 감수를 본 세계적인 학자 킵 손은 웜홀의 입구를 광속으로 운동시킬 수 있다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영화는 그의 주장에 입각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놀랍도록 비영화적인 이론에 놀란의 상상력이 입혀지니 경이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압도한다. 그런데, 거기에 '사랑'이라는 옷을 입히니 많이 어설퍼 보인다. 아니, 사랑이라는 건 옷 따위가 아닌 결정체이니 '과학'의 옷을 입히고자 했다는 게 맞다. 하지만 과학이 쏘아보낸 강렬함이 눈길을 모조리 뺏아가 버리니 사랑의 위대함이 오히려 묻혀버리고 만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한 마리 토끼만 그것도 의도치 않은 토끼만 잡은 셈이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실상 반쪽 짜리, 아니 반쪽도 못 되는 정도이지만, 그 반쪽 짜리가 엄청난 힘을 발휘했기에 이 정도 대접(?)을 받는 것이다. 적어도 그 힘과 영향력에 대해선 이의가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돌고 돌아 다시 '놀란'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놀란이 설 자리는, 놀란의 전후 작품들보다 훨씬 적다. 경이로운 볼 거리에 압도 당하고, 블랙홀과 웜홀 등에 관한 과학적 논란에 흥미를 빼앗기고, 점점 사랑의 산으로 향하는 영화를 향한 호불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 영화만큼은 귀결점이 놀란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누구도 아닌 놀란의 영화에서 놀란을 빼놓을 순 없다. 놀란의 생각과 의도를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건 큰 차이다. 그의 필모와 인터뷰를 살펴 봤을 때, '인간'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결국 과학도 사랑도 모두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리라. 쿠퍼가 NASA에 가게 되어 우주 저 멀리까지 가게 된 것도 결국 알 수 없는 '그들'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 때문이지 않은가.
문제는, 우주를 은하계를 심지어 시간을 관통하고 관장까지 하게된 인간의 중심성이 과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 <인셉션>과 달리 밖으로 밖으로 나간 <인터스텔라>의 성향과 맞지 않았을지도. 과도해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아무도 알아채려 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부분에서 놀란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다시금 '인간'에 천착한 놀란은 <덩케르크>로 성공과 부활을 만끽했다.
그의 차기작도 인간에 천착할 것은 명약관화이다. 그가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다른 <다크나이트>를 보고 싶다고 하면 너무 큰 바람일까. 내러티브와 스타일에 매몰되지 않고 완전히 장악한 그의 면모를 말이다. 기대는 기대를 낳고 실망은 실망을 낳지 않는 법. 크리스토퍼 놀란을 향한 기대는 영원할 듯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공유하기
기대보단 아쉽지만, '놀란'이니까 다시 볼 수밖에 없는 영화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