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스틸 컷.
인디스토리
- 전반적으로 리듬이나 호흡이 신인답지 않은 안정감이 도드라진다. "좀 더 어려운 것들을 선택하고 싶었다. 사실 시나리오 구상부터 어려워하는 지점들이 많았다. '중년 남성 캐릭터를 어떻게 대상화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부분들이나, '무성영화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경솔하게 고전을 다루면 안 될 것 같았다. 노력해서 중간 지점을 찾아내고 싶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상업영화들이 그런 중간 지점을 잘 찾았다고 생각한다. 상업성과 대중성을 같이 가져가는 영화들이었다. 그런 영화들이 점점 사라졌지 않나. <미스터 모>도 그런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비 관습적이라고 하는 것들도 관습을 알아야 깰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더 관습적인 걸 가져온 것도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들을 좋아했나. "워낙에 많았지 않나. 영화 <장화, 홍련>(2003)도 그랬고 <올드보이>(2003) <살인의 추억>(2003)처럼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들을 보고 자랐다. 외국 감독으론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을 좋아한다. 소시민, 노동자가 등장하지만 갑작스러운 해피엔딩이 기만처럼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치열하게 보여준 뒤 캐릭터들에게 그런 순간을 주니까.
영화감독이 소수의 엘리트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면서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앞으로도 극 영화를 계속할 건데 저도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영화를 하고 싶다."
- <미스터 모>가 암 선고를 받은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허진호 감독의 영화 <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가령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면, 비극의 제재에서 희극성을 이끌어내려 했던 내 목표와 잘 맞을 거라 생각했다. 위암으로 결정한 것도 모금산이 암 투병을 시작해도 치료가 가능할 것 같아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야 영화를 끌고 갈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대신 대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었다. 전체적으론 무성 단편이 단초였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블랙코미디라 영화를 규정하고 시작했다."
- 그래서 더 모금산이 스데반과 예원에게 언제 암을 알리는 지가 관건이라 느꼈다. 신파로 활용하거나, 반전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테다."암 투병이란 설정을 가지고 감동을 자아낸다거나 눈물을 쥐어짜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분명 어떤 지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텐데, 대상화하지 않으면서도 쿨하게 넘어가지 않는 지점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또 모금산은 내가 좋아하고 되고 싶은, 보고 싶은 인간형이다. 죽음이 다가올 때, 너무 경솔하거나 왁자지껄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감내하고 넘어가는 사람이다. 나 또한 그런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불행한 사건이 닥쳤다고 하더라도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 주변 캐릭터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들에게도 애정이 묻어난다. "한 번 등장한 캐릭터라도 나중에 반드시 거둬들여야 하니까. '잠깐 등장하더라도 캐릭터들을 소비시키지 말자고, 영화의 캐릭터가 인간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 작은 아버지 역의 김학선, 연정 역의 김정영, 치킨집 사장 역의 유재명 배우 등 모금산 주변 캐릭터들이 연기 잘하는 배우들로 채워졌다."김학선 선배님을 가장 먼저 캐스팅했다. 단편 <아빠의 맛>에 평범한 아빠로 나왔는데 그 이미지가 정말 좋았었다. 가장 먼저 캐스팅했고 이후에도 캐스팅 디렉터 수준으로 도움을 많이 줬다. 사실 유재명 배우는 모금산 역할을 하고 싶어했는데 기골이 너무 장대해서 채플린과 안 어울리고 너무 젊었다(웃음). 또 김학선 배우와 김정영 배우가 부부 사이인데 캐스팅할 땐 서로 캐스팅됐는지도 몰랐다(웃음). 부부 역할도 아니었고.
다들 제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우연히 시기가 잘 맞았다. 고원희, 전여빈, 오정환 배우는 모두 처음 만나 작업했다. 시나리오 보여주고 미팅하면서 '포멀'하게 캐스팅했다. 독립영화인데 신인 배우, 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랑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 타이틀 롤인 기주봉 배우와 작업해 본 느낌은 어떤가. "평소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데, 그 말씀들이 교훈처럼 많이 와 닿았다. 또 가깝게 느꼈던 것 같다. 장벽 없이 나의 친구, 나의 선배로 느끼도록 허물없이 대해 줬다. 일화가 많다. 길을 가다 고등학생들이 '선배님, 좋아요. 우리들도 연극하는데 만나서 영광이에요'라고 반가워하자 어디 들어가서 같이 얘기 나누고 그러더라. 누구를 만나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줬다. 선배의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 덕분에 현장 분위기도 더 좋아졌다."
- 저예산 현장이라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하나부터 열까지, 저예산이라 걸리지 않는 게 없었다. 흑백이라 미술이 더 중요했다. 패턴이나 색보다 음영에 집중하느라 집안 가구 배치부터 장판까지 세세하게 신경 써야 했다. 많은 돈은 들일 수 없으니 가구를 직접 구하러 다녔다. 이상은 높은데 구현은 어려웠다. 없는 돈으로 어떻게 최선의 결과를 낼 것인가를 매일 고민했다. 매 공간마다 미술 세팅을 아예 새로 해야 했고 소품들도 각자 공수해 왔다. 기존 공간들의 장점도 최대한 긁어모았다.
또 레커차를 쓰지 못해서 차에 카메라를 달았다. 위험한 촬영이긴 했는데 최대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미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기주봉 선배님도 몸을 많이 쓰는 촬영이었는데 죄송했다. 그런데 시간도 예산이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오케이를 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성에 다 차진 않았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 제목에도 크리스마스가 들어가지만, 흑백임에도 영화의 기본적인 정서는 '따뜻함'이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다들 따뜻하다, 착한 영화다'라고 많이 해주신다. 나도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예컨대 영화 <안경> <카모메 식당>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같은. 그게 내 색깔일 수도 있다. 기주봉 선배가 내게 '넌 좀 더 비뚤어지면 좋을 거 같아'라고 말씀해주셨다. 와 닿은 적도 있고 반성도 했다. '좀 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겠다, 좀 더 치열하게 현실을 반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좀 더 비뚤어져야겠다(웃음)."
- 따뜻한 감성도 그렇지만 일본 영화를 좋아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음 영화가 한국의 항구도시와 일본의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엄마와 딸의 로드 무비다. 딸이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주겠다고 나서는 내용이다. <미스터 모>도 같은 맥락인데, 따뜻한 감성은 현실에 치열하게 임했을 때 더욱 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막연한 해피엔딩이나 따뜻함보다 좀 더 정교하고 날카롭게 따뜻하고 싶다. 케이퍼 무비도 하고 싶다. 이제 시작하는 사람이니까. 앞으로 한 편 한 편 차근차근 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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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