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문지난 2011년 2월에 촬영한 남한산성 남문인 지하문과 주변 느티나무이다.
김철관
남문인 지하문과 느티나무를 생각하면서 추석 연휴를 이용해 의정부의 한 극장에서 영화 <남성산성>을 관람했다. 지하문(남문)은 청나라 태종이 장수 용골대를 앞세워 침공한 병자호란 시기 인조가 이 문을 통해 행궁으로 피신했다. 행궁을 근거지로 매서운 추위에 청나라와 47일간 항전을 한 곳이다.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조선 임금 인조(1636년) 14년, 명나라를 섬기고 있을 때, 청나라가 쳐들어온다. 바로 병자년의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은 인조(1627년) 5년 만주를 근거지로 한 후금(청)이 광해군 폐위를 빌미로 쳐들어온 정묘호란에 이어 9년 만에 청과의 두 번째 전쟁이었다.
청 태종의 명의로 용골대를 앞세운 대군이 몰려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눈과 한파 그리고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다. 이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이 전쟁의 해결책을 놓고 대립한다.
인조 앞에서 순간의 치욕을 감수하고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치욕스러운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이 대립한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최명길-"한 나라의 왕이 어찌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 -김상헌-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간다. 명분을 중요시한 이상주의(김상헌)와 실리를 중요시한 현실주의(최명길)가 대립하고 있는 사이에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이 남한산성은 고립무원이 된다. 수치스러운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한 주장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감독은 관객 각자에게 평가를 맡기는 듯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해 영화화했기에 실제 역사적 사실과 인물 고증에는 실패했을 수도 있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로서 역사는 판이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역사는 김상헌이 자살시도는 했으나 자결했다는 어떤 문헌도 없다.
영화에서 "장수가 전장에서 죽음을 각오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라고 외친 이시백 장군은 실존 인물일까. 맞다. 하지만 남한산성을 지키는 수여사 이시백(박희순)은 무관이 아니라 문관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당시 전쟁 복장이나 현장의 사물들은 역사 고증을 통해 재연해 힘썼다는 역사 전문가들의 나름대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인조이다. 그는 명과 청의 균형외교를 하려고 했던 광해군을 폐위하고 반정으로 임금에 오른 취약한 인물이었다. 인조를 임금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이 대립각을 세운 최명길과 김상헌이다. 반정으로 오른 임금이 명나라를 섬기고 있는 상태에서 청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기가 힘든 처지였다. 명과 청의 교체기에서 인조가 오판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이 때문에 삼전도의 치욕을 겪게 된다.
인조는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에 따라 삼전도로 향한다. 청 황제에게 3번의 절(삼궤)과 머리를 아홉 번 땅에 묻힌다(구고두레). 이를 합쳐 역사는 '삼궤구고두레'라고 한다.
그럼 병자호란 당시 민초들의 삶은 어땠을까. 바로 날쇠(고수)의 말 중에 드러난다. 김상헌에게 '격서'를 전해 받은 날쇠는 이렇게 얘기한다.
"저는 전하의 명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옵니다. 그저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추수 잘해서 한 해 배불리 보내는 게 소인의 꿈이옵니다." 백성의 입장 보면 전쟁의 승리보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행복하게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했던 것이다.
병자호란 직전 나루터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손자와 함께 살던 할아버지가 죽고, 불쌍한 손자 '나루'가 혼자 남게 되는데, 최명길이 그를 거둔다. 바로 최명길에게 나루의 한 마디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눈이 녹고 민들레꽃이 피는 봄날이 오면, 꺽지 한 마리 낚아 상에 올리겠습니다." 어린 백성들도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했던 것이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병자호란이 끝나고 인조는 왕을 유지해 가지만, 무고한 50만 명의 조선인들이 청으로 끌려가 고초를 당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볼 때, 민초들의 힘든 삶이 계속 이어졌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느끼게 했다.
주연급 연기자들을 대거 투입해 서사 구조의 집중도보다는 산만한 전개도 있었다. 하지만 5개월이라는 혹한을 견디며 촬영했다는 이병헌(최명길)과 김윤식(김상헌) 그리고 박해일(인조)과 고수(날쇠), 박희순(이시백) 등의 연기 대결도 볼거리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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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