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홍석천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 가장 위험한 형'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세팅했다. 미디어가 '홍석천'을 소비하는 방식도 딱 거기까지. 아쉬움은 없었을까?
이정민
홍석천은 자칭 타칭 '이태원 유지'다. 위험하고 후미진 동네였던 이태원이, 서울에서 가장 '힙'한 동네가 된 데는 분명 홍석천의 공이 컸다. 이태원 일대에만 11개 매장을 운영 중인 그의 식당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덩달아 인근 상권까지 살아났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성공한 사업가 아니냐고 묻자, "빚도 자산이니까" 하곤 웃음을 터트렸다.
"가게들이 다 잘되면 남부러울 거 없겠지만, 지난해 정말 어려웠어요. 자영업자들이 문 많이 닫았는데, 나라고 파급이 안 왔겠어요? 잘 되는 매장 수익으로 안 되는 매장 적자를 메우기도 하고, 그나마 나는 방송으로 돈 벌어 채울 수 있으니까 버텼던 거지. 직원이 150명 정도 되는데 월급 주는 것만 해도 얼마예요. 정말 나 상 받아야 해. 이거 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잖아. 하하하." 힘들게 여러 매장을 운영하는 이유를 묻자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이라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동네 발전을 위해서든, 개인적인 꿈을 위해서든, 결국 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금 그는 '경리단 플랜'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요즘 경리단길 상권이 한풀 꺾였어요. 근데 내가 이번에 경리단에 들어왔거든. 살려야 하는데 나 혼자서는 못 살리겠는 거야. 그래서 생각한 게 '젊은 친구들하고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 골목 문화 개선하고 골목 상권 살리자!' 이거예요."그가 기획한 '경리단 플랜'을 정리하자면, 어딜 가나 먹고 마시는 거 말곤 할 거 없는 서울에서, 놀 거리, 즐길 거리, 볼거리를 엮어 하나의 코스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리단길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오후 2시부터 바이올린 연주나 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낸 뒤, 4시부터는 무용 공연이나 디제잉을 즐기게 해주는 거다. 종일 먹고 놀고 즐길 거리를 만들어주면, 자연히 저녁까지 경리단에서 먹게 되고, 그렇게 되면 동네 상권도 자연히 살아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일종의 원데이 여행 플랜인 셈이다.
"그동안 우리가 수동적으로 손님을 맞았다면, 능동적으로 경리단길에 찾아올 이유를 제시해주는 거죠. 동네 매력 뽐내기랄까? 매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면서, 이번 달에는 이거, 다음 달에는 저거, 다양하고 재밌는 걸 경험하게 해주는 거죠. 재능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뭔가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홍석천의 찬란한 47년, 더 찬란할 미래
▲홍석천은 자신의 머릿속 아이디어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의 미래 계획에는 '대한민국 대표 게이'로서의 책임감이 담긴 것도 있었다.
이정민
홍석천은 자신의 머릿속 아이디어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레스토랑 경영과 동네를 가꾸는 일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뮤지컬 연출, 시나리오 작가, 영화 제작, 신인 발굴…. 그가 미래 계획에 넣어둔 직업만 해도 이 정도다.
"나는 명함이 없어요. '사장' 이런 거 싫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떤 직업으로 나를 규정짓고 싶지 않거든. 언젠가 명함을 만들게 된다면 '컬처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적고 싶어요. 작은 식당 컨설턴트일 수도 있고, 골목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일 수도 있죠. 어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일 수도 있고. 뭐가 됐든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늘 도전하는 삶이라 늘 불안하지만 그게 나니까." 그의 미래 계획에는 '대한민국 대표 게이'로서의 책임감이 담긴 것도 있었다.
"게이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안전한 성생활을 위한 교육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모두에게 중요해요. 하지만 게이 청소년들은 어디 가서 교육받을 데가 없잖아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자녀가 커밍아웃했을 때, 그 가족이 겪는 충격도 크고,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무조건 배척하거나 방치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종종 자녀가 커밍아웃했다면서 어찌할지 몰라 제 식당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 상담을 요청해오는 분들도 있고요. 남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기는 하지만, 제가 모든 분을 일일이 챙기는 덴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한 상담 센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원한 적 없던 왕관의 무게를, 이렇게 오랜 시간, 이토록 충실히 견디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어느덧 50을 앞둔 홍석천은 "나이를 믿을 수가 없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데 몸이 자꾸 사인을 보낸다"며 웃었다.
"이제부턴 정말 행복하게 살려고요. 행복하게 잘 살 거야. 이건 내 자존심 문제이기도 해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나라는 존재가 생겼는데, 어떤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실패하면 안 되잖아? 또, 어린 게이 친구들에게 '열심히 살면 홍석천만큼은 되겠지, 쟤 만큼은 성공할 수 있어!'라는 좋은 롤모델이 되고도 싶고요. 내가 원래 되게 잘 놀았거든? 아직은 더 놀고 싶은데, 이래서 마음껏 못 놀아. 하하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찬란하게 47년>을 발표한 방송인 홍석천이 2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9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공유하기
커밍아웃 17년... 홍석천이 이 악물고 버틴 세월들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