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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문턱에서 살아온 슈틸리케, 아직 안 끝났다

슈틸리케 감독 유임, 대안 찾지 못한 현실적 결정... 선수 등용 등 변화된 모습 보여야

17.04.04 08:48최종업데이트17.04.0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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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8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 시리아와의 홈경기에서 울리 슈틸리케가 물을 마시고 있다.
3월 28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 시리아와의 홈경기에서 울리 슈틸리케가 물을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자격과 원칙이 사라졌고,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가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고, 경기에 나선다. 경기력은 형편없고, 결과도 좋지 않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월드컵 본선 무대가 멀어질 위기에도 놓였다. 이렇듯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대표팀과 이별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아래 KFA)는 슈틸리케 감독의 유임을 선택했다. KFA는 지난 3일 오후 2시 30분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기술위원회를 열어 한국 축구와 각급 대표팀 상황을 점검했다. 2018 아시안컵 예선을 치르는 여자 대표팀, U-20 월드컵을 준비하는 신태용 감독의 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안건은 국가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였다.

KFA의 선택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난다 해도 플랜 B(대안)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고, 준비하기도 어려운 시점이기 때문이다.

슈틸리케를 대신할 감독의 부재

무직 상태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나 후안데 라모스 같은 세계적인 명장이 슈틸리케를 대체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우리는 그들의 몸값을 감당할 수가 없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실하다면 연봉 협상이 수월할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확실치가 않다. 우리에게 남은 최종예선 3경기에 운명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점도 새로운 외국인 감독 선임을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은 국내 감독뿐이었다. U-20 월드컵 준비에 한창인 신태용 감독부터 김호곤과 허정무, 안익수, 최진철 등 여러 후보가 언론과 축구팬들 사이에 오르내렸다. 먼저 신태용 감독은 2010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16 리우 올림픽 8강 등 경력과 능력을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지도자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과 똑같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부랴부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 국내에서 개최하는 U-20 월드컵을 위해서도 자신의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경력과 능력 모두 뛰어난 감독인 만큼 소방수로 긴급 투입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원정 월드컵 16강'이란 업적을 달성한 감독이었다. 그러나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됐고, 이미 2번이나 대표팀을 이끌었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할 때도 그에게 또다시 의존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다.

김호곤 KFA 부회장 역시 2004 아테네 올림픽 8강과 2012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란 성과가 있다. 수비수였던 김신욱을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만들었고, '철퇴 축구'로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허정무 부총재와 마찬가지로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됐고, 그의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큰 기대를 모았었던 2012 클럽 월드컵 성적이 이를 증명한다.

안익수와 최진철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이끌기에는 능력과 경험 모두 부족하다. 본래 U-20 월드컵은 신태용이 아닌 안익수 감독이 이끌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비와 조직력만을 우선시하는 축구로 2016 U-19 아시아 대회 조별리그 탈락이란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수비를 중요시했지만 쉽게 실점했고, 공격은 답답했기에 감독 교체를 피할 수가 없었다.   

최진철 감독은 2015 U-17 월드컵 8강 진출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과가 없고, 경험도 부족하다. 2015년 말에 K리그 '명문'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프로에 도전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인해 한 시즌도 채우지 못했다. 지도자로의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현재의 능력이 대표팀을 지휘할 수준은 아니다.    

한국 축구와 슈틸리케는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것이 슈틸리케 감독 유임에 결정적인 이유다.

월드컵까지 시간이 충분하고 팬들이 인정할 만한 감독을 데려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슈틸리케는 한국을 떠났을 것이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대표팀을 이끌고 있음에도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통을 거부하는 태도와 원칙 없는 선수 선발 역시 아쉬움을 더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이 마지막 기회를 부여받은 만큼, 이제는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2015 호주 아시안컵과 동아시안컵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소속팀에서 잘하면 누구든지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되살려 치열한 경쟁과 전력 상승을 도모해야 한다.

앞으로는 절대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가 국가를 대표해서는 안 된다. 특정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모습도 나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소속팀에서의 성적과 몸 상태만으로 대표팀 선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능력 있는 코치진 구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냉정하게 현재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너무 허술하다. 경력과 능력을 알 수 없는 카를로스 알베르토 아르무아 코치, 대학팀을 이끈 것이 지도자 경력의 전부인 설기현 코치, 지도자 경험이 전혀 없는 전력분석관의 탈을 쓴 차두리 코치로 월드컵 본선을 노린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우리나라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거스 히딩크 감독만의 성과물이 아니었다. 철저한 역할 분담과 함께 감독을 보좌한 핌 베어벡, 박항서, 정해성, 김현태 코치가 있었기에 우리는 성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낯설었던 압신 고트비 비디오 분석 담당관과 레이몬드 베르하이옌 체력 담당 트레이너의 존재도 대표팀에 큰 힘이 됐다. 

전술을 논하기 전에 기본이 우선이다. 원칙이 살아나고, 코칭스태프의 철저한 역할 분담이 가능해질 때, 우리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슈틸리케 감독이 지금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어준 KFA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 아닌 유임, 한국 축구의 미래는 슈틸리케의 변화 의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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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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