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누 리브스는 쉰 두살의 나이에도 거침 없는 액션을 소화해 낸다. <존 윅 - 리로드>만이 갖는 매력이기도 하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존 윅 : 리로드>는 여지없이 훌륭한 액션 영화이다. 그렇지만 어째서? 키아누 리브스가 탄창을 제때 갈아 끼우고,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걸치지 않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카 체이싱를 떠올려 보자. 윅은 타라소프의 사업장에서 1969년형 머스탱 GT를 되찾아 거칠게 빠져나오다 추격자들에게 바로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바꾸어 쫓아오는 차들을 향해 도리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그를 추격하던 이들은 오히려 쫓기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더불어 많은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길고 긴 도로를 무대로 추격전을 벌이는 대신 차고와 그 근처 부둣가에서 모든 시퀀스가 이루어진다.
굉장히 신기하다는 생각이 미칠 무렵 마침 영화의 시작에 오래된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이 있었다.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였다. 영화의 서사가 실질적인 무언극으로 이루어지던 시절, 그는 충돌의 서스펜스와 그 과정에서 동반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당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영화의 카 체이스는 때마침 키튼의 작품들과 흡사한 면모를 지닌다. 소중한 머스탱은 처절하게 박살나고, 윅은 분노에 휩싸인다. 타라소프는 그 과정을 청취하고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제삼자인 관객들에게 이 과정은 희극적인 역설로 환원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키튼의 미학은 존 윅이라는 자아를 걸친 키아누 리브스에게 다시금 주어진다. 이를 위해 500마력의 머슬카를 파괴하고, 그 대가로 키튼의 미학이 계승된다.
<존 윅 : 리로드>는 모든 면에서 액션의 장르적 계보를 한데 모아 독보적인 위치를 만들기 위한 야심을 드러낸다. 윅은 자신을 막는 적들을 처치하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은 수십 년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장르의 모습이 시대에 반영되어왔음을 은유한다. 카시안과의 만남과 프레스토 박물관의 총격전은 고전 웨스턴을 연상시키는 결투신으로 시작하여 마이클 만의 사실주의적 총격전으로 모양새를 갖추며, 스티븐 시걸의 아이키도와 성룡의 아크로바틱 시퀀스까지 복합적으로 뒤섞는다.
액션이라는 범주 이외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액션을 가져오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영화는 여러 세대에 걸쳐 독자적으로 발전한 무수한 스펙트럼들의 공통분모를 찾아내 이를 현대 전술사격이란 뼈대에 덧붙이는 데 성공한다. 총격전과 격투 장면은 별개로 분리하는 대신 전투 그 자체의 일부로 동화된다. 존 윅이 극사실주의 액션이라고 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 과장이 드문 액션 영화의 걸작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과거의 수많은 미덕들을 계승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액션 영화로서.
영화 말미에 존 윅은 컨티넨탈 호텔의 룰에 따라 암살 대상으로 지목한다. 윅은 무수히 많은 인파가 모두 그를 노리는 킬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러 온다면 얼마든지 죽여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후속작은 윅의 끝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두 편의 영화에서 윅은 너무 많은 사투를 보여주었다. 언젠가 장르의 야심의 한계가 부딪힐 수 있는 상황에서, 현실과 암흑세계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킬러의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추측이지만 암흑세계 자체가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지하철의 시민들에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지만, 독립적인 규칙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독자적인 세계의 영역 확대로 말이다. 어쩌면 존 윅은 스타일리시 액션의 해리포터를 꿈꾸는 걸지도 모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