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연애사건>영화 포스터
(주)브리즈픽처스
<도쿄 연애사건>은 평범한 대학생인 타에코(키시이 유키노 분)의 동갑내기 친구인 마야(안도 와코 분)가 "너희 아빠가 남자로서 너무 멋있어"란 말을 내뱉으며 시작한다. 돌발적인 고백을 한 마야, 어처구니없어 하는 타에코, 남편 쿄스케(후키코시 미츠루 분)를 좋아한다는 마야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아내 미도리(이사비사 케이 분). <도쿄 연애사건>의 첫 장면은 앞으로 벌어질 연애담을 암시하는 프롤로그다.
이혼을 앞둔 부부, 딸의 친구와 사귀는 아빠, 직장 동료와 관계를 맺는 엄마, 학생과 사랑에 빠진 선생 등 일그러진 관계로 구성된 <도쿄 연애사건>은 극단적인 로맨스, 요즘 표현으론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설정만 본다면 <도쿄 연애사건>을 삼류 드라마로 오해하기에 십상이나 기실 영화는 가족을 빌려 사회를 조명했던 <아메리칸 뷰티>와 <바람난 가족>의 계보에 속한다.
<아메리칸 뷰티>는 딸의 친구에게 사랑을 느낀 아버지, 외도하는 아내, 방황하는 딸 등 무너진 가족상을 보여주며 미국 중산층의 실상을 폭로했다. <바람난 가족>은 연하의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남편과 옆집 고교생과 불륜을 저지르는 아내 등 파격적인 설정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과 가족 해체를 다루었다. 그렇다면 "친구의 아빠가 좋아"(<도쿄 연애사건>의 일본 원제이기도 하다)라고 외치는 마야를 통해 <도쿄 연애사건>을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도쿄 연애사건>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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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태어나서 지금은 10대~20대 중반 연령대가 되었으나 돈벌이나 출세는커녕 아무런 의욕조차 없이 사는 젊은이들을 '사토리 세대'라고 부른다. <도쿄 연애사건>의 감독인 야마우치 켄지는 자신만의 길을 가며 애정 문제 또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적극적인 마야가 생기를 잃은 무기력한 아저씨에게 매력을 느끼며 일어나는 색다른 로맨스를 통해 연애에 관한 재미있는,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의 바람처럼 영화 속의 고정 관념을 깬 행동은 뻔뻔한 관계를 형성하며 재미를 준다. 그 속에서 감독은 사랑의 형상을 관찰하고 온도를 측정한다.
<도쿄 연애사건>은 상식을 깨는 블랙 코미디의 화법으로 사랑을 넘어 일본 사회에 내재한 여러 문제점에 다가간다. 일본 사회에 등장한 사토리 세대와 일본 경제 성장의 주역이나 이젠 퇴물로 여겨지는 무기력한 세대는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마야와 대비 관계를 이룬다.
영화 속에서 슬그머니 언급되는 '3.11 대지진'과 '2020 도쿄 올림픽'을 사랑의 관계에 대입시키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가족의 해체는 대지진의 결과로 읽을 수 있고, 황당무계한 관계는 왜곡, 망각, 외면이 가득한 일본의 현주소를 은유로 독해가 가능하다. 쿄스케가 보여주는 태도, 순수한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모습과 명확한 결정을 하지 않고 그저 도피하려는 면모는 '도쿄 올림픽'이란 일본의 내일을 바라보는 밝음과 흐림이란 두 가지 시각처럼 느껴진다.
▲<도쿄 연애사건>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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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연애사건>은 탄탄한 배우가 포진한다. 쿄스케 역을 맡은 후카코시 미츠루는 <차가운 열대어>로 친숙한 배우다. 미도리로 분한 이시바시 케이는 야마우치 켄지의 데뷔작 <미츠코 감각>부터 <도쿄 연애사건>과 근작 <앳 더 테라스>에 모두 등장한다. 인연은 스크린 바깥까지 이어져 야마우치 켄지 감독이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 '시로야기노카이'의 연극에도 무려 12편이나 출연했다. 가히 야마우치 켄지 감독의 뮤즈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도쿄 연애사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배우는 안도 와코와 키시이 유키노다. 처음으로 주연을 한 안도 와코는 독특한 캐릭터인 마야에 강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던 키시노 유키노는 유채색 인물인 마야와 달리 무채색에 가까운 타에코를 멋지게 소화했다.
야마우치 켄지 감독은 CF 감독으로 활동한 경력을 지녔다. 연극 프로듀스 유닛의 극작가이자 연출가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연출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연극 경험을 살려 <도쿄 연애사건>에 일본 연극의 표현주의에 하나인 현대구어연극(담담하게 일상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연극)기법을 활용한다.
▲<도쿄 연애사건>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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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연애사건>은 현대구어연극의 느낌을 살리고자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하고 '원 시퀀스 원 컷'으로 촬영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영화는 블랙 코미디의 웃음 안에서 사실감을 얻었다. 마야가 예전에 만나던 선생님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원 시퀀스 원 컷과 다르게 접근한 연출도 나온다. 타에코와 마야가 레스토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카메라 두 대가 각각 인물을 잡으면서 한 번에 촬영하고, 후반 작업에서 장면을 교차하는 편집으로 완성해 감정선은 유지하며 주고받는 대사의 맛까지 살렸다.
<미츠코 감각>으로 제27회 바르샤바 국제영화제에서 공식 경쟁 부문에 나갔던 야마우치 켄지 감독은 <도쿄 연애사건>과 <앳 더 테라스>로 2회 연속 도쿄 국제영화제 스플래시 부문(그해 가장 주목해야 할 감독의 작품을 초청해 평단과 관객에게 소개)에 상영하는 성과를 일구었다. 그는 스플래시 부문 상영으로 자신이 일본 영화계를 짊어질 차세대임을 입증했다. 야마우치 켄지. 앞으로 그를 주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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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친구를 사랑한 아버지, 이 영화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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