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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던 천재' 박경수가 쓰는 반전드라마

[KBO리그] 주목 받지 못한 이적 후 토종 2루수 최초 2년 연속 20홈런

16.12.31 14:44최종업데이트16.12.3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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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원 FC로 이적한 '패트리어트' 정조국은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차세대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재목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K리그 데뷔 시즌이었던 2003년 12골을 넣으며 신인왕을 탈 때 까지만 해도 정조국의 축구 인생은 탄탄대로가 열리는 듯 했다. 하지만 정조국은 축구팬들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2011년과 2012년 프랑스리그 진출까지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하지만 정조국은 광주FC로 이적한 2016 시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반전을 만들어냈다. 31경기에 출전해 20골을 넣은 정조국은 생애 최초로 K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11월8일에 열린 K리그 시상식에서는 베스트11과 함께 그 해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MVP까지 휩쓸었다. 정조국이 속했던 광주FC는 승점 47점으로 전체 8위에 그쳤는데 8위팀에서 MVP를 배출한 것은 K리그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10대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만 걸어오다가 한창 활약해야 할 20대 때 깊은 슬럼프에 빠졌던 정조국은 33세의 나이에 화려하게 비상했다. 그야말로 '꺼진 천재도 다시 보자'라는 말에 정확히 어울리는 부활이었다. 비록 정조국처럼 MVP에 오르진 못했지만 KBO리그에도 정조국처럼 3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 화려하게 부활한 선수가 있다. 바로 토종 2루수 최초로 2년 연속 20홈런을 때린, 이제는 '거포형 2루수'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kt위즈의 캡틴 박경수가 그 주인공이다.

LG팬들에게 희망고문만 주다 끝난 박경수의 12년

박경수가 kt로 이적할 때 이런 반전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 kt 위즈


현재 KBO리그는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는 세 팀(두산 베어스, LG트윈스, 넥센 히어로즈)이 해마다 번갈아 가면서 연고지역의 신인지명 우선권을 갖는다. 하지만 박경수가 프로에 들어오던 시절만 해도 '서울 라이벌' 두산과 LG가 스카우트 경쟁을 벌여 계약을 따내는 팀이 1차 지명권을 우선적으로 행사했다. '최소 유지현, 잘 되면 이종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성남고의 천재 유격수 박경수가 두산과 LG의 스카우트 전쟁에 휘말린(?) 것은 당연했다.

결국 박경수는 역대 고교 타자 랭킹 2위에 해당하는 4억3천만원의 거액을 받고 LG에 입단했고 그 때부터 LG의 오랜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LG의 바람과는 달리 박경수의 성장은 생각보다 더뎠고 의외로 잔부상이 많아 자리를 비우는 일도 잦았다. 결국 박경수는 1루수와 3루수, 유격수 등을 돌며 방황하다가 2007년에야 비로소 2루수 자리에 정착했다.

포지션이 정해졌다고 해서 박경수의 성적이 갑자기 올라갔던 것은 아니다. 2008년에는 시즌초반 좋은 타격감을 보이며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승선을 기대하는 LG팬들의 바람을 담아 '북경수'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성남고 시절 키스톤 콤비를 이뤘던 선배 고영민에게 밀려났다. 올림픽 진출이 좌절된 박경수는 후반기에 부진하며 타율 .259로 시즌을 마감했다.

박경수는 2011년 111경기에 출전해 타율 .228 4홈런26타점을 기록했고 17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수비에서도 썩 믿음직한 플레이를 선보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쉬운 부분은 LG가 박경수가 입단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 연속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박경수는 2011 시즌을 마지막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2014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박경수는 부상으로 시즌을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팀이 4위 싸움이 치열하던 9월 .444(18타수8안타)의 월간 타율을 기록하며 LG 타선의 활력소로 떠올랐다. 하지만 10월17일 시즌 최종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시즌 후 FA자격을 얻은 박경수는 LG와의 우선 협상이 결렬됐고 11월28일 신생구단 kt와 4년 18억2000만원에 FA계약을 체결했다.

20홈런에 이어 3할 타자 등극, '천재 타자'의 대반격

이제 박경수는 kt타선에서 절대 없으면 안될 선수가 됐다. ⓒ kt 위즈


2014년 FA시장은 우승청부사가 된 장원준(두산)을 비롯해 송은범, 배영수(이상 한화 이글스) 등이 타팀으로 이적했다. 그 해 kt의 FA3인방(박경수, 박기혁, 김사율)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컸지만 4년 총액이 20억도 채 넘지 않는 소소한(?) 계약을 한 박경수는 야구팬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다만 선수층이 얇은 신생팀 kt에서 주전 자리는 확실히 보장받겠다는 정도의 평가뿐이었다.

하지만 박경수는 FA 이적 첫 해 137경기에 출전해 타율 .284 22홈런 73타점으로 생애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LG에서 활약하던 시절 시즌 100안타를 넘긴 적도 없었고 두 자리 수 홈런을 때린 적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반전이었다. 고교 시절에 보여준 박경수의 천재성이 드디어 빛을 발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2015년의 활약은 어쩌다 나온 우연이라고 폄하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박경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던 낯선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206년 박경수는 시즌 성적을 타율 .313 20홈런 80타점으로 더욱 끌어 올리며 자신을 과소평가하던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역대 토종 2루수 중에서 2년 연속 20홈런을 때린 선수는 박경수가 역대 최초였다. 시즌 막판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0일 가까이 빠져 있지만 않았어도 박경수는 자신의 시즌 최다 홈런을 경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경수는 출루율 부문에서도 .412로 공동 10위에 올랐다(박경수는 LG시절부터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유난히 높은 선수였다).

박경수는 올해 일류 타자의 기준이라는 타율 3할, 출루율 4할, 장타율 5할을 달성했고 올해 2루수 중 가장 많은 홈런과 가장 높은 OPS(.934), 그리고 가장 뛰어난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 4.04)를 기록했다. 하지만 박경수는 2년 연속 최하위팀 kt 소속이었고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유효 득표수 345표 중 10.7%에 해당하는 37표(4위) 밖에 얻지 못했다. 매년 골든글러브 시상식마다 발생하는 논쟁이지만 박경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박경수가 생애 첫 황금장갑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김태균(한화)이나 최형우(KIA 타이거즈)처럼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성적을 올리거나 팀 순위를 끌어 올려 화제의 중심이 돼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번 FA시장에서 아직 소득을 내지 못하고 있는 kt가 내년 시즌에 갑자기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2년 연속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 박경수가 2017년에 또 한 번 야구팬들을 놀라게 할 성적을 낼 가능성은 적지 않다. 방황하던 천재가 드디어 각성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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