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최후통첩 받은 조윤선 장관, 이제 빼도박도 못할 겁니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속속 내부자 증언 나오는 블랙리스트 파문

16.12.30 16:29최종업데이트16.12.30 16:29
원고료로 응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를 연기 중인 배우 알렉 볼드윈. ⓒ NBC


대통령 당선 이후 이른바 '트위터 정치'로 미국 언론을 괴롭히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 거침없는 폭탄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이 트럼프가 골머리를 썩고 있는 사안이 하나 있으니, 내년 1월 20일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에 축하공연을 펼칠 가수 섭외 문제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재까지 공연이 확정된 가수 들 중 한국인들도 알만한 A급 스타는 없다고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나 유명 합창단, 무용단 등이 섭외 됐을 뿐이다.

셀린 디옹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역풍"을 이유로 줄줄이 백안관의 제안에 퇴짜를 놓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두고 트럼프는 역시나 트위터에 "이른바 A급 셀러브리티들은 죄다 취임식 티켓을 원한다"며 "그러나 그들이 힐러리를 위해 무엇을 해줬는지 한 번 봐라. 'NOTHING'이다. 나는 (유명인보다) 일반 대중을 원한다"며 허세를 부렸다. 그런데, 지난 23일 한 셀러브리티가 분연히 나섰다.

"내가 트럼프 취임식에서 공연하고 싶다. 내가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Highway to Hell')을 불러 주고 싶다."

호주의 유명 록밴드 AC/DC의 명곡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라니. 트럼프에게 '지옥행 고속도로행'을 추천한 이 '셀럽'은 바로 배우 알렉 볼드윈이다. 열혈 민주당 지지자인 그는 미 대선을 코앞에 앞둔 지난 10월부터 미 NBC <SNL>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연기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은 바 있다.

트럼프가 당선 된 후에도 알렉 볼드윈은 '트럼프 연기'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열혈 트위터리안' 트럼프와 트위터로 논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취임식 참석 의사를 밝힌 알렉 볼드윈은 " 역사상 욕을 가장 많이 먹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며 트럼프를 비꼬았고, "대통령의 자격은 물론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핵심 없는 허풍과 조아한 미사여구 외에 보여준 게 없는 남자"라고 비판했다.

감히 대통령 당선자에게 이러한 처절한 비판과 조롱을 날려대는 문화예술인의 존재, 미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맞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랬다가는 방송 등 출연작품에서 잘리고, 예산 지원이 끊기고, 고소고발에 휘말려야 했으니까.

우리에게는 공개적으로 '대통령까지 비판할 자유'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북한과 다를 게 뭐냐", "박정희‧전두환 시대로 돌아갔다"는 자조와 한탄이 터져 나왔던 시대를 살았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시대였다. 

청와대가 문체부 직원들을 개처럼 부렸다?

29일 JTBC <뉴스룸>과 전화 인터뷰 중인 조현재 전 차관. ⓒ JTBC


"세월호 이후에 문화예술단체를 비롯해서 여러 시민단체들이 좀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의 활동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이것이 시작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29일 JTBC <뉴스룸>와 인터뷰한 조현재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출발을 이렇게 유추했다. 조 전 차관은 앞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를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폭로했던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블랙리스트를 직접 받아온 것으로 지목한 인물이다. "세월호라면 노란색도 싫어했다"는 증언이 나왔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과거 행적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밀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묻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이런 대답도 내놨다.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됩니다만 이런 문화예술공연 이런 거 외에도 영화 같은 경우도 2013년 12월에도 CJ엔터테인먼트가 만든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에 대해서 청와대 김기춘 실장이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고 이야기 들었고요. 그래서 CJ에서 만든 거지만 저희 문체부가 모태펀드에다가 투자를 해서 거기에서 자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모태펀드에서 CJ 영화 투자하는 쪽에 지원을 하지 말아라. CJ 쪽에 규제를 많이 하라, 이런 압력을 많이 받았고요.

여기 전주국제영화제가 독립영화제입니다. 거기에 '천안함 프로젝트'라는 독립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여러 영화들하고 같이 상영이 돼서 그게 좀 이슈가 돼서 그때 당시에 제가 참석하기로 돼 있었는데 그 부분도 이제 청와대에서 참석을 하지 말도록 종용을 했습니다마는 저희는 그래도 독립영화제를 좀 육성하는 그런 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청와대 반대를 무릅쓰고 참석을 한 그런 적도 있고요. 이런 영화라든지 이런 쪽도 여러 가지 압력이 좀 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영화계 모태펀드에 대한 투자 관련 외압과 독립영화계에 대한 탄압, 두 가지로 귀결되는 증언이라 할 수 있다. 박영수 특검의 조윤선‧김기춘 자택 압수수색과 함께 블랙리스트 수사가 여론과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당시 문체부 장차관을 비롯한 내부자들의 증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이다.

30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전 문체부 고위 관료는 "블랙리스트는 청와대 전 비서관 3인방(김소영·신동철·정관주)이 주도해 작성됐다. 문체부는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 일했을 뿐이다"라는 증언도 나왔다. 이 관료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블랙리스트를 못 봤다고 말한 건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못 봤을 것이다"라며 "청와대가 우리(문체부 실무진)를 개처럼 부렸다. 불쌍한 공무원을 언론이 지켜 달라"고도 했다.

상무식꾼들이 좌지우지한 문화예술계 중대사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8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최순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현안 질의에 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어쨌건, 몸통은 청와대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고,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담당했다는 것이다.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의 경우 정무수석 시절 블랙리스트에 관여했거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 등으로 증언이 나뉘는 중이다.

그에 관계없이 언론보도를 통해 고은 시인부터 올해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그리고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 개인과 대표적인 단체와 회사, 언론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관리했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돈줄을 막는 등의 가장 극단적이고 치졸한 수법까지 자행한 정황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당사자들로부터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이를 두고 한 문인은 최근 이렇게 비판했다.

"블랙리스트를 살펴보면 뭔가 조작된 것이거나 문단지형도를 전혀 모르는 자들이 작성한 게 분명하다. 하긴 관련자들 면면을 보면 '교양인'이 한 사람도 없다. 리스트가 작성된 것도 슬프지만, 이런 '중대사'를 상무식꾼들이 좌우우지 한다는 게 더 슬프다."

블랙리스트를 직접 확인했다는 조 전 차관의 <뉴스룸> 인터뷰 내용은 이러한 한탄을 뒷받침한다. 업계 내부 상황이나 개별 단체나 개인의 성향이나 작품 세계를 전혀 모르는 청와대 내 몇몇 인사들이 한국 문화예술계 전체를 휘둘렀다는 정황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무식한 정권이 무식하게 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다 이름만 있거나 단체 이름이 있었는데, 이분은 단체와 이름이 같이 있어서 제가 한번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게 단체를 뜻하는 것이냐, 사람을 뜻하는 것이냐. 왜냐하면 예총단체는 좀 보수단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김소영 비서관이 잘 모르겠다고 해요. 그래서 그러면 이거를 교문수석실에서 만든 것이냐라고 물어봤는데 그건 정무에서 만들어서 자기는 잘 모른다고 이야기했어요. 그 문서 자체가 정무비서실에서 만들었구나, 이렇게 제가 파악을 했습니다."

박근혜식 '문화융성'? 이대로면 '검은 봉투'의 시대

문화예술단체들의 블랙리스트 기자회견을 보도하는 29일 MBN 보도 화면. ⓒ MBN


"12월 29일(목)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조윤선 문체부 장관의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도 고영재 대표와 사무국이 참여하여 목소리를 함께 했습니다.

각계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융성이 아닌 블랙리스트로 '검열융성'을 주도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 박명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등 박근혜 정권 부역자들의 즉각 사퇴와 구속수사를 요구하며, 사퇴 불이행 시 '블랙리스트 버스'를 운행해 세종시 문체부 앞에서 '조윤선 장관 사퇴 예술행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앞서 지난 12일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장관 등 블랙리스트 주동자 9인을 박영수 특검에 고발한 12개 문화예술단체 중 하나인 한국독립영화협회가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전한 내용이다.

29일 12개 문화예술단체는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블랙리스트를 상징하는 검은 비닐봉투를 뒤집어쓰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조윤선 문체부장관의 사퇴를 촉구한 이들은 31일까지 사퇴하지 않으면 200인의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버스'를 타고 문체부가 위치한 세종시에서 '조윤선 장관 사퇴 예술행동'을 벌이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미 시국선언에 동참한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광화문광장에 캠핑촌을 만들고 시위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이번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파문은 한 사회의 정서와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예술계와 개별 예술인들을 직접적으로 검열하고 '돈줄'까지 좌지우지 했다는 점에서, 또 그 허접한 리스트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을 만큼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국정 역사교과서에 실릴 만한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단순히 풍자나 정권비판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참하고 슬픈 사건이다.

천박하고 무식한 이 정권의 '문화융성'이 이 정도였다. 속속 밝혀지고 있는 증언과 증언, 그리고 증거를 토대로 박영수 특검이 낱낱이 진상을 밝혀내고 관련 용의자들에게 무거운 처벌을 내려야만 한다. 반면교사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이. 그렇지 않다면, '한류'는커녕 문화말살의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다. 안 그래도 자본 논리에 휘둘리는 문화예술계다. 한 마디로, '검은 봉투'의 시대가 올 수 있다.  

블랙리스트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