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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여자처럼'? "그런 건 없다"고 말해준 언니들

2016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여성 연예인들

16.12.31 18:00최종업데이트16.12.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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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사회는 간만에 페미니즘 담론으로 들끓어 올랐다. 올해 초부터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이는 행동으로도 이어져 다양한 여성주의 모임들이 결성되었다. 여성학 도서의 판매도 급증했다.

연예계 또한 이 바람의 영향에서 비껴갈 수 없었다. 사회적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답게 기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스타들도 많았다. 2016년,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인 여성 연예인들을 모아봤다. 인상적인 활동을 보였던 여성 스타들을 빠짐없이 담고 싶었으나 모두 소개하진 못했다. 언급하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도 지지를 보낸다.

① 현장의 페미니스트, 공효진·엄지원

▲ '미씽:사라진 여자' 공효진-엄지원, 연기 퀸들의 완벽 케미 배우 엄지원과 공효진이 지난 10월 27일 오전 서울 동대문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 제작보고회에서 '쉿'하는 포즈를 짓고 있다. ⓒ 이정민


올해 등장한 '#OOO_내_성폭력'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성별이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렇게나 많은 성폭력이 발생하고 조직적이고 일상적으로 은폐 되기를 반복한 건, 해당 분야가 남성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고 이들에게 큰 힘을 부여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영화계 또한 마찬가지다. 굳이 성폭력 문제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연출자나 제작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남자 캐릭터를 중심으로 굴러간다. 여성 배우들은 소모적이고 기능적인 역할을 맡는 일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미씽>의 등장은 너무도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나 이 영화가 최근 충무로에서는 보기 드물게 두 여성 주연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 좋았다. 거기다 영화의 공개와 동시에 공효진과 엄지원은 끈끈한 유대를 과시했고 여성으로서 영화계에서 살아가는 것에 가감 없는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여성이 감독직을 맡을 때조차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연출하는 것은 힘들었으며 매번 스태프들을 설득하느라 홍역을 치렀다고 한다. 때문에 두 배우는 감독과 함께 현장에서 투쟁하듯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고 한다.

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지금도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을 연상케 한다. 탄탄한 경력을 지닌 유망한 배우들조차도 그런 싸움을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변화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 모습에서 힘을 얻기도 한다. 특히 여성주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심해지는 현실에서, 공효진이 '나는 촬영 현장에선 페미니스트가 된다'라고 말해준 것은 너무도 고마운 일이다.

② 좋은 영화, 좋은 배우를 고민한 손예진

영화 <덕혜옹주>에 출연한 손예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의 경우 배우들이 더 나은 작품에서 연기하기 위해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 나아가 직접 제작사를 차리고 운영하는 배우들도 존재한다. 가령 톰 행크스는 이매진 엔터테인먼트를 이끌고 있으며 브래드 피트는 플랜 B 엔터테인먼트를 소유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아마 리즈 위더스푼일 것이다. 그녀는 여성 배우들이 영화계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개해 직접 제작사를 차렸다. 리즈 위더스푼은 이 제작사를 통해 강인한 여성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나를 찾아줘>나 <와일드>를 통해 그 바람을 성취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연출과 연기를 병행하는 배우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지만, 제작에 깊게 개입하는 배우들은 흔치 않다. 하지만 올해 리즈 위더스푼과 비슷한 사례가 충무로에도 등장했다. 바로 <덕혜옹주>에 출연한 손예진의 이야기다. 그녀는 제작비 부족으로 촬영에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돈 10억 원을 투자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같은 투자가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몇몇 장소를 축소한다면 영화의 완성이 가능했지만, 손예진은 이를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영화에 필요한 장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 장면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이해하고 있었다. 즉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 제작을 끌고 나간 셈이다.

특히나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기근인 시기, 그녀는 올해 여성이 중심이 된 작품에 두 번 출연(<덕혜옹주>, <비밀은 없다>)했다. 그녀가 내린 결단은 어쩌면 자신의 영화가 잘못 만들어질 경우, 여성이 주역인 작품을 더 만나기 힘들지 모른다는 염려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손예진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한다.

③ '여배우'에 질문 던진 이주영·김꽃비

MBC 드라마 <역도 요정 김복주>에 출연중인 배우 이주영. ⓒ MBC


올 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한 단어 한 가지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여성혐오'를 고르고 싶다. 메르스 갤러리의 등장 이후로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싸움은 보다 전투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사람들은 이들이 되받아친, 너무도 만연했지만 언급되지 않았던 현실을 본 후 이전처럼 살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은 가장 기본적인 삶의 안전조차 보장받을 수 없음을 드러냈고, 많은 이들을 분노하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공분은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을 제대로 바꿔보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여배우'가 여성혐오적 단어임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던 이주영 배우의 소신 있는 행보는 단연 눈에 띈다. 자신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혐오를 구체적으로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다른 여성들처럼, 그녀 역시도 자신의 일에서 여성혐오적 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공론화했다. 특히나 개런티나 배역 문제처럼 훤히 보이는 구조적 차별을 지적할 때조차 '그게 뭐가 문제냐'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상황에서, 호칭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더불어 그녀는 그것이 단지 명칭의 문제가 아님을 명석하게 제시하기도 했다.

영화 <호텔룸>에 출연한 배우 김꽃비가 지난 2015년 10월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촬영 과정과 근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한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바로 배우 김꽃비다. 한국여성민우회의 회원이기도 한 그녀는 올해 초 단체가 진행한 '해보면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이루어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여배우'라는 단어가 성별만으로 배우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으며, '남배우'라는 말이 어색하다면 '여배우'를 쓸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그녀는 올해 페미니스트 영화, 영상인들의 연대를 위한 페이스북 페이지 '찍는 페미'를 열기도 했다. 김꽃비 역시도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연결 시킨 많은 사람들 중 하나다.

④ 경계 없는 삶을 온몸으로 보여준 엠버

그룹 f(x)의 멤버인 엠버 ⓒ SM엔터테인먼트


2016년은 여성에 대한 혐오나 차별뿐만 아니라 성별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문제제기가 이어졌던 한 해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왜 여성은 이러해야 하고 남성은 저러해야 하느냐는,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 논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연예인이 있다면 단연 엠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데뷔 이래로 그녀는 짧은 머리에 헐렁한 바지를 고수하며 기성의 여성성에서 탈피한 이미지를 보여왔다. 이런 그녀의 매력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엠버의 SNS를 통해 '너는 언제 여자처럼 할 거냐'는 질문을 던진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물론 그녀가 이런 질문들에 굳이 답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당한 질문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엠버는 '저는 여자예요. 여자는 원하는 스타일로 사는 거예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고 '차별은 무시하면 안 되고 고쳐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고 손쉽게 트집 잡히길 반복하는 아이돌 스타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나는 그녀의 이 같은 행동이 정말 용기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엠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노래 <Borders>를 발표하며 자신의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엠버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고개와 눈을 가로 젓고, 경계를 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그 압력에 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인 척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길을 찾아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이러한 노래는 같은 투쟁을 해나가는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 독려 덕에 분명 다가오는 새해에는 달라진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손예진 공효진 이주영 엄지원 김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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