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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 분 바람...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2016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할리우드 여성 스타들... 그들의 승리했던 방식

16.12.30 17:31최종업데이트16.12.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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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예계는 몇 년 전부터 일찌감치 페미니즘의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도 할리우드의 여성 연예인들은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였다.

스타들은 연예계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부당한 차별에 문제 제기를 이어갔고, 누군가는 이러한 현실에 맞서 직접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이같은 움직임은 연예계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다양한 사회 문제를 향해 뻗어 나가기도 했다. 여러 스타가 활약을 펼쳤지만, 그중에서도 2016년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의미를 지닌 인물들을 뽑아봤다.

[하나] 저항했고, 지치지 않았고, 살아남은 마돈나

싸웠고, 그래서 승리한 마돈나 ⓒ 마돈나 공식 홈페이지


그녀의 이름이 이 리스트에 등장한 것을 보고 누군가는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마돈나는 왕성한 활동을 펼쳤지만,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에 발매한 <Rebel Heart> 앨범은 평단의 호평을 끌어내긴 했지만, 그녀의 이름값을 생각한다면 상업적인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올해까지 이어져 온 투어 공연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지만, 그녀의 콘서트는 늘 이런저런 기록들을 새로 경신해 왔기에 별다른 감흥이 들진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언론에서도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녀가 열심히 투어에 집중하는 동안, 이제 트러블 메이커의 배턴을 넘겨받은 새로운 후배들이 마돈나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마돈나는 여전히 마돈나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이 목록에 호명될 자격이 있다. 특히나 올해는 1980~1990년대 팝 아이콘들의 사망 소식이 줄을 이었던 해다. 데이비드 보위를 시작으로 프린스, 그리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조지 마이클까지. 익히 알려져 있듯 연예계는 보통 사람이 아니고선 견디기 어려운 곳이다. 언급한 스타들 외에도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과 같은 스타들도 굴곡진 인생을 살았고 생을 마감했다. 물론 마돈나의 커리어도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녀가 막 인기를 끌던 때, 데뷔 전 생계를 위해 찍었던 누드 사진이 플레이 보이를 통해 누출되기도 했다. 마돈나가 <Erotica> 앨범을 발매하고 <SEX>라는 제목의 화보를 발간했을 때, 거의 모든 미국의 언론들이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마돈나는 한 번도 좌절에 빠지거나, 술과 마약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린 적이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면 더 센 욕으로 받아쳤으며, 비난을 마주하면 더 큰 사고를 쳐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일례로 자신을 조롱했던 레터맨쇼에 출연해 생방송 내내 음담패설과 욕설 파티를 벌인 일을 생각해보라. 얼마 전 '올해의 여성 음악인상'을 수상한 그녀는 소감에서도 자신을 욕하고 비난한 모든 적들에게 '당신들의 저항 때문에 나는 강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돈나는 지칠 줄 몰랐고, 거칠게 움직였고, 그리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싸우는 여자는 이겼다. 그녀가 산 증인이다.

[둘] 뜨거운 연대로 올해의 순간을 만든 레이디 가가

레이디 가가는 워싱턴에서 열린 '평등 행진(National Equality March)'에서는 직접 연단에 올라 성소수자들도 평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만들어 달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 Wikimedia Commons


돌이켜 보면 레이디 가가는 데뷔 때부터 인상적인 행보를 보였던 뮤지션이다. '인상적 행보'가 그녀의 개성 넘치는 의상과 파격적인 무대 연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디 가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하는 소신을 보여왔다. 일례로 그녀는 성 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발언을 이어왔으며 재단을 설립해 따돌림을 당하는 청소년들을 지원해왔다. 상담 버스를 운영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자살을 막고자 힘써왔고, 워싱턴에서 열린 '평등 행진(National Equality March)'에서는 직접 연단에 올라 성 소수자들도 평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만들어 달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런 레이디 가가의 행보는 2016년에도 이어졌다. 이제 그녀는 10대 우울증과 성 소수자 인권에 이어 성폭행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는 2014년에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긴 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 문제에 대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은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주제가를 부르면서였을 것이다. 작년에 그녀는 노래 <Till It Happens To You>를 발표했고 수익금을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데 기부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자신의 피해 경험이 스스로 미친 영향과 피해자로서의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레이디 가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슴 벅차고 강렬한 순간을 연출해 냈다. 주제가상 후보로 오른 <Till It Happens To You>를 공연하며, 노래의 진정한 주인공이자 당사자라 할 52명의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들이 당당하고 결연한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했던 모습은 그야말로 '올해의 순간'이라 할 만하다. 나는 레이디 가가의 무대가 보인 용기가 많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힘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그녀는 올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셋] 사랑스러운 괴짜 캐릭터의 전형, 케이트 맥키넌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에서 홀츠먼 역할을 맡은 케이트 맥키넌 ⓒ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


올해 여름 페미니스트 코미디 클럽이 주최한 <고스트버스터즈> 단체 관람 행사에서의 일. 보통 상영관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단관 행사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환호하며 왁자지껄하게 즐기곤 한다. 하지만 극장 예절에 너무도 잘 훈육되어 온 탓일까. 나는 비교적 얌전한 자세로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나조차도 환호성을 지르고 '어머'를 연발하게 한순간이 있었으니, 한 캐릭터가 권총형 프로톤팩을 핥고 느긋한 목소리로 'Let's go'를 툭 내뱉은 때였다. 그 인물은 바로 질리언 홀츠먼 박사. 아마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올여름 느닷없이 등장한 이 캐릭터는 뭇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갔다. 오죽하면 '햄식이(크리스 햄스워스를 이르는 애칭)이 보러 갔다 홀츠먼에 치였다'는 말들이 SNS에 떠돌았을까.

<고스트버스터즈>에 등장한 다른 캐릭터들이 모두 그랬지만, 홀츠먼은 정말이지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유례가 없는 캐릭터였다. 다른 여성 캐릭터에게 능글맞게 추파를 던지고, 자기 일에선 투철한 전문성을 보여주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엉뚱한 농담을 던지는 주요 인물은 주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액션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캐릭터가 기성 남성 캐릭터의 어색한 성별 반전 버전이었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케이트 맥키넌은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느긋함으로 오직 자신만이 가능한 너드(흔히 '괴짜'라 불리는, 기이한 취향의 사람을 이르는 말-편집자 주) 캐릭터를 구축해냈다. 어쩌면 폴 페이그 감독이 말했던 그녀의 범 성애적인 매력이 이를 가능하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케이트 맥키넌을 주목해야 하는 건 홀츠먼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고정 출연 중인 SNL에서 힐러리 클린턴 역할을 맡았고 대선 기간 내내 맹활약을 펼쳤다.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는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를 부르며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 덕분에 그녀는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 코미디 부문 여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녀는 올해 스크린에서 가장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이것만으로도 케이트 맥키넌이 기억할 만한 스타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넷] 폭력에 미소로 맞선 레슬리 존스

<고스트버스터즈>에서 패티 역으로 출연한 레슬리 존스. ⓒ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


올해 개봉한 영화 <고스트버스터즈>는 여성 중심의 상업 영화에 목말라 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영화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유령 사냥꾼들이 몽땅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점에 반발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는 채 공개가 되기 전부터 비난에 시달렸고, 이 같은 공격은 캐스트들과 제작사를 향하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유일한 비백인 주연이었던 레슬리 존스였다. 인터넷 '트롤'(인터넷에서 고의적으로 논쟁을 일으키는 사람-편집자 주)들은 그녀에게 인종 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트윗을 보냈으며, 상황이 지나치게 심각해진 나머지 트위터가 직접 나서 그 계정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존스의 개인 홈페이지가 해킹돼 그녀의 누드 사진이 유출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어쩌면 존스가 움츠러들고 좌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산전수전을 겪어온 존스는 만만하게 쓰러지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대범하게 맞받아치는 전략을 선택했다. 오히려 이 일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에미상 시상식에 등장한 그녀는 수상작 정보는 절대 유출되지 않는다는 보안 전문가들을 옆에 세워두고, 당신들이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정보를 지키는 동안 내 엉덩이는 CNN의 전파를 타고 있었다며 농담을 치기도 했다.

또한, 뉴스 코너 형식을 차용한 SNL의 'Weekend Update' 코너에서는 해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누드 사진이 보고 싶으면 그냥 달라고 농담을 던지며 그런 좋은 능력이 있으면 다른 유용한 일에 쓰라고 호통을 쳤다(그러니까 데이팅 어플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여성의 프로필을 지우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레슬리 존스는 자신을 공격한 혐오에 웃음으로 맞서 싸웠다. 수치심을 주려 한 사람에게 되려 대범함을 보였다. 코미디언으로서도, 폭력에 맞선 한 사람으로서도 그녀는 올해 최고였다.

[다섯] 혐오의 시대, 그래서 더 소중한 엘런 드제너러스

코미디언이자 토크쇼 호스트인 엘런 드제너러스. ⓒ flickr


올해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에서 마지막으로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이 메달은 미국 대통령이 매년 세계 평화,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메달이다. 이 리스트에는 톰 행크스나 로버트 드니로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동시에 멜린다 게이츠와 빌 게이츠처럼 사회 공헌 활동에 정력적으로 투신해온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주목한 수상자는 코미디언이자 토크쇼 호스트인 엘런 드제너러스였다.

아마 많은 이들에겐 아카데미 시상식 진행자로 더 유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커밍아웃한 연예인이 흔치 않았던 시기, 스스로가 레즈비언임을 밝힌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연인 시트콤에서 동명의 캐릭터를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시키며, 대형 TV쇼에 사실상 최초의 성 소수자 주인공을 만들었다. 물론 그 이후로 방송사는 엄청난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고 그 영향인지 그녀의 쇼는 얼마 안 가 취소되고 만다. 이후 엘런은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에 상당한 침체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의 호스트를 맡으며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녀는 커밍아웃을 통해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런데도 성 소수자 문제와 관련된 발언들을 이어갔다. 아우팅으로 한 청소년이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녀는 쇼에서 직접 그 사건을 거론하며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동성 결혼이 화두로 떠올랐을 때는 주요 대선 후보들을 자신의 쇼로 불러 입장을 묻기도 했다. 물론 공화당인 존 매케인은 여기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지만, 그녀는 '그래도 저랑 같이 예식장 복도는 걸어주실 거죠?'라며 웃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트럼프가 당선되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다시 역풍으로 거세지는 시기, 엘런 드제너러스는 최적의 메달 수상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혐오에 부딪혀 많은 것을 잃었지만, 다시 일어섰고 자신의 소수자성을 더욱 당당하게 드러냈다. 이런 그녀를, 우리는 앞으로 떠올릴 순간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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