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포스터
Leone Film Group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20년간 이탈리아 총리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그만큼 현대 이탈리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정치인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 기간 동안 이탈리아 검찰은 부패, 마피아 연루,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등으로 그를 60번 넘게 기소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단편적인 뉴스를 통해서나 그를 접했을 뿐, 베를루스코니라는 인물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나의 길>(My Way : The Rise and Fall of Silvio Berlusconi, 안톤줄리오 파니치 감독 2016년 작품)은 바로 이런 문제적 인물 베를루스코니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작품은 알란 프리더만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책의 저자가 직접 베를루스코니를 만나 인터뷰한 장면이 영화 곳곳에 삽입돼 있다. 여기에 각종 자료,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더해 전체 이야기를 구성했다.
유머와 고발이 동시에영화는 밀라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유년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2차 세계대전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젊은 나이에 부동산 재벌이 된 과정, 이후 방송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정계에 진출하기까지 이야기, 정계에 진출한 후 승승장구하다가 몰락하게 된 사연 등을 차근차근 전개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도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여러 의혹, 이를테면 그가 엄청난 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의 마피아 연루설,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과 함께 회자됐던 '붕가붕가 파티'의 실체 등 각종 논란에 관한 진실규명에 나선다.
물론 이 영화에 이처럼 진지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베를루스코니가 살고 있는 대지면적 22만 평에 이르는, 방 72개짜리 호화 저택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자신을 보기 드문 미남이라고 일컫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화려하게 등장하기를 좋아하는 그의 나르시시즘 성향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소위 '브로맨스'를 연상시키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나, 2011년 세계 금융위기 때 앙숙이었던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과 독일 메르켈 총리가 그를 총리직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실행했다는 음모설, 서방의 리비아 국가원수 카다피 제거를 둘러싼 외교가 뒷얘기 등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인터뷰어인 알란 프리더만이 앞서 언급한 각종 의혹에 대해 베를루스코니 면전에서 직접 해명을 요구하는 순간들이다.
물론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그 모든 게 자신을 깎아내리려는 음모요, 허튼소리라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대답마저도 듣기가 어려운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즉 인터뷰 내내 옆에 대기하던 베를루스코니의 참모들이 제작진을 어르거나 대놓고 막으면서 촬영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인물을 바라보는 자세영화 도입부, 베를루스코니는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를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알란 프리더만은 믿음직스러워서 들려주기로 했죠. 스티브 잡스가 자서전을 넘겼듯이 저도 제 일생을 들려드릴게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그의 바람도 약속도 결과적으로 공수표가 됐음을 알 수 있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베를루스코니 역시 이 영화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베를루스코니라는 인물의 공과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균형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평생 도전적이고 전투적으로 살았으며 늘 목표를 높게 잡아서 힘들었다는 그의 소회나, 처음 정치에 입문했던 때를 돌아보며 그전까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던 자신의 눈에 국회의원들은 나태하고 한심하게만 보였다는 발언 등을 보면 그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아온 인물임을 느낄 수 있다.
또 영화는 그가 방송 산업 발전에 끼친 영향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대중을 휘어잡은 인물, 분열된 보수 세력을 하나로 통합한 인물, 개혁을 하지 못해 이탈리아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린 인물, 유능하고 혁신적이면서도 부패를 저지른 사업가 등 그에 관한 다양한 평가들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그 가운데 한 저널리스트는 베를루스코니를 두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20년간 이탈리아를 지배하면서 당대 이탈리아 문화와 사고방식을 바꾼 인물이라고 평가했는데, 필자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가 정치생활을 하면서 무수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가 면책을 위해 기울였던 노력의 반만이라도 나라를 위해 썼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의 진실 여부를 떠나, 그 때문에 발생한 무수한 소송전이 베를루스코니 본인에게나 이탈리아 국민에게 지극히 불행한 일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지금 청와대에서 지리한 소송전을 계획하고 있는 그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또한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사적인 이유로 법과 제도를 바꾸는 등 정치를 일부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공통적으로 받고 있기도 하니, 반면교사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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