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실제인물
영화 피아니스트
1939년. 바르샤바 흑백필름 자료화면. 평화로운 일상, 쇼팽의 '녹턴 20번'을 피아노 반주하는 스필만, 폭격에 급히 피하는 사람들.
영화 오프닝 장면이다. 수백만의 일상과 꿈을 앗아가 버린 나치의 침공이다. 권력의 광기는 대 살육으로 치닫는데 무려 5년 동안 자행된다.
영화<피아니스트>는 2차 세계대전인 1939년 9월부터 1945년 1월까지 나치하의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한다. 나치의 만행을 다룬 영화는 이미 많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는 전쟁이라는 큰 프레임 속에 한 개인이 겪는 고통을 섬세하게 그린다. 폴란스키 감독이었기에 가능한 영화이다.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 남은 스필만, 어머니가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폴란스키의 슬픔은 역사적인 만행이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스필만의 시각을 통해 전한다.
고통을 주는 자, 고통을 견디는 자영화는 실제의 인물인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스필만이 된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그 상황을 시린 감성으로 표현했다. 여기에 고국 폴란드를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음악가의 선율에 담겨 더욱 애잔한 감성으로 파고든다. 일생 고국을 그리워 했으나 돌아가지 못한 쇼팽의 곡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가족과 동포와 함께 했던 전반부와 혼자 겪어내는 후반부이다. 영화<피아니스트>만의 독보적인 위치는 이 후반 때문이다. 물론 전반부의 나치의 잔인함은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이 영화가 이전의 것과 확연히 다른 점은 스필만의 고립감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욕망으로 채워 진 권력의 최악의 정점은 전쟁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광기어린 욕망이 역사이래 늘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과는 별개의 이유로 일어난다.
▲영화<피아니스트>중 1943년 유태인거주지역인 게토에서 일어난 유태인 봉기 진압과정
영화 피아니스트
절체절명의 순간에 살아난 스필만은 그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자칫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악의 순간에도 굴복되지 않는 인간의 숭고한 정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옳은 일을 선택한다. 유태인 거주지역인 게토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스필만이 게토를 탈출한 시기에 폴란드 역사에서 길이 남을 두 사건이 발생한다..
1943년4월19일부터 5월16일까지 거의 한 달의 유태인 봉기다. 유태인 게토 안에서 일어난 일로 철저한 감시 속에 있던 이들이 어떻게 조직적인 투쟁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총을 모아 들이는 일은 스필만에 게토 안에 있을 때 했던 일 중 하나다. 또 다른 봉기는 1944년 8월1일 바르샤바 민족봉기이며 대대적인 규모로 나치에 대항하여 일어난 사건이다. 두 사건의 의미는 전쟁이라는 삼엄한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쓴 항쟁으로 폴란드인들에게 긍지를 갖는 역사적 일로 남아있다.
스필만을 도와 준 아니냐는 말한다. "독일군들이 놀랐을 거예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죠. 폴란드인들도 싸울 거예요"라고. 1년이 지난후 대규모의 바르샤바봉기가 일어났다.
스필만을 통해 바라본 전쟁
▲영화<피아니스트>중 은신처에 숨어 있는 스필만
영화<피아니스트>
안타깝게도 이 두 사건의 현장 가까이에 스필만은 있었다. 그의 은신처 건너편에서 일어났으며 숨어서 유리창 너머로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항거하는 민족의 모습을 스필만의 시선에서 그린다. 대규모 장비와 화력을 가진 나치에게 대항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할 수도 있으나 유태인들은 장렬하게 싸운다. 그대로 앉아 죽을 수만은 없었던 그들은 결사항전을 택한다. 커텐이 드린 창으로 내다보는 스필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절절하다. 얼마 전까지 자신과 함께 먹고 생활했던 동포들이다. 망연자실한 그의 눈빛과 표정은 불과 몇 미터의 거리가 너무 먼곳이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휘청거리는 스필만이 뛰쳐나와야 했던 절박한 상황, 병으로 위독한 상황까지 가야 했던 그의 고통과 외로움을 영화는 사실적으로 냉철하게 표현한다. 스필만의 고통을 공감하는 폴란스키 감독의 심정이다. 또 스필만을 연기하는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는 공포와 추위, 배고픔에 짓눌린 스필만이었다.
▲영화<피아니스트> 은신처에서 독일장교에게 발각되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피아노 연주하는 스필만.
영화<피아니스트>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독일군은 퇴각 때까지 바르샤바의 85%를 파괴하였다고 한다. 진압군의 파괴와 수색에 필사의 탈출을 하는 스필만의 눈에 보인 바르샤바는 처참하다 못해 무감해진다. 포스터 속의 장면이다. 멀쩡한 건물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거대한 파괴의 현장에 작고 비틀거리는 스필만의 모습을 담는 이 장면은 모든 것이 끝난 절망 그것이다. 스필만 마저 집어삼켜 버릴 듯 섬뜩하다. 쇼팽의 발라드 G minor가 흐르며 다시 보여지는데 그 삭막함에 흐르는 선율은 더욱 애처롭다. 실로 몇 년만에 연주하는 스필만이다.
독일 장교와 맞닥뜨린 곳에 피아노가 있었다.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 마지막이라고 여겼을 스필만의 연주가 시작된다. 혼자 견디었던 모진 고통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이제는 끝이라 생각했을 연주였다. 아마도 영화에서 가장 기억되는 명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스필만은 살아남았다. 수백만명이 죽어간 부끄러운 인류의 비극속에 그는 살아남았다. 모진 시간을 홀로 견뎌 낸 스필만이 살수 있었던 힘은 죽음을 불사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힘은 피아노였다. 힘들 때마다 의지했던 피아노다. 영락없이 죽었을 순간 독일 장교의 관용을 이끌어 낸 것도 피아노였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 했던 스필만의 삶이었다.
▲영화<피아니스트>중, 스필만의 가족 스필만을 제외한 모든 가족은 수용소로 가는 기차를 타고 떠났다.
영화<피아니스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가장 슬픈 대사가 있다. 죽음의 길로 가는 가족과 분리되어 탈출한 그에게 평생 죄의식을 갖게하는 일이 있었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 피난가려던 가족을 만류하던 스필만은 가족과의 최후의 순간 여동생에게 무겁게 담고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좀 더 현명해야 했어"
이 일은 살아남은 자를 짓누르는 죄책감이 되었다. 어느 누가 이런 만행을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자신도 게토에서 살았던 유태인이기에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힘들었을 폴란스키 감독은 영화<피아니스트>를 되도록이면 냉정한 터치로 그리려 했다. 영화를 만들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더 이상 인류역사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지구 한 쪽에서 계속 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영화를 보면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평생 그 악령에 시달린 이야기를 그린 만화<쥐>가 떠올랐다. 지옥에서 살아 남았으나 그 트라우마에 자신과 가족 모두 고통을 겪는 내용이다. 문학작품이 아닌 만화가 퓰리쳐상을 받은 유일한 작품이다. 다시 한 번 봐야겠다.
또 현재 팔레스티나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린 가슴 아픈 만화<아! 팔레스타인>, 역시 다시 볼 만화로 두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영화<피아니스트 >포스터 1944~1945년 겨울 바르샤바봉기 진압부터 독일군 퇴각 때까지 바르샤바의 85%가 폐허로 변했다.
영화<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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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광기가 파괴한 개인들... 그래도 인간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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