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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디바' 이은미도 떨게 한 '어마무시한' 150명

[장수 프로그램 기획⑤-2] '밀착 소통'의 공간, EBS <스페이스 공감> 소극장

16.12.31 17:59최종업데이트17.02.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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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뒷줄에 앉았다. 그럼에도 아티스트의 모든 게 보였다. 노래에 집중할 때 생기는 미간의 주름, 밴드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파이팅'하는 눈빛, 감정에 따라 변하는 미세한 손끝의 떨림까지. 과장하자면 모공까지 보일 정도였다.

가운데 구역은 3열, 양옆은 5열. 적은 수의 좌석이 무대를 둘러싸고 가로로 길게 늘어져 있는 <스페이스 공감>의 특별한 공연장. 덕분에 관객은 뮤지션을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기자가 앉은 맨 뒷줄은, 그러니까 고작 세 번째 줄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라이브를 듣기는 나 역시도 처음. 초밀착 공간이 주는 설렘 역시 처음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강남구 EBS 본사 안의 <스페이스 공감>(아래 <공감>) 공연장을 찾았다. 2004년부터 이어져온 <공감>의 장수비결을 탐색하기 위해서. 이날은 '맨발의 디바' 이은미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뮤지션도 관객도, 소개팅 하듯 떨리는 마음으로

▲ 이은미 가수 이은미가 지난 15일 오후 EBS 음악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섰다. ⓒ EBS


공연 시작은 오후 7시 30분. 객석 입장을 기다리며 살펴본 가이드북에는 아티스트에 대한 소개와 이날 듣게 될 노래목록 등이 적혀있었다. 무엇보다 '노래하는 사람 이은미'라고 적힌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지난 20일 오후 EBS 근처 카페에서 만난 이혜진 PD는 "이은미씨의 공연명은 다른 수식어 없이 단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으로 충분할 것 같아 그렇게 정했다"고 했다. 이렇듯 매일 있는 무대를 위해서 가이드북 만들랴, 뮤지션 인터뷰 찍으랴, 뮤지션 소개 영상 만들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객석 입장이 끝나자 안내 문구가 흘러나왔다. "돌아서 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뮤지션이 절망하지 않도록 부디 끝까지 자리를 지켜달라"는 내용이었다. 재치 있는 멘트에 객석은 웃었다. 이 피디는 "너무 엄숙하지 않게, 젊은 분위기로 가려고 신경 쓴 안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함이다. 아무래도 객석이 무대와 무척 가깝고 카메라가 관객을 찍다보니 이를 의식하고 굳어지는 것. 긴장한 뮤지션과 긴장한 관객. 양쪽을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기 위해 제작진은 특히 노력하고 있다.

물론 뮤지션이 가까이 있어서 싫다는 게 아니다. 좋은데 떨리는 그런 기분. 이 때문에 객석이 얼어붙는 건데,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무대에 서는 뮤지션도 똑같은 마음이란 사실이다. 이 피디는 "프로 가수들도 우리 무대에 서면 경직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은미씨는 1000회 넘게 공연을 해온 베테랑이지만, 다른 가수보다 리허설에 30분을 더 투자했고 음향에도 더 신경 썼다"고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뮤지션 입장에선 소극장 공연을 앞두고 더 예민해진다는 의미다. 보통 리허설은 공연 시작 3시간 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 이은미 EBS <스페이스 공감> 객석은 무대를 둘러싼 형태다. ⓒ EBS


"이 무대 참 어려워요. 사람들이 앞에서 가깝게 저를 보고 있으니까 큰 공연보다 훨씬 떨리네요. 이렇게 한 분 한 분 아이 콘택트를 할 수 있어서 참 좋기도 하고요."

작은 무대지만, 아니 작은 무대라서 더 떨리고, 그래서 참 좋다고 이은미는 말했다. 지난 10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 모인 80만 국민 앞에서 노래했던 사람이 그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하는 7차 범국민행동 본무대를 꾸몄다. 어디 그 뿐이랴. 이은미는 전국을 돌며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공연을 펼치는 라이브 가수다. 그런데도 150명 남짓의 <공감> 관객 앞이 어느 무대보다 떨렸다고 하니, 다른 가수들은 오죽하랴.

어디서도 없는 내밀한 소통이 이뤄지는 곳

이 피디의 말에 따르면 많은 가수가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울렁증'을 호소하면서도 출연하길 원하는데, 이유는 이렇다.

"우리 무대는 시간이 기니까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출연료도 많이 못 받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하는 이유는 오직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연예인이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고스란히 그 사람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으니까요. <공감>은 방송에 함께 담아내는 인터뷰도 오직 음악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거든요. 그 사람의 음악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그것에만 집중해요.

그리고 라이브에 자신이 없는 뮤지션은 안 나오시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 있는 가수들이 출연을 선호하고 반면 실력이 없는 뮤지션은 고스란히 티가 나는 게 우리 무대입니다. 코앞에서 관객이 라이브를 보고 있으니까요."

▲ 이은미 이날 이은미는 히트곡 '녹턴', '애인 있어요' 외에도 '미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바람기억' 등 자신의 리메이크 앨범에 담은 곡들을 선보였다. ⓒ EBS


뮤지션의 부담이 커질수록 관객의 기쁨은 비례한다. 터놓고 말해, 유료 콘서트에 가도 이보다 가까이서 아티스트와 호흡하긴 어렵다. 그런데 <공감>은 무료 공연에, 앙코르 포함 보통 1시간 30분의 무대가 펼쳐지니 관객으로선 욕심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경쟁률이 높다. 150석이 매 공연마다 가득 차는데, 평균 경쟁률은 9대 1이라고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오직 사연이 담긴 마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티켓이기에 더욱 값지다.

이 피디는 무대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도 들려줬다. 공연장은 원래 회사 강당으로 사용했던 곳인데, 지난 2004년에 <공감> 방송을 시작하며 콘서트홀로 바꿨다고 한다. "선배들 말로는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오래 갈지 몰랐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알려지지 않은 출연자들이 나오고, 엠씨가 나와서 재미있게 이끄는 것도 아닌 데다가, 계속 노래만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모든 게 관객에겐 '땡큐'다. 특히 어쿠스틱과 재즈 공연을 할 때면 마이크 너머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객석에 들린다고 하니, 돈 주고 못할 귀한 경험이다.

내년 EBS의 이사는 그래서 관객에게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2017년에 EBS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통합센터를 여는데 <스페이스 공감> 공연장은 약 2배로 늘어난 300석이 마련된다. 하긴, 300석도 소극장형 무대이긴 하다. 이 피디는 어떻게 사람들을 일산까지 오게 할지 그 고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어 보였다. 공연을 본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공연 후기 글이 올라오는데 "처음 보는 뮤지션이었지만 공연을 관람하고 너무 좋아서 CD를 샀다"는 글을 볼 때 제작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관객에게 <공감> 무대 확장은 분명 좋은 일처럼 보인다. 

이은미, 관객과 함께 대화하고 함께 노래했다

▲ 이은미 관객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이은미. ⓒ EBS


이쯤에서 이날 관람한 공연 후기를 전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은미와 내가 개인적으로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날 이은미는 무대에서 이런저런 소소한 근황과 음악 이야기를 들려줬다. 객석에서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해도 다 들리는 탓(?)에 관객과 아티스트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다른 (방송)공연 때는 잘 못 하는데 <스페이스 공감>은 1시간이 넘으니까 히트곡을 해도 될 것 같아요. 음... '이은미 그 노래 좋더라'란 말을 듣는 데 곡 내고 3년은 걸려요. 길면 5년? 제 곡들이 입소문으로 퍼지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인데 지금 들려드릴 '녹턴'도 그런 곡입니다."

그는 노래 하나를 부를 때마다 이런 식으로 그 곡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줬다. 이날 '녹턴'을 시작으로 이은미는 '어떤 그리움', '미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가슴이 뛴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 '바람기억', '애인 있어요' 등을 불렀다. '미아'를 소개하면서는 "우연히 이 곡을 듣고 부르고 싶어서, 작업하던 새 음반을 내년 봄으로 미뤄놓고 이 앨범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 앨범은 지난 10월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아모르파티>다. 그는 "니체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며 '아모르파티'를 말했다"고 설명하며 "이번 생은 노래가 내 운명이라 생각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친근한 대화를 계속 걸어왔다.

"제가 아는 엔지니어가 드디어 스튜디오를 차렸어요! 무려 천장 높이가 8m라서 공간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울림을 담을 수 있었어요. 따로 녹음해 합치는 게 아니라 밴드와 같이 스튜디오에 들어가 동시녹음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꿈만 같았죠."

앨범 <아모르파티> 수록곡인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소개하면서는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도 털어놨다.

"최백호 선배님은 멋진 음악을 하시죠. 이런 멋진 음악을 하고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질투도 나요. 어떻게 편곡해도 최백호 선생님을 뛰어넘을 수 없어서 소주를 많이 마셨죠."

이날 이은미는 혼신을 다해 노래했다. "공연은 비싸니까 티켓값이 아깝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공연에 임한다"며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래하는 사람 이은미'라는 공연명이 잘 어울리는 무대였다. 방송으로는 오는 1월 5일 볼 수 있다.

▲ 이은미 이은미는 1988년 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1992년 1집 앨범 <기억속으로>를 발표하고 꾸준히 무대에 섰다. ⓒ EBS


▲ 이은미 그는 관객과의 친근한 소통에 행복한 마음을 드러냈다. ⓒ EBS



이은미 스페이스공감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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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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