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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카카오톡 상태메시지 "아직도 배우는 학생 김광석"

[인터뷰] 영혼을 울리는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 김광석 (하)

16.12.30 12:21최종업데이트16.12.3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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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국화 시절 1995년 전인권씨와 공연중에 찍은 사진이다. 두 사람은 동갑이며 친구다. 가끔 의견대립은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사이다. ⓒ 김광석


그는 '히파이브'를 탈퇴하고 얼마 후 그룹 '들국화'의 초기 멤버로 들어갔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사랑한 후에', '제발' 등이 그때 같이 연습한 곡들이다. 그가 들국화 멤버로 활동하면서 보았던 전인권씨는 노래만 생각하는 훌륭한 가수였다.

"전인권씨와 제가 동갑이에요. 친하죠.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 좋아했어요. 서로 인정해주고. 전인권씨는 노래만 생각하며 항상 음악에 집중해 있어요. 보통 가수들이 그 정도 인기 얻으면 연습도 게을리 하고 음악도 잘 안 들어요. 근데 전인권씨는 다른 생각 안 하고 음악만 생각하며 사는 거예요. 지금 전인권씨 노래를 들어보면 옛날보다 천 배, 만 배 좋아졌어요. 지금 소리는 완전 감동이에요. 진짜 영혼이 있는 소리죠. 아주 진실하고 음정도 좋아요. 그의 소리에는 자신의 모든 게 온전히 녹아들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인권은 위대한 친구예요. 관리만 좀 잘했으면 세계적인 무대에 서 있을 사람이죠."

선 채로 기절할 때까지 음악만...

▲ 장사익 선생과 함께 장사익 선생은 김광석의 1집 앨범 중 '불꽃'을 좋아한다. ⓒ 김광석


그는 1995년에 자신의 아파트를 팔아서 1집 앨범 <고백(The Cofession)>을 발표했다.

"앨범에 메탈, 록, 재즈, 오케스트라 이런 거 다 나오잖아요. 나는 이런 장르 다 할 수 있어, 나의 기타실력이 이 정도다, 이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시 40대 초반이었으니 저의 실력을 뽐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거죠. 10곡을 제가 다 작곡했는데, 어딘가에 있는 스타일이라 창작앨범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작곡과 창조는 개념이 틀린 데, 피카소 그림처럼 전혀 지금까지 없었던 걸 새로 만들어내는 그런 게 창조라고 할 수 있죠."

1집 앨범 중에서 '불꽃'은 리듬과 색깔이 독특하다. 장사익씨가 특히 '불꽃'을 좋아한다.

"그거 백두산의 한춘근이 드럼, 베이스 기타는 박성훈씨, 그렇게 3인조로 녹음했어요. 녹음 들어가기 전에 엔지니어에게 녹음실에서 연주 소리가 나면 바로 녹음을 하라 일러두었죠. 녹음실에 악기를 세팅해 놓고, 불을 끄고, 촛불을 켜서 빙 둘러놓았죠. 제가 그 친구들을 데리고 녹음실에 들어가자마자 먼저 디디디딩~ 기타를 쳤죠. 뒤이어 드럼이 땅~ 하면서,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녹음을 한 거죠. 음악에 미친놈들의 열정만 믿고 무조건 간 거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그렇게 녹음을 끝냈어요. 걔네들은 녹음하는지도 몰랐어요. 마치고 나오자 제가 녹음 끝났어. 그러니까 다들 황당해했죠. 뭐야 녹음한 거야? 안 되는데. 다시 해. 잘할 수 있어 그랬어요. 아마 그렇게 녹음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예요.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어떤 음악의 열정, 혼 같은 것을 담으려고 한 거죠."

▲ 2집 앨범 <비밀> 2집 앨범은 43곡을 담은 음반 4장으로 이뤄진 대작이다. 2억 정도의 큰 돈이 들어갔으며, 음반제작을 위해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팔고 월세로 이사해야만 했다. 1집 만들 때 집을 팔고, 또 이번에도 집을 팔아야만 했으니 가족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광석씨는 "제 아내가 하여튼 고생 많이 했어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라며 부인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 김광석


2집 <비밀>은 음반 4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2집 앨범을 만들기 위해 2년 동안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하고 거의 묵언하다시피 생활했는데, 이것은 기타와 자신과의 대화를 담기 위해 몰입한 시간대였다. 음반을 만드는데 3개월 정도 소요되었지만 여기까지 이르는데 수도승과 같은 보이지 않는 구도자적 치열함이 내재하여 있었다.

▲ 3집 앨범 <은하수> 3집은 돈이 없어 집 거실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녹음하였다. 3집에서 '행복'은 위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상태가 좋아져서 일반병실로 옮긴 후 병실화단에 나가서 만든 곡이다. 죽을 뻔하다가 살았으니 너무 행복했었으며, 그래서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은 음악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 행복이 보인다고 말한다. ⓒ 조우성


3집 앨범 <은하수>는 몽골 밤하늘의 깨끗하고, 광활하고, 경이롭고, 신비한 은하수의 느낌을 표현한 것인데, 어쿠스틱기타로 민속적이고 토속적인 느낌을 살렸다. 4집 <구름위에서 놀다>는 세상에 없는 음률, 소리, 테크닉을 모토로 해서 제작한 것인데, 이를 위해 기타와 고대 악기인 비파를 개조하여 만든 '비타'와 '판현'을 사용하여 '선비'들의 내면세계와 정신, 혼의 울림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진정한 울림은 악기가 아니라 마음,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고, 혼과 마음이 온전히 음률 속으로 들어갔을 때 참된 울림이 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 4집 앨범 <구름위에서 놀다> 4집 앨범 <구름위에서 놀다>는 명주실을 엮은 '비타'로 선비들의 정신셰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 김광석


김광석씨는 2010년 4집 앨범을 만들어 놓고 심장 수술을 했다. 젊은 시절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무리를 한 탓이었다.

"심장 판막증이었어요. 수술하고 복대를 4~5개월 차고 있어야 하고, 회복 기간이 1년 정도 걸린대요. 근데 제가 그런 상황에서 앨범이 나왔다고 보름 지나서 복대 찬 채로 공연했어요. 말도 안 되는 거죠. 2달 있다가 콘서트를 열고. 너무 미친 거죠. 어느 날 초청공연 하러 계단을 올라가다가 제가 선 채로 기절해 버렸어요. 몸이 얼음처럼 딱 굳어버리는 거예요.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싶어 그 뒤로 '깨갱'하고 집에서 1년 정도 쉬었어요."

집에서 쉬면서 그는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순리에 자신을 맡겼다. 내면의 자신과 싸우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놓아두니 마음이 조금씩 비워지고, 기타 치는 것도 여유롭고 즐거워졌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편안해 지면서 기타의 참 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고,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작심을 한다고 뭐가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거 반짝이에요. 연속적으로 오랫동안 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순리에, 세상의 흐름에 저를 탁 던져버리고,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살아간 거죠. 그랬더니 건강도 좋아지고, 음악도 새로운 차원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거죠."

아직도 기타에 미쳐있는 이 사람

▲ 가수 주현미씨와 함께 그는 국내 최정상 가수들의 음반작업에 세션으로 참여하였고, 이들과 함께 공연도 자주 하였다. ⓒ 김광석


그는 기타를 치는 시간이 많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기타를 친다. 밥을 먹다가도 기타를 잡는다. 사람들은 기타에 미친 그를 경이롭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기타를 좋아할 수 있냐고.

"자신에게 재미없는 길이면 자기 길이 아닌 거예요. 자기 길이 아닌 것은 어렵고 재미없는 거죠. 저는 기타가 재미있어요. 옛날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전쟁을 했지만, 지금은 제가 재밌으니까 하는 거예요. 저는 밤새 기타 쳐요. 새벽에도 나가서 기타 치고. 우리 집 사람이 이런 상황을 도저히 이해 못 하는 거예요. 밖에 나가서 밤새 뭐하네요. 집사람은 제가 밖에서 딴짓 하는 줄 알고 있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어떻게 새벽까지 기타를 쳐? 그래서 아내하고 많이 틀어지기도 했어요. 제가 오죽하면 2집 음반 제목을 '비밀'로 정했겠어요. 나에게는 아름다운 비밀이 있다, 남들이 모르는 거, 내가 그동안 나 혼자서 기타 치고 나 혼자서 행복을 만끽했다는, 그런 비밀이 있다는 거죠."

그는 자신의 음반을 알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일부러 방송국을 찾아본 적도 없고, 콘서트장에서 음반을 갖다 놓고 팔아 본 적도 없다. 듣던가 말던가, 인연이 있으면 듣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인기 있다고, 실력 있다고 잘난 체하고 으스대는 모양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해 줄 때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생활해야지, 거기에 고무되어 우쭐거리면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명예, 돈 등을 모두 비워버리고 제일 밑바닥으로 가야 해요. 완전 밑바닥. 그거는 어떻게 보면 자신과의 싸움이죠. 제가 그걸 떨쳐버리고 보니 더 좋아요. 오히려 인기에 목메고 이럴 때는 웃기는 일이 많이 벌어지더니 말 한마디 안 하고 연주에 집중하면 다들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쳐요."

▲ 현대무용가 김순정 교수와 함께 발레를 전공한 성신여대 김순정 교수와 협연을 펼치고 있다. ⓒ 김광석


그는 중용과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빠르게 칠 수 있으면 느리게도 칠 수 있어야 하고, 느리게 칠 수 있으면 빠르게도 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것을 칠 수 있으면 복잡한 것도 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양극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려운 걸 할 줄 알면 쉬운 것도 할 줄 알아야 해요. 어려운 건 하는데 쉬운 것을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쉬운 것도 하면서 어려운 것도 할 줄 알고, 아주 큰 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하고 아주 작은 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식으로 양극을 왔다 갔다 할 줄 알아야 해요."

음악적 성숙을 향하여

▲ 인간문화재 하용부 선생과 함께 밀양백중놀이 인간문화재인 하용부 선생이 김광석씨의 기타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김광석


음악적 성숙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코스를 밟아도 긴 시간이 걸린다. 국악인들이 '죽기 전에 득음한다면 늦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을 할 정도니, 소리를 통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득음이라는 거는 참 어려운 거예요. 그거는 연습을 안 하고는 안 되겠지만, 또 연습만 한다고 되지 않는 게 득음의 세계에요. 득음하려면 자기 아집이 없어야 해요. 절대 순수해야 하고. 이거 가지고 내가 영업을 해서 돈을 벌겠다든지 하는 그런 목적이 없어야 해요.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하고, 또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게 없어야 해요. 쉽게 얘기해서 실력으로 자기를 누르고 있는 사람, 자신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득음자는 한 시대에 한, 두 명 나온다고 그러는 거겠죠."

그는 춤꾼들이 좋아하는 연주자다. 발레는 성신여대 김순정 교수, 인간문화재 하영부 선생, 춘천마임축제를 만든 유진기씨 등 당대의 최고수들이 그의 기타연주에 맞춰 춤추기를 희망한다.

"최근에 춤추는 사람들이 협연요청을 많이 해요. 춤추는 사람들이 저랑 공연을 많이 해요. 전통무용 하는 사람들, 퍼포먼스 하는 사람들, 발레 하는 사람들이 자꾸 저보고 같이 공연을 하고 싶다 그래요. 제 연주에 춤을 추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 방면의 최고수들이에요. 득음하면 사람들이 연주자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싶어 한다고 그러데요."

▲ 전통무용가 송민숙씨와 함께 김광석씨의 기타리듬을 타고 춤을 추는 전통무용가 송민숙씨. ⓒ 김광석


그는 카카오톡 대문에 '아직도 배우는 학생 김광석'이라고 적어 놓았다.

"저는 아직도 학생이죠. 누구든지 칭찬받으면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자기가 엄청 대단한 존재로 착각해서 더는 배울 생각을 안 하잖아요. 인기 있고, 사람들이 으쌰 으쌰 해주면 그 맛에 취해서 깊이 있는 음악 속에 들어가지를 못해요. 저는 혼자 앉아서 기타 칠 때가 제일 재미있는데, 그렇다고 시간을 정해 놓고 치지는 않아요. 시간을 정하면 저를 옭아매게 돼요. 몇 시간 연습해야 되겠다 하면요 자기를 구속하는 거예요. 가장 어리석은 게 자기하고 싸우는 거예요. 자기를 구속하고,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치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오래 못 가요. 며칠, 몇 달, 몇 년을 못 가요. 그렇게 해서는 평생을 하지 못해요."

그는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그냥 즐기면서 자신의 길을 간다. 앨범은 낼 수 있는데 까지 내보고….

"아무리 천재로 태어나도 노력하는 사람 못 당한다고 그래요.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 못 당하고, 즐기는 사람은 미친 사람 못 당하죠. 어떻게 당해요. 미친 사람은 잠도 안 자고 해대는데. 미친 사람은 누굴 못 당하겠어요. 거기까지는 사람들이 얘기 안 하죠. 미친 자는 비운 자를 못 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비우려고 한다는 것은 한 단계 도약하고 싶다는 거죠. 근데 그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는 거예요. 제 인생을 돌이켜 보면 그 순서를 밟아왔다고 생각해요. 이제 욕심을 비우려고 그래요. 비우지 못하면 뭔가 자기를 보여주려고, 재주를 보이려고 샛길로 빠지거든요. 그건 크게 보면 의미가 없다는 얘기죠. 재주로, 기교로, 인기로 득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김광석 고백 은하수 비밀 구름위에서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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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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