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윤여정 분)과 옛 단골 재우(전무송 분). 영화 속 재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조차 소영에게 떠넘길 만큼 무력하고 비겁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를 본 누가 그 과정이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CGV 아트하우스
영화는 소수자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만큼 상대적으로 주류에 속한 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은연중 내보이는 것 같다. 영화에서 소영에 '비해' 주류로 읽히는 캐릭터들, 그러니까 소영이 KFC 매장에 들어갔을 때 주문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이나, 중풍에 걸린 옛 손님의 며느리와 손주들, 근린공원에서 운동하고 있던 할아버지, 소영이 찾는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심지어는 시민단체 운동가까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냉정하고 배려심 없으며 때로는 염치없고 몰상식한 이들로 그려진다. 이들에 대한 작가의 불편한 인식이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의 소영에게 굳이 영어로 된 어휘들을 집요하고 반복적으로 묻는 아르바이트생은 오히려 실생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와 같이 배려 없고 매뉴얼에만, 그런 매뉴얼이 실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충실한 아르바이트생이 있기야 하겠지만 유독 그 아르바이트생이 영화에 등장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심지어 영화엔 그처럼 공감 능력도 배려심도 없는 인물이 매우 많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소영과 그 주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류 집단에 속해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특징적이다.
중풍으로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찾아 그에게 그래도 관심을 보이는 아버지 뒤에서 벽에 기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10대 남매의 모습.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냄새난다"고 하는 아이들. 할아버지의 친구 자격으로 병실을 찾은 소영에게 대놓고 재산 운운하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며느리까지. 어째서 영화엔 이런 인물들만 한가득한지. 과연 의도가 없는 캐릭터들이라 할 수 있을까? 의도가 있다면 과연 어떤 의도였을까?
한때는 주류였을, 그래서 돈을 주고 소영의 성을 샀을 남성들이 이제는 늙고 병들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주류에 대한 작가의 적개심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화는 이들이 자기 죽음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그들보다 형편이 못한 소영의 손을 빌리려는 무력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이 중풍으로 쓰러진 노인을 제외하고 다른 남성들은 충분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소영에게 짐을 떠넘기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게 읽혔다.
이처럼 영화는 등장하는 캐릭터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서 바라보고 있고, 비주류에 애정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젊거나, 번듯한 직업이 있거나, 비교적 부유한 이들에 대해 다소 왜곡된 시선을 내보이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돌을 씹는 불편함이 느껴진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영화엔 소영의 성을 사 온 것으로 보이는 '단골손님' 노인들도 등장한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주요 등장인물과는 사정이 다소 다르다. 단골손님들은 적어도 한때 소영의 성을 구매할 수 있는 위치였으나 이제 나이가 들어 그마저 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린 노년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남자이고 소영에 비해 형편이 나아 보인다는 점에서 앞에 언급한 인물들처럼 단순한 소수자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이들을 자기 죽음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소영의 손을 빌리는 비겁한 사람들로 그려나간다. 그나마도 한 명은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다는 설정 덕분에 자연스럽게 읽히지만 다른 두 명의 경우엔 관객을 쉽게 이해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 영화가 끝나고 이야기를 함께 나눈 사람들 중에도 이런 설정이 과도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무리한 설정을 영화가 굳이 사용한 이유가 있었을까. 영화가 소영과 티나, 도훈 등에게 보이는 애정 어린 시선에 비해, 이들을 보는 냉정한 시선의 격차가 컸다.
영화가 심은 작은 희망, 소외된 자에게 내미는 손
▲소영(윤여정 분)과 코피노 소년의 만남. 영화 속 누구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소영은 다른 누구보다 주변을 돌아보고 챙기는 인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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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두드러진다. 특히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당시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던 이들을 잡아내고, 영화 말미엔 누가 봐도 CG로 삽입한 게 분명할 만큼 무리하게 고 백남기 농민과 관련한 뉴스를 보여주는 것 등이 그렇다.
하지만 문제의식보다 구체적인 고민이나 메시지가 얕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류와 비주류를 분리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이들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어려운지, 이들의 곁에 공동체라 할 만한 게 없는 이유는 무언지 등의 물음에 명쾌하게 답하기 위해 감독이 더욱 치열한 고민을 해야 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소영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영화 전체에서 오직 그만이 더 나은 위치에서 더 못한 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소영에게 던지는 그의 질문들에서 느껴지듯 그 역시 특별한 고민 없이 박카스 할머니란 소재를 택한 듯 보이지만 그의 질문이 있어 소영은 누구도 듣지 않는 자신의 사연을 조금이나마 털어놓을 수 있었다.
마치 퉁겨진 공을 가져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금을 넘은 사내와 같이 영화 속 다큐멘터리 감독만이 우연히 금을 넘어 자기보다 못한 이들의 사회에 발을 들여놨다. 결국, 영화의 주제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비주류와 주류의 구분이 없어지려면, 그러니까 소외된 자들과 그들을 소외시키는 자들의 구분이 없어지기 위해선 형편이 나은 자가 먼저 자기보다 못한 자에 손을 내밀고 그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 본래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언론이겠으나 영화가 고 백남기 농민 보도를 통해, 또 "저 사람에게도 사연이 있겠지" 하는 소영의 혼잣말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 다큐멘터리 감독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싶다.
금을 넘어서 손을 내민 다큐멘터리감독이 소영의 삶을 얼마나 바꿨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이분법적 영화가 그의 캐릭터를 통해 작은 희망 하나를 심어두고자 했음은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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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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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곳 없는 세상, 존엄 없는 사회에 날리는 소외된 자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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