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본에 있었다. 과제 관련해 각국 대표들이 모였던 자리였는데, 내 나라가 부끄러워 위축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출장 전까지만 해도, 그 짧은 사흘을 견디는 것이 이리도 힘이 들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출장 동안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자랑스럽지 못한 나라'를 대표하여 그 자리에 앉아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하소연할 대상을 찾아내지 못한 채 답답한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 지난주 내내 내 나라가 부끄러웠고, 괴로웠으며, 국민을 존중하지 않는 지도자의 폭력으로 인해, '불행한 국민'으로 살아온 시간이 불쾌했다. 그렇게 너무도 길었던 사흘이 지나갔고, 다시 돌아온 한국에는 추적거리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처방전처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대통령의 이야기를 찾아 극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를 만났다.
16대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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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스틸 이미지. 지난 26일 개봉한 이 영화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온 길을 추적하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작품이다. |
|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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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6대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며, 또 다른 무현인 '백무현 화백'의 마지막에 대한 영상이다. 어쩌면 우리가 자랑스러운 승리의 경험으로 간직한,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으로 존중받는다고 느꼈던 그 시간에 대한 기록. 나는 그 시간을 돌아보며 지금의 '야만'을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도망친 곳이 결국, 더 이상은 만나 뵐 수 없는 '16대 대통령의 인생'이었다.
"여러분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 잘못된 선택이었다. 영화관의 조명이 꺼지고 암전의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부터 눈물이 쏟아진다. 어쩌면, 그동안 '울고 싶었던' 시간을 꾹꾹 눌러 담아 참아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내내 흘러가는 그의 목소리와 표정들, 신념을 전해 듣는 것이 너무도 슬펐다. 언제라도 우리에게 '잘하고 있다'고 위로를 전할 수 있는 그분이,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 우리의 가장 찬란했던 '기대'는 그의 '이상적'이고 '무모한' 도전이 만들어 준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지켜내지 못했다.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나는 그분이 떠난 나라에서 '여왕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벌'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눈물은 통곡이 된다.
애석하게도 이 영화는 전국에서 36개의 개봉관을 확보한 채 시작되었다. 영화를 보려면 큰맘 먹고 여행이라도 해야 할 수준이다. (포항에 사는 내게, 가장 가까운 상영관은 100km 떨어진 대구다) 국민을 섬기고, '이 나라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우리에게 끝없이 일깨워 주었던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이리도 어렵다. 우리가 지난 세월 동안 '나라답지 않은' 나라에서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채 살아온 이후로, 이 나라는 우리가,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도 들어준 적이 없다. 분명, 영화의 그분은 어린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초코파이를 직접 까 주시기까지 하셨는데 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너무도 많았다. 왜 국가는, 국가의 공권력은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왜 그렇게나 더 아프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배웠던, 경험한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가 아니었는데, 국민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한 채 누구를 위한 일들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이유가 누구의 의지인지도 알 수 없는데, 그 의지를 거스른 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무서워서 비겁하게 숨어들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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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스틸 이미지. 지난 26일 개봉한 이 영화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온 길을 추적하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작품이다. |
|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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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나 자신의 비겁함이 부끄러운 세월을 힘겹게 보내야 했는데, 그 이유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이었다니 기가 막히다. 국민 하나하나를 불행하게 만든 이유가, 우리의 자존감을 지켜주기는커녕 행복마저 갈취해 간 원인이 '우리 손으로 직접 선출한' 대통령 때문이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보내고 내세운 지도자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더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우리는, 대한민국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인간은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면) 소망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살아가야 해요. 그 작은 성취가 삶에 희망을 주고, 좀 더 긍정적으로 살아가게 할 테니까요."
2000년 총선 당시, 질 것이 뻔한 힘겨운 도전을 하면서도, 그는 '희망'과 '성취'를 얘기한다. 바쁜 유세 일정 중에도, 지역구 꼬마 아이들의 사인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며 한 말이다. 울고 싶다. 가뜩이나 요즘의 삶이 우울하고 부정적인 나에게 던지는 위로인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계속되는 실패의 경험들은, 더 이상은 이 사회에 저항하는 것이 소용없다며 외치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변해갔고, 위축되었고, 비겁함에 나를 숨겼다. 대한민국에는 나 같은 '반골'은 필요 없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는 작은 희망과 성취를 얘기한다. 목구멍을 타고 꺼억꺼억 큰 울음이 쏟아진다.
영화 내내 그가 우리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잃어버렸던 가치들이었다. 민주주의, 섬겨야 하는 국민, 대한민국의 미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존중받는 삶, 이 모든 '사라진 가치들' 말이다. 이것을 잃어버린 채, 지금 우리는 무엇이 되어 있는가?
"어떤 나라였으면 좋겠어?"
"그러게. 상식이 인정받는 삶? 국민이 존중받는 삶?"
"잘난 척 꾸미지 마. 그저 괴물이 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영화에서 노무현의 시절을 얘기하며 출연자들이 나누는 대화다. 제발, 대한민국 시민으로서의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절)'를 만나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다시 깨달아보자. 대한민국이 이 꼴이 된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진지한 위로'가 필요하다. 하루쯤, 멀리 떠나야 하면 어떤가? 가까운 영화관을 찾아가자. 가까운 동네의 극장에 전화해서, 상영관을 늘려달라 요청하자.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칫하면, 나는 이 혼란의 와중에, 이 나라가 자랑스러웠던 시간을 잊어버릴 뻔했다. 여러분도 분명, 기억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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