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6일 청주 시민단체의 사랑방인 하늘북에서 <사람이 하늘이다> 영화상영을 한 뒤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김대실 감독(좌측).
정연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만든 영화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저녁을 거른 김 감독은 빈속에 소주잔을 들이켜 가며 늦은 시간까지 관객의 질문에 답했다.
-촬영 동기는 무엇입니까?"해방 때 일곱 살이었는데 38선을 할머니 손잡고 건너왔어요. 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은 아마도 이북을 떠난 이후로 인생 전체에 걸쳐서 형성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내 얘기 속에서 역사를 전하자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누가 뭐라 하면, 이건 내 개인의 삶이야, 네가 내 생을 살아봤어, 라고 말해요."
-이 영화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은 어떠한가요?"미국이 무식하고 무지한 나라인 줄은 알았지만, 미국 인텔리들 정말 자기 나라가 외국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잘 몰라요. 이 영화 보고 쇼크 받은 사람도 많아요. 그동안 내가 만든 영화는 미국 공영방송 통해 나갔는데, 이 영화는 쉽지 않아요."
-교수, 공무원 하다 영화 만들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첫 번째 영화 <사이구(4.29)>를 만든 직접 동기는 1992년에 발생한 LA 흑인 폭동이었어요. 당시 미국 주류 언론은 한인-흑인 사이의 갈등으로 몰고 갔죠. 그게 주원인은 아니고 미국 건국 때부터 있었던 흑백 갈등이 주요인인데, 언론이 불공평한 해석을 했어요. 이런 불합리한 언론보도를 보고 영화제작을 결심했죠. 글이나 그림보다는 영화가 피해자의 마음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라 생각했어요."
-머리 스타일을 지금처럼 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미국에 사는 친구가 나 좀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 연구하다, 좁은 이마를 가리게 하는 파마가 좋겠다면서 나를 데리고 미용실에 갔어요. 미국에선 아프리카 사람 닮았다고 에프로(afro) 스타일이라고 불러요. 우리 남편이 이 헤어스타일 너무 좋아했지요. 이 스타일 바꿀 생각 없어요. 지금은 한국에 오면서 짧게 다듬었는데, 다시 기를 생각이에요."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이제 더 이상 영화를 만들 돈, 시간, 힘이 없어요. 본격적인 다큐영화는 <사람이 하늘이다>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찍었어요. 간단하게 하나 더 찍는다면, 죽음을 기다리는 25세 흑인남자를 촬영할 계획이에요. 그냥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소형 카메라로 찍으면 되니까, 어려운 작업은 아니거든요."
이날 한 시민은 다큐영화 <사람이 하늘이다>는 "남북의 대립, 미국, 일본 등의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우리의 근현대사를 칼로 수박을 단박에 썰어서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듯 명쾌하게 설명했고, 그 수박의 맛을 제대로 맛보게 한 영화"라고 평을 했다.
청주 상영회 이후에도 <사람이 하늘이다>는 전국의 여러 단체, 교회 등의 초청을 받아 상영이 됐고, 그때마다 김 감독도 참석해서 관객과의 대화를 나누었다. 광주 흥사단, 파주지역신문 <파주에서>, 전주 열린문교회, 전주 고백교회, 익산 남이랑북이랑, 수원 통일나눔의 초청을 받아 영화상영을 했으며, 10월 27일엔 서울 종로2가 문화공간 온, 28일엔 서울대 강의실, 그리고 29일 토요일에는 강화도 교동 통일문화제에서 상영하기로 예정돼 있다. 10월 31일 출국하기 직전까지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했다. 사람들이 나이에 비해 체력이 강하다고 하면, 김대실 감독은 체력이 아니라 '윌 파워'(의지력)가 강한 거라고 답변한다.
▲방북 촬영 중에 만난 북한 어린이들. 김 감독은 길에서 만난 북한 주민과 예정에 없던 인터뷰를 하곤 했는데, 미국에서 온 교포 할머니의 자유분방한 행동때문에 북한 안내원이 애를 먹기도 했다.
김대실
북에서 상영하고 싶지만...김대실 감독은 내게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서울에서 만나 술을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원래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즐겨 마시게 됐다고 한다. 처음엔 와인을 좋아했는데 와인은 우울증을 악화시킨다고 해서 스카치위스키로 주종을 바꿨다고 한다. 미국에 있을 때는 오후 4~5시 경에 위스키를 딱 한 잔씩 마셨다고 한다. 한국음식엔 소주가 어울리는 것 같아 반주로는 와인보다 소주를 즐겨하는데, 막걸리는 아직은 맛을 잘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10월 25일 오후 4시, 홍대전철역 부근 카페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둘이서 맥주 두 병씩 마시고, 보쌈집으로 저녁을 하러 갔는데 반주로 마시자며 주저함 없이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이쯤 되면 애주가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자리에서 지난 번 청주에서 영화를 본 뒤 궁금했던 점에 관해 몇 가지 물어보았다.
-어렵게 북에 가서 촬영했는데, 북쪽에서 상영 가능한지 알아보셨나요?"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활동하는 북한 정부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아직 답변이 없어요. 내 생각엔 북쪽을 불편하게 할 대사가 몇 번 나오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 판단해요."
북의 당국자가 곱게 보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영화 속 대사는 "3대 세습 이해하려고 애를 써본다. 하지만 그래도 지도자는 선거로 뽑아야 한다고 믿는다." "기념비가 너무 많았다. 대리석에 내 마음이 굳어갔다." "어느 쪽이 먼저 시작했는지는 아직도 논쟁 중이지만 최근 확인된 자료로는 남침인 듯하다. 목적은 조국통일이라고 한다." 등과 같다.
-이런 대사 때문에 북에서 상영하기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면, 편집에서 빼는 것도 검토해보시지 않았나요?"내가 죽은 뒤에도 영화는 남잖아요.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만들기는 싫었어요. 나는 누가 하라는 대로 안 하는 사람이에요. 작품을 만들 때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미국도 한국도 북한도 다 마찬가지였어요. 두려운 마음에 미리 은폐하고, 눈치 보며 만들면 좋은 작품 만들 수 없어요."
▲10월 26일 청주 행복카페 극장에서 열린 <사람이 하늘이다> 앵콜상영회.김대실 감독은 이 영화를 마지막 영화라 여겼으나, 전국 순회 상영 이후 자신이 통일을 위해 더 해야할 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기회가 된다면 '가시철조망 6백리'라는 영화를 하나 더 제작하고 싶은 맘이라고 했다.
정연진
마지막 영화 '가시철조망 6백리'를 볼 수 있을까?-먼저 돌아가신 남편의 회고록도 펴내시고, 영화에도 남편 이름이 여러 번 나옵니다. 지금도 남편 얘기를 할 때면 목이 메이곤 하는데,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나는 지금도 단의 이름을 들으면 눈물이 나와요. 단과 나는 단짝 친구 같은 사이였어요. 영어로 단을 회고하는 책을 냈고, 기회가 되면 한국어판도 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는 죽은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생각해요. 지금 살아있는 땅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두 랜드에서 같이 산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죽음을 극복하는 길은 사랑이고, 그래서 난 여전히 단을 사랑하는 것이고요. 그럴 때 죽은 사람이 돌아올 수 있겠죠. 단을 이 세상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동시에 내 인생을 확장하는 것이기도 해요."
김대실 감독은 남편이 죽고 나서 자신의 집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남편이, 남편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어보다는 영어로 말하는 게 편하다는 김 감독은 북에 가서 고향을 찾았지만, 산과 들이 아닌 사람 속에서 고향을 보았다고 한다. 사람 속에서 집과 고향을 느끼고, 사람을 마음의 안식처로 여기는 김대실 감독은 이번에 남쪽에 와서 관객들을 만난 뒤에 다시 영화를 한 편 더 찍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2009년 남편 단이 먼저 하늘나라로 간 뒤부터 술을 즐기게 됐다는 김대실 감독과 홍대전철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김 감독은 이날 카페에서 맥주 두 병, 저녁 반주로 소주 반 병을 마셨다.
최진섭
"전국 순회 상영하면서 <사람이 하늘이다>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내가 분단과 통일에 관해 더 할 얘기가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회가 되면 북에 가서 한 번 더 촬영도 하고 싶어요. 얼마 전 어느 영화제작작가가 DMZ는 사실과 다른 말이다. 거기는 비무장지대가 결코 아니다. '철조망 6백리'라고 해야 맞는다는 말을 내게 했어요. 그때 큰 울림이 있었고, 이를 주제로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제목은 <가시철조망 6백리>라고 정했고요."김대실 감독은 어릴 적 떠나온 북의 신천도, 남의 서울도, 20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뒤 수십 년 거주한 뉴욕도 자신의 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집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혼의 벗이었던 남편 단에게서 발견한 집을 다른 사람에게서도 발견하고 싶다고 말한다. 남쪽 사람, 북쪽 사람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남북을 초월해 사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분단을 극복하고 죽음을 극복하는 길은 사랑이라 믿는다. 영화 <가시철조망 6백리> 안에서 사랑으로 분단을 녹여내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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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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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세 할머니가 북한에서 찍은 영화, 상영 요청 쇄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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