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슈퍼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드디어 포스트 시즌 선발 등판 경기에서도 무실점 승리를 기록했다. 10월 17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열렸던 시카고 컵스와 다저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은 두 팀의 선발투수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투수전이었다.
이날의 경기는 선발 투수들의 이력으로 관심을 모았다. 커쇼는 올여름 허리 디스크 증세로 인하여 2달 반가량 자리를 비우며 규정 이닝(162이닝) 진입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14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중 가장 낮은 평균 자책점(149이닝 12승 4패 1.69)을 기록했다. 이에 맞서는 컵스의 선발투수 카일 헨드릭스는 규정 이닝을 채운 선발 투수들 중 가장 낮은 평균 자책점(190이닝 16승 8패 2.13)을 기록했다.
다만 두 선수 모두 포스트 시즌에서 군계일학의 성적을 보이진 못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3년 차의 헨드릭스는 이번이 두 번째 포스트 시즌이지만 아직 승패가 없었다. 커쇼는 2013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과 6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득점 지원을 한 점도 받지 못하고 2패만 기록하는 등 좋은 기억이 없었다(6경기 3패 7.23).
5회 2사까지 퍼펙트, PS에서도 본 모습 보여준 커쇼
커쇼는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등판한 뒤 3일만 쉬고 4차전에 등판했다. 2경기 모두 정규 시즌만큼의 임팩트를 보이진 못했지만, 팀은 2경기를 모두 이겼다. 커쇼의 선발 등판 간격만 보면 4일 휴식이었겠지만, 이번에는 5차전 마무리 등판이 한 차례 있었다(7구). 그래서 이번 포스트 시즌 커쇼의 등판 일지는 1차전 등판 - 3일 휴식 - 4차전 등판 - 하루 휴식 - 5차전 마무리 - 이틀 휴식 후 선발 등판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커쇼의 2차전 등판은 그가 얼마나 길게 던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부상으로 올 시즌 풀 타임을 던지지도 못했던 커쇼였기에, 포스트 시즌에서 너무 무리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커쇼는 이날 등판에서 그 우려를 깨끗하게 잠재웠다.
커쇼는 1회 말 첫 이닝부터 시작하여 5회 말 2사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5회 말 하비에르 바에스에게 안타를 맞아 퍼펙트가 깨진 뒤 윌슨 콘트레라스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커쇼는 다음 타자 제이슨 헤이워드를 범타 처리하면서 실점 없이 5회를 마쳤다.
2013년 커쇼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NLCS 2경기에서 단 한 점도 지원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다. 당시 2경기에서 모두 커쇼와 맞대결을 벌였던 마이클 와카는 2경기 모두 무실점 투구를 기록하며 커쇼와의 2번 맞대결을 모두 이기고 NLCS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CS는 달랐다. 간판타자 애드리안 곤잘레스가 2회 초 첫 타석에서 헨드릭스가 던진 낮게 제구된 컷 패스트볼을 밀어쳐서 리글리 필드의 좌중간 담장을 넘긴 것이다. 올해 정규 시즌 리글리 필드 피홈런이 4개뿐이었던 헨드릭스는(2016년 리글리 필드 평균 자책점 1.32) 통산 리글리 필드 홈런이 10개나 되었던 곤잘레스에게 맞은 이 한 방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비록 다른 타자들이 컵스의 투수들을 상대로 한 점도 올리지 못했지만, 이날의 커쇼는 단 1점의 지원이면 충분했다. 6회 초 공격에서 1사 후 볼넷과 안타로 다저스가 득점권 기회를 만들었지만, 컵스의 조 매든 감독은 칼 에드워즈로 투수를 교체하여 병살타를 유도, 다저스의 추가 득점 기회를 막아 버렸다.
7회 공포증 극복한 커쇼, PS 첫 무실점 선발 경기
커쇼에게 위기의 순간은 7회에 찾아왔다. 커쇼는 이전까지 6회까지만 던졌을 경우의 평균 자책점은 3.06이었다. 그러나 2014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의 충격(7회에만 6실점)을 포함하여 7회 이후에도 던졌을 경우 평균 자책점은 28.93이었다.
이날 경기에서도 커쇼는 7회 말 선두 타자 앤서니 리조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게다가 마지막 4번째 공의 경우 원바운드로 들어가는 등 제구에 대한 불안감까지 노출하는 듯했다. 다음 타자 벤 조브리스트를 상대할 때는 파울 지역으로 뜬공을 유도했으나 포수 야스마니 그란달이 잡지 못하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다.
다행히 커쇼는 조브리스트를 3구 삼진으로 잡아냈다. 다음 타자 에디슨 러셀도 2구 만에 뜬공을 유도하여 잡아낸 직후,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이전까지 커쇼의 7회 기록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투수코치가 아닌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왔기 때문에 보통 상황이라면 투수 교체가 예상되는 순간이었지만 로버츠 감독은 그대로 커쇼를 믿고 갔다.
다음 타자는 커쇼의 퍼펙트 행진을 깨뜨렸던 바에스였다. 바에스는 커쇼의 2구째 공을 받아쳤는데, 공이 외야로 뻗으면서 커쇼의 7회 악몽이 재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타구는 담장 너머까지 뻗지 못했고, 다저스의 중견수 작 피더슨이 문제없이 잡아내면서 커쇼는 7이닝 2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투구를 마쳤다(84구).
그동안 커쇼는 이전까지 포스트 시즌 16경기에 등판했고, 선발 등판이 12번이었다. 그런데 이 12번의 선발 등판 경기에서 무실점 경기가 한 번도 없었다. 5회를 채우지 못한 조기 강판도 2번(2009 NLCS 1차전, 2013 NLCS 6차전)이나 있을 정도로 포스트 시즌만 되면 정규 시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무자책 경기는 있었다. 2013년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6이닝을 던졌을 때 비자책으로 2점을 내준 적이 있었고, 이 때문에 패전 위기에 몰렸지만 8회 말 역전 홈런이 터지면서 커쇼는 패전을 면할 수 있었다. 2013년 NLCS 2차전에서는 단 1점의 비자책점을 내줬는데도 타선이 상대 투수 와카에게 막히면서 패전을 당한 바 있다.
게다가 2014년부터는 7회 이후에 올라왔을 때 악몽이 떠오르게 됐다. 2014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는 카디널스를 상대로 6회까지 2실점으로 호투하다가 7회에만 6실점 하며 충격의 역전패를 당하기도 했다. 정규 시즌에서 4점 이상 지원받았을 떄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던 커쇼지만, 커쇼는 이 경기에서 처음으로 패전을 당했다.
올해 디비전 시리즈 4차전도 그랬다. 6회까지 2실점이었던 커쇼는 7회 초 2사 만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는데, 후속 투수들이 커쇼의 책임 주자들을 모두 들여보내면서 커쇼의 실점만 증가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등판을 통해 커쇼는 그의 포스트 시즌 경기들을 통틀어 처음으로 무실점 선발 경기를 완성했다. 그와 더불어 커쇼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의 첫 승리까지 챙기는 기쁨을 얻었다.
커쇼가 7회까지 84개의 공만 던지고 내려가자 다저스는 8회부터 1차전에 등판하지 않고 이틀을 쉬었던 마무리투수 켄리 잰슨이 올라왔다. 잰슨은 18개의 공만 던지면서 4탈삼진 퍼펙트로 컵스에게 남은 8회와 9회를 순식간에 삭제해버렸다. 전날 5명의 투수를 동원했던 다저스는 이날은 커쇼와 잰슨 2명만 활용하여 경기를 끝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 알 수 없는 시리즈의 향방
다저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기고 봐야 했던 커쇼의 선발 경기에서 승리를 챙겼다. 18일에 두 팀은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한 뒤, 19일부터 21일까지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3차전부터 5차전까지 3연전을 치른다.
다저스는 일단 디비전 시리즈 5차전 선발투수였던 리치 힐이 3차전 등판으로 예정되어 있으며 4차전 선발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컵스는 3차전에서 2015년 사이 영 상 수상자인 제이크 아리에타가 선발로 등판하며 4차전에서는 베테랑 투수 존 래키가 등판할 예정이다.
커쇼가 사이 영 상을 받기 시작한 이후의 포스트 시즌에서 다저스는 처음으로 1승 1패 상황에서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을 치르게 됐다. 2013년의 경우 원정 경기에서 2패를 당한 뒤 홈으로 돌아와서 3차전과 5차전에 승리했던 바 있었다. 당시 3차전 승리투수는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류현진이었고, 5차전 승리투수는 잭 그레인키(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였다.
2013년에 비해 다소 유리한 상황에서 3차전을 치르게 된 다저스는 커쇼의 시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챔피언십 시리즈 우위를 잡을 기회가 생겼다. 반면 1908년이 마지막 월드 챔피언이었고, 1945년이 마지막 내셔널리그 챔피언이었던 컵스는 염소의 저주 악몽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는 분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컵스는 21세기에 들어와서 두 차례 챔피언십 시리즈를 경험한 바 있었다. 최희섭(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컵스에 몸담고 있었던 2003년에는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에게 1차전을 내줬지만, 당시 원투 펀치였던 마크 프라이어와 케리 우드 등의 활약으로 2~4차전 3경기를 연속으로 승리했던 컵스였다.
그러나 5차전에서 조시 베켓(2003 월드 시리즈 MVP)이 위력투를 펼친 말린스에 패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6차전 프라이어의 호투로 8회 초까지 리드하고 있던 컵스는 당시 스티브 바트만이라는 관중이 파울 타구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모이세스 알루가 파울 플라이를 놓치는 불상사가 발생하며 그 이닝에만 8실점하고 역전패를 당했다.
결국, 컵스는 우드를 선발로 내세웠던 7차전에서도 말린스에 역전패를 당하며 또 한 번 저주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2015년 뉴욕 메츠와 붙었던 두 번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정규 시즌 상대 전적 7승 무패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전적 4전 전패로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메츠는 전반기와 후반기 분위기가 정반대였던 팀이었다.
컵스와 다저스의 이전 포스트 시즌 상대 기록은 2008년 디비전 시리즈였는데, 당시 정규 시즌 성적에서 컵스가 압도적이었음에도 다저스가 시리즈를 압도적으로 승리했던 바 있다. 포스트 시즌에서도 본 모습을 보이는 커쇼의 활약에 힘입어 다저스가 시리즈에 승리할지, 아니면 컵스가 위기를 딛고 61년 만에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이뤄낼지에 대한 관심이 다음 3차전으로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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