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90번 공모전 탈락, 그리고 칸영화제 덜컥!... "조금은 날 믿게 됐어요"

[여기는 칸] 단편 < 1 킬로그램 >으로 칸 찾은 박영주 감독을 만나다

16.05.19 14:56최종업데이트16.05.19 14:56
원고료로 응원
 박영주 감독.
▲박영주 감독.이선필

5년 전 잃어버린 아이를 시체로 만난 엄마의 삶은 어떨까. "그 이야기 안에서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던 박영주(32) 감독은 조심스러웠다. "괜히 젠 체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대사 하나 하나에 고민을 거듭하며 작업"했다.

제69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단편 < 1킬로그램 >으로 초청을 받은 그는 영화제 참여에 큰 의미를 두며 기쁨에 차있기보단 무던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29분짜리 이 영화를 "겨우 세상에 꺼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작은 위안만이 스스로에게 내린 선물이었다.

지난 17일 오후(현지시간) 칸영화제 주요 행사를 마친 그를 팔레 드 페스티벌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조심스러운 위로

모든 게 처음이었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일본에 다녀온 것이 전부였던 박영주 감독은 "지난 10년 간 글을 써오면서 얻은 건 이런 일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 학부생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써오며 도전한 공모전만 대략 90번. 모두 떨어졌다. "아무도 내 시나리오를 영화로 안만들어 주기에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했다. 그렇게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땐 미술을 잠깐 했는데 스스로가 알잖아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한예종 입학 전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시험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단편을 하나 찍어봤는데 시나리오 작업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시나리오는 일단 완성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면 끝이지만,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만지고 주도하더라고요. 그게 제 성격에 맞았어요."

입학 이후 만들게 된 < 1킬로그램 >은 원작이 있다. 한창 힘든 시기 친구에게 추천받은 편혜영 작가의 단편집 <밤이 지나간다>를 읽다가 문득 영화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8편의 단편 중 '해물 1킬로그램'이 바로 원작이었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매번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난 왜 안 될까' 생각하던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모든 게 내 맘 같지 않던 시기랄까? 아이를 잃은 엄마 이야기지만 크게 보면 이 작품은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람들 누구나 이런 슬픔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에 작은 위로를 받았어요.

원작이 좋아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야기가 너무 민감한 거예요. 일단 제가 당해보지 않은 일이라 함부로 꺼내기 조심스러웠죠. 대사 한 줄 쓰는 게 혹시나 내가 아는 척 하는 걸로 보일까봐, 혹은 위안을 주고 싶어도 젠 체일 수 있어서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완고가 나오기까지 8번을 고쳤어요. 사실 촬영 직전까지도 수정 중이었는데 누군가가 이제는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며 절 끌고가서 시작한 거예요(웃음). 편집 작업 때도 엄청 고민하며 했는데 살면서 이렇게 치열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하기도 했죠."

아빠 찬스

 영화 < 1킬로그램 >의 한 장면. 이승연 배우(왼쪽)의 모습이 보인다.
▲영화 < 1킬로그램 >의 한 장면. 이승연 배우(왼쪽)의 모습이 보인다.박영주

그래서일까. 박영주 감독은 "이제야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치열하게 했으니 후회 또한 남지 않았다. 이게 바로 이번 칸영화제 진출의 의미였다. 단편 영화를 하겠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덥석 손 내민 딸에게 카드 한 장을 쾌척(?)한 아버지를 비롯해, 초보 감독의 말 한 마디만 믿고 출연에 응해준 배우 이승연, 박현영 등 고마운 사람도 많았다.

"나를 조금 더 믿어도 되겠다는 정도에요. 물론 가족은 많이 좋아해주시죠. 딸이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말리시진 않았지만 얼마나 걱정했을까요. 영화한다고 이번엔 잘 될 거 같다고 빌린 아빠 카드 덕을 봤죠. 제 첫 투자자가 아빠인 셈이에요(웃음).

또 이승연 선생님은 제가 박정범 감독의 <산다>에서 보고 너무 좋아서 연락처를 수소문해 뵐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편혜영 작가 소설을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때 시나리오 수정 중이라 좀 애매한 반응이셨는데, 제게 순간 영화 계속 할 거냐고 물으셨어요. 계속 할 거라는 말에 그때부터 믿음을 주신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코미디 영화를 바라는 진지한 영화 감독

지금까지 박영주 감독이 완성한 단편은 총 세 편. 한 소녀의 일상을 극화한 <소녀 배달부>와 취업 준비생 이야기와 점집을 다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카운슬러>, 그리고 이번 작품까지다.

이중에서 박영주 감독은 코미디 영화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그는 "정말 웃기는 걸 좋아하는데 아무도 안 웃어서 <카운슬러>는 대실패했다"며 민망해했지만 "언젠간 꼭 코미디 영화를 잘 만들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바로 이어서 드러냈다. < 1킬로그램 >에서 보인 진지함과 다르게 유쾌함 자체가 그의 주요한 에너지원 중 하나로 느껴졌다.

"그땐 너무 자만했던 거죠. 더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좋아질 수 있었을텐데. 진짜 영화는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거 같아요. 실수하는 게 다 보이고요. 코미디 영화를 꼭 하고픈데 실패 경험이 있어서 좀 두렵긴 해요. 영화는 이래 봬도 전체관람가가 최고죠! 닫힌 결말에! (웃음) 하하 호호 웃으면서 관객이 나오는 작품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리틀 미스 선샤인> <보우 핑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에요.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이렇게 말을 하지만 당장 준비 중인 장편 영화는 또 진지한 드라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사람의 감정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작은 응원을 보태게 된다. 보편적 감정 안에서 차별성을 만드는 그만의 장기가 이번 칸영화제에서 인정받은 만큼, 한국에서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더 많은 관객이 박영주 감독의 작품을 만나게 될 날이.

칸영화제 박영주 1킬로그램 이승연 편혜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것엔 빈틈이 있다. 그 빈틈으로 빛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