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원정 경기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상대를 너무 얕봤다. 한국이 먼저 올라간 최종 예선 라운드에 뒤따라 올라올 것이 유력했지만 마지막 경기 관리를 너무 소홀히 했다. 북한이 거머쥘 것으로 보였던 마지막 한 자리를 중국이 얻게 됐다.
김창복 감독이 이끌고 있는 북한 남자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29일 오후 9시 마닐라에 있는 리잘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필리핀과의 원정 경기에서 2-3 펠레 스코어로 재역전패했다. 이로써 북한은 조별리그 2위로 결정된 8팀 중 5순위에 머물러 4순위까지 얻을 수 있는 최종 예선 티켓을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동점-역전-재역전 '마닐라 극장'
승점 계산을 해 봐도 북한은 이 경기에서 지지 않으면 최종 예선 진출이 가능한 형편이었다. 북한 선수단은 같은 날 열린 C조 중국의 마지막 경기 상대 팀이 1위로 최종 예선 진출이 확정된 카타르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어설프게 판단한 듯했다.
43분에 홈팀 필리핀의 선취골이 나왔다. 파티뇨의 오른발 대각선 슛을 주장 완장을 찬 북한 골키퍼 리명국이 다리로 잘 막아냈지만 튀어오른 공을 뒤따라오던 바하도란이 이마로 꽂아넣었다.
당황한 북한은 전반전 추가 시간에 다행스럽게도 동점골을 터뜨렸다. 강국철이 차 올린 프리킥 세트 피스 상황에서 얻은 슛 기회에서 미드필더 서경진이 침착하게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차 넣었다.
일단 한숨을 돌린 북한 선수들은 후반전 초반에 얻은 프리킥 기회를 재치 있게 연결하여 역전골까지 성공시켰다. 혼전 중에 튀어오른 공을 로학수가 헤더로 연결했지만 필리핀 골키퍼 에더리즈가 기막히게 쳐낸 공을 리혁철이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80분이 넘어가도록 북한의 역전승 기운이 이어졌다. 이대로 경기를 차분하게 마무리하면 됐다. 하지만 필리핀의 뒷심은 놀라웠다. 최종 예선 진출 여부와는 거리가 먼 그들이었지만 마닐라 홈팬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투혼이 발휘된 것이다.
84분에 필리핀의 동점골이 터졌다. 역습 과정에서 탄톤이 축구화 바닥으로 긁어준 공을 마누엘 오트가 달려들며 오른발 슛으로 북한 그물을 흔들었다. 이것만으로도 필리핀 홈팬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곧이어 재역전 극장골이 터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정규 시간 90분이 다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재역전 결승골이 터졌다. 필리핀의 키다리 골잡이 파티뇨가 오른쪽 측면을 파고 들며 꺾어준 공을 후반전 교체 선수 이안 램지가 오른발로 정확하게 차 넣은 것. 그 순간 북한 수비수 네 명은 모두 파티뇨에게만 시선이 가 있었고 램지를 따라붙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89분 3초에 벌어진 대 사건이었다.
어부지리 '중국' 포함, 최종 예선 12팀 모두 결정
감격적인 극장골을 터뜨린 이안 램지는 유니폼 상의를 곧바로 벗어던지고 옆줄 밖으로 미끄러져 드러누웠다. 아시아 축구에서도 변방이나 다름없던 필리핀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가 그렇게 끝났다.
북한은 이 뼈아픈 역전패 때문에 8경기에서 16점(5승 1무 2패 14득점 8실점 +6)을 얻고 2차 예선 일정을 마무리했다. 각조 2위들 중에서 승점 계산이 그렇게 모자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너무나 허무했다.
4개국이 조별리그를 벌인 F조의 사정 때문에 나머지 조 2위 팀 성적에서 각조 최하위 팀과의 맞대결 두 경기 기록이 그대로 빠지게 된다. 이에 따라 북한은 승점 10점에 머물러 A조 아랍에미리트(승점 11점), C조 중국(승점 11점), E조 시리아(승점 12점), F조 이라크(승점 12점)에 간발의 차로 밀렸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일정으로 C조 1위를 확정한 카타르와 홈(시안)에서 맞붙은 중국은 2-0으로 승리를 거둬 H조 2위 북한을 밀어내고 최종 예선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최종 예선과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뛴 필리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준 셈이다.
이렇게 최종 예선에 오른 12팀이 결정됐다. 오는 4월 12일 시드 배정을 통해 최종 예선 조추첨이 진행되며 2번 시드에 속한 한국과 일본은 최종 예선 A조, B조로 갈라지는 운명을 받아들었다.
최종 예선 일정은 오는 9월부터 시작되어 각 팀당 10경기를 치른다. 여기서 각조 2위까지 러시아월드컵 직행 티켓을 받게 되며 3위 두 팀은 플레이오프에 나간다. 플레이오프 승리 팀이 북중미카리브해 지역 예선 4위 팀과 대륙간 최종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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