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오리온의 이승현이 챔프전 MVP에 등극했다. 오리온은 29일 오후 7시 고양체육관에서 벌어진 2015-2016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전주 KCC를 120-86으로 눌렀다. 4승 2패로 시리즈를 끝낸 오리온은 2001/02시즌 이후 무려 14년 만에 우승의 감격을 되찾았다.
이승현은 기자단 투표에서 총 87표 중 51표를 얻어 MVP에 선정됐다. 하지만 수상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일부 농구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승현의 활약도 좋았지만 시리즈 내내 챔프전에서 화려한 활약을 펼친 선수는 단연 조 잭슨이었다.
잭슨은 6경기에서 평균 23.0점, 7.0어시스트, 3.8리바운드, 야투성공률 54%를 기록하며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처인 4쿼터마다 정규시즌 팀의 주포였던 헤인즈보다 잭슨을 더 자주 중용할 정도였다.
180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개인기술과 덩크슛까지 가능한 고무공같은 탄력으로 코트를 휘젓는 잭슨의 활약은, 팀의 승리와 보는 재미를 모두 충족시켰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KBL에서 단신 외국인 선수는 팀을 우승시킬 수 없다'는 속설을 보란 듯이 깼다는 점에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일각에서는 잭슨이 MVP 투표에서 고배를 마신 것을 두고 또 다시 국내 농구계의 '제 식구 감싸기'식 수상의 관행이 재현된 게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잭슨 역시 "MVP보다 우승이 더 소중하다"며 애써 태연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승현의 수상이 발표된 직후 약간 섭섭한 기색은 감추지 못했다.
사실 국내 농구계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상을 주는 데 인색한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가 타이틀을 놓고 경합하는 상황이 되면 더 심해진다.
KBL은 지난해 정규시즌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제도를 바꿔 외국인 선수상을 신설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당시 유력한 MVP 후보로 거론되던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외국인 선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라틀리프는 심지어 올스타전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고도 기자단 투표에서 김선형에게 밀려 MVP를 놓친 적이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며 스포츠계의 빗나간 쇄국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승현의 활약, MVP 받을 만 했다
하지만 이번 이승현의 경우, 단지 국내 선수라서 우대를 받았다는 식으로만 해석하기엔 다소 억울할 만하다. 이승현은 이번 챔프전 시리즈에서 14.2점 5.5리바운드 2.2도움 1.3가로채기를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는 확실히 잭슨보다 많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승현의 실질적인 팀 공헌도와 비중은 그 이상이었다. 이승현은 이번 시리즈에서 하승진과 허버트 힐 등 상대의 장신 빅맨들을 전담 마크했다. 하승진과는 무려 24cm나 차이가 났다. 이승현은 정규시즌부터 실질적으로 상대 외국인 선수나 장신 빅맨들을 전담해왔다. 이승현보다 더 신장이 좋은 장재석과 최진수가 있었지만 파워나 수비 센스에서 이승현을 따라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승현의 투지 넘치는 몸싸움과 적극적인 박스아웃이 있었기 때문에 하승진과 힐은 이번 시리즈 내내 이렇다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당초 높이에서 열세라던 오리온이 정통 센터없이도 제공권에서 KCC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현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잭슨의 활약도 이승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이승현이 골밑에서 지탱해주지 못했다면 4쿼터에 단신 선수인 잭슨을 오래 투입하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이승현은 수비만이 아니라 필요하면 과감하게 공격에도 가담했다. 공격이 안풀릴 때는 정확한 중장거리슛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동료들에게 집중된 수비를 분산시키는 역할도 소화했다. 이승현이 공격적인 재능 역시 충분함에도 어떤 면에서는 팀을 위하여 궃은 일에 더 주력하며 희생을 감수한 측면도 있다. 만일 이승현이 MVP를 수상하지 못했더라도 이견이 나올 수 있을 만한 활약이었다.
한편으로 오리온은 이번 시리즈 내내 MVP급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많았다. 김동욱은 추일승표 포워드 농구의 아이콘으로 불리우며 이번 시리즈에서 KCC의 주포 안드레 에밋을 봉쇄하는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에이스 애런 헤인즈도 플레이오프의 해결사 자리는 잭슨에게 양보했지만 매경기 기복 없이 '스탯 머신'다운 활약을 선보이며 오리온이 초반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기여했다. 다른 시즌 같았으면 이들 중 누가 MVP를 받아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단기전에서 걸출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이 한꺼번에 여러 명이 나왔다는 것이야말로 오리온이 올 시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할 만하다. 팬들에게는 잭슨과 이승현 모두 진정한 공동 MVP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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