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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이 일깨운 우리 사회 마지막 낭만들

[TV리뷰] 간절함과 정의에 우리는 푹 빠졌다

16.03.11 20:48최종업데이트16.03.1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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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영까지 단 2회만을 남겨둔 tvN <시그널>. 드라마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간절함'이다.
▲종영까지 단 2회만을 남겨둔 tvN <시그널>. 드라마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간절함'이다. tvN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금요일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일주일은 요즈음 중 가장 길게 느껴졌다. 바로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극본 김은희, 연출 김원석) 때문이다. 마지막 2회 분량만을 남기고 많은 사람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 화제의 드라마 <시그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나의 관심은 드라마의 결말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과연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건가?'
'과거가 바뀌면 현실은 어떻게 변하는 거지?'
'지금까지의 드라마 법칙대로 또 다른 희생이 있는 걸까?'

결말은 곧 밝혀지겠지만, 의문 하나는 계속해서 머리에 남는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드라마 <시그널>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간절함의 드라마

 드라마는 이재한(조진웅 분)과 박해영(이제훈 분)의 무전을 '간절함이 보내온 신호'라고 소개한다.
▲드라마는 이재한(조진웅 분)과 박해영(이제훈 분)의 무전을 '간절함이 보내온 신호'라고 소개한다. tvN

드라마의 인기 요인을 한 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다. <미생> 제작진들의 뛰어난 연출력이나 베테랑 연기자들의 빼어난 앙상블, 그리고 <싸인> <유령> 등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의 빈틈없는 시나리오 등이 모두 합쳐져 지금의 <시그널>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시그널>의 인기 요인을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과감히 이 드라마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이야기할 것이다. 위에 나열한 조건들은 소위 '웰메이드' 드라마의 조건일 뿐, 결국 그 드라마의 흥행 여부는 드라마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소비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시그널>이 이 시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사회적 함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 간절함의 결여이다. <시그널>이 인기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시그널>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과거로부터 온 무전'을 일컬어 간절함이 보내온 신호라고 정의한다. 박해영 경위(이제훈 분)는 과거의 이재한 형사와 무전을 주고받으며 미제사건을 풀어나가게 되는데 그 무전의 전제조건이 바로 간절함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잊었더라도 누군가가 간절하고 절박하게 매달리면 과거와 현재의 무전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자. 개인들은 간절함을 잊어가고 있다. 간절함이란 누군가가 무엇을 애타게 갈망한다는 뜻인데, 물자가 풍요로워지고 복제가 가능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간절함을 망각해간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가 삶의 본질이 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쉽게 쓰고 버리는데 익숙해져 간다.

그 결과 사회 전체적으로 간절함이 사라지고 있다.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전체가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억하고 공유해야 하는데, 그것들이 옅어지면서 사회 전체가 파편화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 잊히고 있으며, 하나의 사건이 또 다른 사건으로 묻히기를 반복한다.

예컨대 세월호 사건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꽃다운 청소년과 많은 생명들이 갇힌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모든 국민이 눈물을 흘렸고 너나없이 애통해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 세월호 사건은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않았다. 진상규명은 아직도 깜깜무소식이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벌써 세월호를 망각하고 있으며 혹자는 지겹다고까지 한다. 사회가 간절함을 잊어감에 따라 우리 모두 유가족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나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맹자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로 측은지심, 즉 타인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지목했다. 이는 결국 타인의 간절함을 나의 간절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능력을 의미하는 것인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바로 그 공감능력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대 놓지 말아야 할 '간절함'도 함께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시그널>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무언가를 간절하고 절박하게 떠올린 적 있느냐고, 만약 그렇다면 이 사회가 요즘 이렇게까지 망가지고 있겠느냐고.

정의에 열광하는 정의 사라진 사회

드라마 <시그널> 인기의 또 한 축은 역시나 정의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안상구 역)은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아직 남아있는가?"라며 실소를 금하지 못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바로 그 정의 때문에 <시그널>의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는 도대체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울까?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잘 먹고 잘살아요?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지난 6화에 나온 이재한 형사의 대사는 아마도 김은희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라는 재한의 대사가 있어요. 과연 이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는 가난하고 힘이 없어도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에요. 똑같은 죄를 지었다면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모두 동일하게 부합하는 죗값을 치러야죠. 그게 정당한 사회 아닐까요?"

 과거의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은 박해영(이제훈 분)에게 20년이 지나면 더 나은 세상이 오는지 묻는다.
▲과거의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은 박해영(이제훈 분)에게 20년이 지나면 더 나은 세상이 오는지 묻는다. tvN

비극적이지만 <시그널>이 정의에 천착하고 우리가 그 정의로운 결말을 기다리는 이유, 그것은 간절함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서 그만큼 정의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재한의 바람과 달리 우리 사회는 20년이 지났음에도 돈 있고 빽만 있으면 여전히 개망나니 짓을 해도 잘 먹고 잘사는 곳이다. 아니, 오히려 돈과 빽이 곧 정의가 되는 곳이다.

현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의 을에 대한 행패들을 보자. 돈과 빽만 있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기도 하고, 돈과 '빽'이 없으면 모든 것이 죄가 될 수도 있는 사회 아니던가.

덕분에 많은 사람이 염치를 모른다. 정의를 두려워하고 돈과 빽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예컨대 4.13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인물들을 살펴보자.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용산 참사 진압 책임자였던 이가 출마의 변을 고했으며, 노동 개악을 주도하고 재벌을 위한 규제 완화에 앞장섰던 이가 서민의 삶을 챙기겠다며 후보등록을 했다. 사회정의가 살아 있다면, 사람들이 좀 더 정의롭게 판단한다면 과연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배고픈 정의보다는 배부른 불의를 선택하고 마는 이 혼용무도의 사회에서 어쩌면 정의는 드라마에나 등장하는 마지막 낭만인지도 모른다. <시그널>이 인기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정의를 순박한 형사 이재한을 통해 투박하게 내질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과 악, 내가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이가 분명하지 않은가.

정의가 사라져 가고 사회에서 시청자들은 <시그널>이 이야기하는 정의에 더 열광한다. 거기에는 '누군가는 그 높은 시청률을 보며 뜨끔해 하지 않을까'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시그널 이재한 박해영 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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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원이, 2026년에는 서울시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20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