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가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지 않았다."
조별리그를 마치고 언급했던 신태용 감독의 호언장담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던 8강전을 거쳐 카타르와의 준결승에서 드디어 진정한 신태용호의 진가가 드러났다. 투혼과 열정, 승부처에서의 결정력, 벤치의 변화무쌍한 용병술까지, 이제야 비로소 한국축구다운 색깔을 보여준 한판 승부였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올림픽 축구대표팀이 27일(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의 알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살 이하 챔피언십 카타르와 대회 4강전에서 짜릿한 승리(3-1)를 거뒀다. 결승진출에 성공한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 3위까지 주어지는 리우올림픽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88년 서울올림픽부터 무려 8회 연속 본선 진출 기록은 세계 최초다.
한국은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홈팀 카타르를 상대로 초반 스리백 전술을 들고 나왔다. 수비의 수적 우위를 통하여 카타르의 공세를 차단하고 역습을 노리겠다는 구상은 지지 않는 축구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그동안 잘쓰지 않았던 전술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는 위험 부담이 있는 파격이기도 했다.
전반 카타르의 공세를 잘 차단하며 기회를 엿보던 한국은 후반 3분 역습 상황에서 류승우의 기습적인 선제골이 터지며 균형을 무너뜨렸다. 황기욱의 로빙 패스를 이어받은 류승우가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했고 카타르 골키퍼가 볼을 처리하러 달려나오자 한발 앞서 낮게 깔린 오른발 슈팅으로 빈 공간을 공략했다. 수비수가 뒤따라 공을 걷어내리고 달려갔지만 한발 빠르게 볼은 결국 골망을 갈랐다.
한국은 이후 다시 포백을 구사하는 4-4-2 시스템으로 전환했으나 후반 34분 카타르의 아메드 알라엘딘에게 아쉬운 동점골을 내줬다. 류승우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1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압박의 밀도가 떨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선제골을 넣은 이후 오히려 상대의 거센 반격에 주도권을 내줬던 지난 이라크와 요르단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 투입된 황희찬 카드가 승부의 흐름을 다시 바꿨다. 황희찬은 당초 8강 요르단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하며 당초 이날 카타르전 출장이 불투명해 보였다. 하지만 후반 33분 류승우의 근육 경련으로 교체 투입되면서 동점골을 내주며 위기에 빠진 한국팀을 구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후반 44분 권창훈의 결승골과 추가 시간 문창진의 쐐기골은 모두 황희찬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승리 이끈 황희찬의 이타적인 플레이
황희찬은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뛰어난 몸싸움과 볼 관리 능력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끌어들이며 동료들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자신에게 수비가 몰린 틈을 타 황희찬이 이어준 공이 김현과 이슬찬을 거쳐 문전으로 쇄도한 권창훈에게 연결됐고, 권창훈은 가볍게 밀어 넣으며 팽팽한 승부의 균형을 깼다.
다급해진 카타르가 공세로 나오자 역습 상황에서 황희찬이 왼쪽 측면으로 공을 몰고가며 단독 드리블에 이어 수비수 2명을 개인기로 제치며 다시 찬스를 만들었다. 문전까지 접근한 황희찬은 직접 슈팅까지도 노릴수 있는 위치였으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다시 더 좋은 위치에 포진하고 있던 골문 오른쪽의 문창진에게 공을 연결했다. 문창진은 페인트 동작으로 수비수를 한번 제친 후 쐐기골로 마무리했다.
황희찬은 비록 이번 대회 들어 최전방 공격수로서 아직 골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상 승부처마다 득점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며 올림픽팀의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담당했다.
신태용호는 8강전까지 치르는 동안 전후반 극과 극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후반들어 급격한 체력 저하로 선제골을 넣고도 상대에게 흐름을 내주고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간의 시행 착오를 거울삼아 카타르전에서는 정반대의 내용이 나왔다.
전반에는 오히려 수비에 치중하며 역습 상황에서도 공중전에만 의지하는 다소 단조롭고 지루한 플레이를 펼쳤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조급한 카타르의 심리를 역이용하며 효율적인 경기 운용을 선보였다. 벤치의 확실한 게임 플랜과 교체 선수들의 소금같은 활약, 중요한 경기에서 한껏 집중력을 끌어올린 선수단의 투혼이 조화를 이루며 이번 대회 들어 결과와 내용 모두 최상이었던 경기가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리우행을 자력으로 확정지으며 그간의 경기력 논란을 깨끗이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준결승까지 몇 차례의 오심 논란에 휩싸이며 운으로 올라왔다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번 대회 가장 막강한 전력의 홈팀 카타르를 상대로 보여준 신태용호의 경기력은 한국이 올림픽 본선에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팀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신태용 감독은 이광종 전 감독의 빈 자리를 이어 받아 본선행이라는 1차 목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성남 시절 2010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와 2011 FA컵 우승으로 이어지는 '단기전의 마법사' 이미지를 올림픽팀에서도 이어 갔다. 현역 시절 K리그의 전설로 불렸지만 대표팀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신 감독이기에 어린 태극전사들을 이끌고 국제대회에서 맛본 성공은 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올림픽 본선이라는 과제는 완수했지만 대회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결승 상대는 일본이다. 전력이나 대회의 중요성을 떠나 한·일전은 언제나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깊은 승부다.
지금 신태용호의 직속 선배들이었던 런던올림픽 대표팀이 사상 첫 본선 동메달을 확정 짓는데 제물이 되었던 것도 바로 일본이었다. 신태용호가 내친김에 한일전에서도 좋은 결과를 끌어내며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기대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