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모습 ⓒ 유성호
1월 부산시의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압박, 2월 감사원 감사, 4월 영진위 지원금 삭감, 12월 감사원 지시에 따른 이용관 집행위원장 등 고발... 2015년 국내 영화제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부산국제영화제로 통했다. 한국 영화계 전체가 들고 일어서며 영화계와 현 정권과의 대치전선이 부산영화제를 가운데 놓고 형성됐다. 1년 내낸 부산영화제 논란이 계속되면서 다른 영화제들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부산영화제 파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국내 영화제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2015년 국내 영화제를 주요 특징 별로 결산해보자.
[맏형의 수난시대] 표현의 자유에 사활 건 한국영화
▲ 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 ⓒ 부산영화제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잘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
지난 7일 열린 여성영화인상 수상식에서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은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받은 강수연 위원장에 대한 영상 축하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 내내 부산영화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 대해 우려와 격려을 나타낸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주일 뒤인 14일 부산시의 이용관 부산영화제 위원장 검찰 고발 소식이 전해졌다.
부산영화제의 수난은 단순히 한 영화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중대한 도전이라는 것이 영화계의 정서다. '영화제는 영화의 해방구'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일체의 검열과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 영화제의 특성이자 생명이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간 안정적인 운영으로 세계적 권위를 획득한 부산영화제에게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가해진 압박은 한국영화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부산영화제가 국내 영화제 역사의 출발이라는 점은 표현의 자유 투쟁이라는 상징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감사원이 국고가 아닌 민간협찬금에 대해 고발을 언급한 것은 정치적 보복의 인상을 더욱 강하게 갖게 하는 부분이다.
영화계의 공분을 배경으로 부산영화제는 정면 대응 자세를 취하고 있다. 19일부터 매 주말마다 부산 독립영화인들과 관객들의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고, 영화계는 부산영화제를 돕기 위한 일일 주점 등도 준비중이다.
압박을 견뎌내며 2015년 20회 영화제는 잘 마무리 됐으나, 2016년 전망은 짙은 안개 속이다. 서병수 부산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부산에서의 영화제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그동안 힘들게 이뤄놓은 20년 공든 탑이 한 순간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부산영화제의 수난은 해외 영화인들의 영화제 지지 성명이 잇따르고 있을 만큼 국제적인 관심사로 부상했다. 현 정권의 '문화 융성' 구호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증명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집행위원장 변동] 문화마피아 영향력 약해지고, 세대교체 하고
▲ 전주국제영화제 이충직 집행위원장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용배 집행위원장 ⓒ 전주영화제, 부천영화제
정치적 압박을 받던 부산영화제는 지난 7월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등장하면서 2010년 이후 5년 만에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들어섰다. 준비 과정에서 위기의 연속이었던 20회 영화제에서 강수연 위원장의 활약은 빛이 났다. 1회 영화제 때부터 함께해 왔기에 무리없이 필요한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주국제영화제도 7월말 이충직 전 영진위원장이 신임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취임 이후 스태프들과 내내 갈등을 빚던 고석만 위원장이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서, 이 집행위원장이 새로 전주영화제를 이끌게 됐다. 영화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지역 문화마피아로 불리는 인사들의 힘이 약해진 듯 전주지역 출신이 아닌 인사가 영화제를 이끌게 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영화인 출신이 영화제를 이끌게 되면서 흔들리던 조직이 안정을 찾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서병수 부산시장과는 다르게 문화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면 안된다는 기조가 확실해 여러모로 부산의 상황과 대비되고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괴물> <26년> 등을 제작한 청어람 최용배 대표가 11월 김영빈 집행위원장 후임으로 선임됐다. 평론가나 감독이 맡던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제작자 맡게 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최용배 대표는 대기업 독과점 문제에 가장 앞장서서 싸우는 영화인으로 통한다. 제작했던 영화들 역시 사회성 짙은 소재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1회부터 참여했던 김선아 집행위원을 공동집행위원장로 선임하면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가장 막내였던 김선아 공동집행위원장이 영화제의 실무를 주관하게 되면서 다른 영화제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젊어졌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위원장 변동 없이 허진호 감독이 집행위원장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있지만, 워낙 역량을 인정받는 감독인지라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일에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소탐대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지원금 횡령 드러났으나 고발은 면해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김종현 집행위원장)는 스태프 미지급 임금 문제로 지원이 중단되는 수모를 겪었다. 전체 200만원을 웃도는 스태프 임금을 안 주려다 수억 원의 지원금을 못 받은 것이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외부 압력설 등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정당함을 강조했으나, 국내 다른 영화제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국내 한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은 "청소년영화제가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소년영화제는 결국 논란이 된 미지급 임금을 공탁을 통해 당사자들에게 지급하며 소송을 통해 시비를 가리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이마저도 1심에서 패소해 항소한 상태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영화진흥위원회, 서울시, 성북구 등에서 받은 지원금 8400만원에 대한 횡령 등이 드러났다. 다행히 고발은 면했으나 "위원장 퇴진 등 인적쇄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저 상태로 더 이상 영화제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영화계 인사들의 의견이다.
[작은 영화제들의 약진] 무주산골영화제와 음식영화제 대성황
▲ 무주산골영화제 야외상영 모습 ⓒ 무주산골영화제
올해는 적은 예산으로 치러지는 특색 있는 영화제나 규모가 작은 영화제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와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어린이 대상에서 범위를 넓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는 크지 않지만 알찬 프로그램과 운영이 돋보이며 성장을 이뤄냈다. 2회를 맞은 무주산골영화제와 올해 처음 개최된 서울국제음식영화제는 몰려든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뤘다.
독립영화제들은 지원이 축소되는 여건에서도 새로운 작가들에 대한 발굴을 이어갔고, 아랍영화제나 스웨덴영화제, 중국영화제 등 특정한 나라들의 영화를 대상로 하는 영화제들의 경우는 매니아 관객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며 다양한 영화를 갈구하는 관객들의 욕구를 만족시켰다.
문화다양성의 역할을 확장시키는 데 영화제들의 역할은 점차 커지고 있으나 지난 2월 검열 논란을 일으킨 영진위의 영화제 상영작 등급심의면제추천 개정에서 보듯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정치적 시선 또한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 2015년이었다. 2016년 영화제들은 이런 수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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