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 포스터
(주)JK필름
영화 <히말라야>의 흥행세가 무섭습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만 167만 관객을 동원, 헐리우드 대작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의 경쟁 속에서 400만 관객을 돌파했고, 당분간 이 기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도 이번 연휴에 영화를 봤는데요, 감동적이더군요.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습니다.
영화는 '포스터에 황정민 얼굴만 봐도 영화 다 본 것'이라는 농담이 돌 만큼 전형적인 한국 영화였습니다. 그 점 때문에 비평적으로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상업적으로 본다면 이게 꼭 단점인 것만은 아니죠. 웃기다가 울리는 한국 영화의 전통적 흥행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수많은 산악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장면들을 한국인 배우들이 재연하고 있으며, '형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같은 뻔하디 뻔한 대사도 쉼 없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이는 영화가 울다가 웃고 싶고, 산악 영화의 스릴을 한국어로 즐기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주머니를 정확히 저격하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통해 느끼고 싶고 보고 싶었던 뻔한 것들을 다 누리다 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전형적인 한국 영화'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한국 영화에서 발견되는 아주 전형적이고 고질적인 성차별적 요소들까지 영화에 고스란히 발견되었거든요. 저는 바로 그 점을 이 글을 통해 지적하고자 합니다.
'벡델 테스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영화가 성평등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는 일종의 지표로, 해외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죠. 복잡한 테스트는 아닙니다. ① 이름이 있는 여성이 2명 이상 등장하는가. ② 두 여성이 서로 대화를 하는가. ③ 대화의 내용이 남성과 관련이 없는가. 이 세 가지에요. <히말라야>와 함께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경쟁중인 <스타워즈>는 이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했죠. 하지만 <히말라야>는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우선 이름이 있는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하기는 합니다. 라미란이 연기한 산악인 조명애와, 주인공 박무택의 아내인 최수영(정유미 분), 그리고 엄홍길 대장의 아내인 최선호(유선 분). 이렇게 세 명이요. 하지만 이들 상호간엔 대화가 없고, 대화가 없으니 '남성과 연관 없는 대화' 또한 당연히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