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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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가 나치에 가입한 것은 특별한 신념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신념에 설득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1960년 예루살렘에서 총 15가지의 죄목으로 기소되었을 때, 무죄를 주장했다. 당시 존재하던 나치 법률 체계 하에서 아이히만 자신은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가의 공식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점에 대해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74쪽 참조).
독일을 비롯한 전 유럽에 걸친 유대인 추방과 학살이 국가의 정상적인 절차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아이히만 개인이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는 논리인 셈이다.
세상을 바꿀 어떤 신념도 없었던 그는 히틀러가 희망한 대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에서부터 발칸 반도, 중부 유럽에 이르기까지 유대인 축출 계획을 시행했다. 그는 확실한 성과를 거뒀고, 그의 남다른 재능이 성과의 배경에서 빛을 발했다.
일반적인 예상과 다르게, 유대인을 추방하는 계획은 매우 체계적이고 법률적인 토대 하에 진행됐다. 그 체계적이고 법률적인 토대를 만든 것이 바로 아이히만이었다. 협동 작업 라인을 만들어, 여권의 발부와 유대인의 재산 양도 문서 작성을 모두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재무부와 국세청, 경찰이라는 국가의 조직이 한데 모여 힘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절차들이 끝나면 열차에 태워져 유대인들은 추방지로 보내졌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자면 마치 "제빵소와 연결된 방앗간과 같은 자동화된 공장"이다. 물론 열차를 태워보내는 방식 역시 매우 체계적이었다. 가령 객차 하나에 탈 수 있는 인원이 몇 명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따지는 식이었다.
그렇게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장례식장을 향해 매일 매일 떠났다. 1943년 6월 30일 제국(독일, 오스트리아 및 보호국들)에서 더 이상 유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포가 이루어질 때까지 이 방식은 이루어졌고, 이송된 26만5000명 가운데 탈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이 신념도 없고, 어떤 신념에 설득된 적도 없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단지 조직을 설득하는 능력과 협상 능력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히만이 국가에 충실히 봉사한 덕분이었다.
<소수의견>은 예상을 깨고 법정드라마에 충실하고 있다. 초반부 시위 장면이나 회상 장면에서 현장성 있는 컷들이 등장하지만, 스토리 자체의 묘미나 우리의 한숨을 자아내는 장면들은 주로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공방에서 등장한다. 그 공방의 이편에는 철거민 박재호와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와 기자가 있고, 그 너머 반대편에는 검사(아마도 공안검사)가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비열함을 보였던 검사들은, '논리'에 충실한다. 그 논리에 '국가를 위하여'라는 명제가 깔려있음은 분명하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그랬던 것처럼, 재판 내내 친절하고 교묘한 논리로 배심원들의 부성애를 자극하기도 하고, 때론 윽박지르기도 한다. 특히 여자 검사는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정감 가는 외모와 탁월한 언변으로 배심원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때로는 재판에 유리하도록 증인들을 회유했고, 증거물도 조작했다. 법률가라면 응당 지녀야할 양심 따위는 '국가'라는 명제 뒤로 숨어버렸다.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의 손과 발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들은 '서울의 아이히만'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마무리가 된다. 하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 영화의 이도저도 아닌 현실보다도 더 못하니, 어찌 보면 영화의 끝맺음이 오히려 더 해피엔딩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법정에 선 아이히만 단 한명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좀 더 심각하다. 우리 주변에는 셀 수 없는 아이히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물대포를 쏘았으며, 버스로 차벽을 쳤으며, 도시의 한 가운데 흉물스런 산성을 쌓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라고. 그러나 아이히만이 유죄였듯이, 그들도 유죄이다. 단 감옥이 아닌 그들이 권력에 부역함으로 만들어놓은 이 사회라는 거대한 감옥 안에 자기 자신도 함께 갇혀있는 것이다.
▲영화 <소수의견>의 공식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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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겨울 새벽의 참극...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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