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대표팀 염기훈이 11일 오후 말레이시아 샤알람의 샤알람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평가전에서 첫 골을 넣은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호남대를 졸업하고 전북현대에 입단한 염기훈은 입단 첫 해 전북의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K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특히 왼발을 잘 사용해 '왼발의 달인', '왼발의 마술사', '염긱스' 같은 멋진 별명들이 붙기도 했다.
염기훈은 2006년 10월 대표팀에도 선발되며 승승장구했고 이후 이적 논란과 왼발골절 부상을 극복하고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기회였던 월드컵 출전은 염기훈에겐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한국 대표팀의 왼발 스페셜리스트로 주목받던 염기훈이 나락으로 떨어진 경기는 2010년 6월 17일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이었다. 선발 출전한 염기훈은 한국이 1-2로 지고 있던 후반 12분, 박스 안 오른쪽 지점에서 골키퍼와 1:1로 맞서는 절호의 득점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당황한 염기훈은 옆그물을 때리는 실수를 저질렀고, 한국은 아르헨티나에게 1-4로 패하고 말았다.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면서 사상 첫 원정 16강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염기훈은 축구팬들에게 아르헨티나전 대패의 주범으로 몰리고 말았다.
조광래 감독 재직 시절 한동안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한 염기훈은 전북 시절 은사였던 최강희 감독 부임 후 다시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그리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결국 염기훈은 작년 1월 홍명보호의 미국전지훈련 멕시코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남아공 월드컵 시절 축구선수로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염기훈도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긴 노장이 됐다. 특히 염기훈의 포지션(왼쪽 윙포워드)에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이 존재했기 때문에 염기훈이 다시 태극마크를 다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동료들이 만든 공간을 이용한 감각적인 프리킥골브라질 월드컵과 아시안컵에서 예비 명단조차 들지 못한 염기훈이 다시 대표팀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역시 K리그에서의 맹활약 덕분이었다. 염기훈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12경기에 출전해 7골 6도움을 기록하며 득점과 도움 부문에서 모두 선두를 질주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염기훈의 많은 나이를 걱정하면서도 "리그에서 이렇게 잘하는 선수를 뽑지 않을 수 없었다"며 염기훈을 대표팀에 선발했다. 그리고 염기훈은 1년 5개월 만의 A매치 복귀전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실하게 증명했다.
왼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전한 염기훈은 전반 42분 박스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 상황에서 정확한 왼발슛으로 UAE의 골망을 갈랐다. 동료들이 고개를 숙이며 마련한 공간으로 정확한 킥을 날린 염기훈의 능력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염기훈은 지난 2008년 2월 23일 동아시안컵 일본전 이후 무려 2666일 만에 A매치에서 골을 기록했다. 비록 하프타임 때 남태희와 교체됐지만 슈틸리케 감독 앞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엔 부족함이 없는 활약이었다.
현재 대표팀에는 '에이스' 손흥민을 비롯해 기성용(스완지시티) 등 오른발로 프리킥을 찰 수 있는 선수는 많이 있다. 하지만 전문 왼발키커는 김진수(호펜하임) 정도다. 왼발의 정확성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염기훈이 대표팀의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가세해 준다면 '슈틸리케호'는 또 하나의 위협적인 무기를 가질 수 있다.
만32세의 염기훈은 현재 대표팀 내에서 곽태휘(만33세)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러시아 월드컵이 열리는 2018년 염기훈의 나이는 만35세가 된다. 슈틸리케 감독이 염기훈의 대표팀 선발을 끝까지 망설였던 이유다.
하지만 작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미로슬라프 클로제(독일), 안드레아 피를로(이탈리아) 같은 1970년대 생 선수들이 활약했고 한국 대표팀 역시 지난 1월 아시안컵에서 1980년생 차두리(FC서울)의 대활약이 없었다면 준우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염기훈 역시 나이는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K리그에서 보여준 기량이 진짜임을 증명하고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수모를 씻기 위한 열정만 살아있다면 염기훈에게도 분명 기회는 찾아올 것이다. 적어도 슈틸리케 감독은 선입견으로 선수 기용 여부를 결정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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