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차범근의 '아들'에서 국대 '레전드'로... 굿바이 차두리

차두리 은퇴에 부쳐 A매치 75경기 그의 발자취를 더듬다

15.02.02 11:25최종업데이트15.02.02 11:25
원고료로 응원
차두리 '마지막 대표팀 경기 마친 소감은' 2015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축구대표팀의 차두리가 1일 오후 인천공항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차두리 '마지막 대표팀 경기 마친 소감은'2015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축구대표팀의 차두리가 1일 오후 인천공항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연합뉴스

'차미네이터' 차두리(35·FC 서울)가 축구대표팀을 떠난다. 지난 1월 31일,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의 2015 AFC 아시안컵 결승전이 차두리의 국가대표 고별무대가 됐다.

한국이 아쉽게 호주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면서 기대했던 화려한 우승 세리머니는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투혼을 불태운 차두리의 활약만큼은 유종의 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평가다.

차두리, 히딩크의 발탁에 한일월드컵 출전

차두리는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 총 75경기에 출전했다. 차두리의 A매치 데뷔전은 지난 2001년 11월 18일 세네갈 전이었다. 고려대 재학 시절 당시 한일월드컵을 준비중이던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의 눈에 띄어 대표팀에 깜짝 발탁됐다.

당시 차두리의 발탁과 얽힌 히딩크 감독과의 일화는 유명하다. 히딩크 감독은 고려대와 연습 경기에서 범상치 않은 체격조건을 지닌 고려대 선수 한 명을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차두리였다.

히딩크 감독은 개인훈련 중이던 차두리에게 직접 다가가 "경기는 끝났으니 돌아가도 좋다"고 일러줬는데, 차두리가 통역도 없이 유창한 독일어로 "난 고려대 선수고 우리 감독의 지시에 따르겠다"며 히딩크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은 어린 선수의 당돌한 대꾸에 오히려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은 보통 한국 선수들이 성실하고 순박하지만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자기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성향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인으로서 보기 드문 차두리의 탄탄한 체격과 운동능력, 여기에 긍정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은 히딩크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은 차두리가 그 유명한 '차붐'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히딩크 감독의 차두리에 대한 첫 인상은 한일월드컵 이후 그의 공식 자서전인 <마이 웨이>에서도 상당히 비중 있게 언급되고 있다.

"차두리는 대표팀에 합류할 당시 대학생이었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아직 독립한 상태도 아니었다. 한국 특유의 문화 탓인지 아직 자기 영역을 구축하지 못했다. 당시 프로 리그에서 검증 받은 선수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성장 잠재력을 확신했다. 만약 내가 그를 잘못 봤다면 월드컵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그에게 계약을 제의할 리 없다."

"차두리가 대표팀에 들어온 뒤 나는 그를 혹독하게 다그쳤다. 차두리는 아버지의 유명세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 같았다. 차두리는 사람들이 항상 아버지와 자기를 비교한다고 투덜거렸다. '너는 이제부터 차두리라는 국가대표 축구 선수이지, 차범근의 아들이 아니다. 실패가 두렵다고 해서 아무런 시도도 안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 <마이 웨이> 본문 중에서

당시 차두리를 처음 대표팀에 발탁할 때만 해도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체격조건과 파워, 스피드는 빼어났지만 골 결정력이 떨어지고 기술이 투박하다는 약점도 뚜렷했다.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과대평가된 게 아니냐고 선입견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과감하게 차두리를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발탁했다. 당시 대표팀의 최전방 공격진은 황선홍과 안정환, 최용수가 엔트리 세 자리를 확보한 상태였다. 남은 한 자리를 두고 코치진과 언론은 대부분 이동국이나 김도훈을 예상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공격수의 마지막 한 자리는 '조커'이고, 경기 후반에 투입되어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존의 공격수들과 차별화된 장점을 지닌 선수가 필요하다는 게 히딩크 감독의 생각이었다.

차두리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주로 교체멤버로 활약하며 4강 신화에 기여했다. 나이로는 한 살 아래인 이천수·최태욱과 함께 대표팀의 막내라인을 담당하며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하기도 했다. 주로 체력이 떨어지는 경기 후반 조커로 투입되어 이천수와 함께 상대 진영을 휘젓는 역할이 차두리의 임무였다.

차두리가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으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한일월드컵 16강 경기 당시 이탈리아전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0-1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주장이자 수비의 핵인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투입하여 공격을 강화하는 파격적인 포지션 파괴를 단행했다.

차두리는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후반 44분 그림같은 오버헤드킥으로 이탈리아 잔루이지 부폰 골키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비록 골을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차두리는 거구의 이탈리아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그라운드를 휘젓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내내 이탈리아의 거친 플레이에 골탕을 먹었던 국내 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기 충분했다.

긴 방황과 침체... 그리고 화려한 부활

차두리는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 입단하며 유럽파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이후 차두리의 축구인생은 적지 않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가는 팀마다 강등과 반등을 거듭하며 1~2부 리그를 오르내려야했고,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차두리 본인도 포지션을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변경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한동안 대표팀에서도 경쟁에서 밀려났다. 독일월드컵에서 낙마하는 아픔도 겪었다. 태극마크 경력이 14년에 이르는 차두리의 A매치 출전횟수가 75경기(박지성 100경기, 이영표 127경기)에 불과한 것이나, A매치 득점이 4골밖에 되지 않는 것도 이런 부침이 거듭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부친 차범근은 A매치 132경기에 출전하여 59골을 기록했다.

 지난 2010년 5월 16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대표팀과 에콰도르 평가전에서 차두리 선수가 공을 몰고 있다.
지난 2010년 5월 16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대표팀과 에콰도르 평가전에서 차두리 선수가 공을 몰고 있다.권우성

한동안 잊혀지는 듯 하던 차두리는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허정무호의 최종엔트리에 승선하며 다시금 주목받았다. 이때의 차두리는 측면 수비수로 포지션 변경을 완료한 상황이었다. 지역예선까지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본선을 앞두고 경험 많은 선수들을 중용하려는 허정무 감독의 계획에 따라, 당시 대표팀의 고질적인 약점이던 오른쪽 풀백 자리주전을 꿰차게 됐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차두리는 '로봇두리' 신드롬을 일으켰다. 거구의 외국선수들과 부딪혀도 밀리지 않는 탱크 같은 파워와 스피드, 긴장감이 넘치는 큰 무대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모습이 마치 잘 설계된 로봇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유래된 별명이다. 당시 해설자로 활약했던 부친 차범근 위원이 차두리가 경기에 나올 때마다 유독 조용한 이유가 로봇 차두리를 조종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차미네이터(차두리+터미네이터)', '차바타(차두리+아바타)'같은 별명들이 모두 이때부터 탄생했고 차두리는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 허정무호의 남아공월드컵 슬로건이기도 했던 "유쾌한 도전"이라는 표현에 잘 부합하는 상징이 바로 차두리였다.

차두리는 남아공월드컵 16강까지 4경기 중 3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한국의 첫 월드컵 원정 16강 신화에 기여했다.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와 돌파로 측면을 지배하는 모습이나, 나이지리아전에서 16강이 확정되자 허정무 감독을 얼싸안고 환호하던 장면,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아쉽게 석패한 후 눈물을 흘리는 순간 등 차두리의 일거일투족에 대한민국 축구팬들이 울고 웃었다.

한국축구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인 한일월드컵 4강과 남아공 16강을 모두 체험한 멤버는 차두리 외에 박지성·이영표·김남일·안정환·이운재 등 6명에 불과하다. 이중 실제로 남아공 대회에서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은 안정환과 이운재를 빼면 4명만이 그라운드에서 직접 영광의 순간을 만끽했다. 차두리가 명실상부하게 한국축구 역사의 중심에 섰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이다.

차두리는 생애 마지막 월드컵 도전이었던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또 다시 최종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최종엔트리 확정 직전이던 지난해 3월, 그리스와의 평가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부상으로 합류가 불발된 게 아쉬웠다. 차두리는 부친 차범근과 함께 독일월드컵에 이어 또다시 해설자로 브라질월드컵에 참여했다.

당시 대표팀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면서 모두가 실망과 분노를 금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선배들이 잘 못해서 후배들에게만 무거운 부담을 안긴 것 같아 미안하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겼다.

박수칠 때 떠나는 차두리, 오래오래 기억될 그의 업적

차두리는 2015 호주 아시안컵을 앞두고 새롭게 부임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눈에 들어 선수생활의 황혼을 앞두고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다. 아직 변함없는 체력과 기량, 어느덧 연륜이 쌓여 관록까지 갖춘 베테랑이 된 차두리는, 대표팀이 절실히 필요로 하던 '리더'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차두리는 기꺼이 박수칠 때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 호주 아시안컵을 자신의 마지막 국가대표 고별무대로 선언한 차두리는 그야말로 후회 없이 모든 것을 불살랐다. 아시안컵 결승까지 6경기 중 조별리그 호주전을 제외한 5경기(선발 3경기)에 출전하여 2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의 결승진출에 큰 수훈을 세웠다.

특히 연장혈전을 치른 우즈벡과의 8강전에서 그림 같은 70m 단독 돌파에 이어 완벽한 택배 크로스로 손흥민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는 장면은, 이번 아시안컵 한국대표팀의 최고 하이라이트이자 차두리의 축구인생을 통틀어도 손에 꼽힐 만한 명장면으로 남았다.

월드컵 본선 2회 출전(2002, 2010)에 홈 4강과 원정 16강, 아시안컵 본선 3회 출전(20014,2011, 2015)에 8강-4강-준우승이라는 화려한 발자취를 남기고 차두리의 국가대표 커리어는 아름다운 피날레를 마쳤다. 그에게는 오랫동안 영광이자 그늘이기도 했던 부친 차범근의 후광을 뛰어넘어, '국가대표 차두리'라는 본인의 이름 자체만으로 한국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레전드'로 두고두고 기억되기에 충분한 업적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차두리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