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파리넬리>의 커튼콜. 안젤로 역의 안유진. 안젤로는 창작인물로 영화 <파리넬리>에도 등장하지 않던 인물이다. 영화 <파리넬리>의 알렉산드로 역할과 묘하게 겹치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곽우신
하지만 리카르도 역시 자신의 삶을 사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어렸을 적 동생이 강제로 거세된 순간부터, 동생을 위해 살겠다고 아버지와 약속한다. 아버지의 죽음 후, 이 맹세는 그를 옥죄는 족쇄가 된다. 그는 헨델처럼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페르소나인 동생은 만족시키고 싶다. 그래서 동생만이 소화할 수 있는, 화려한 음악적 기교만 담긴 텅 빈 오페라를 공장식으로 찍어낸다.
그 역시 알고 있다. 자신의 음악은 그런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리카르도는 이미 동생의 그림자에 속박됐다. 그래서 그가 실현할 수 없는 자아실현의 욕망은 다른 욕망으로 풀어낸다. 도박에 돈을 탕진하고, 세속적 욕망에 도취된다. 그 과정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파리넬리에게 억압받는 리카르도가 되려 카를로를 억압한다. 리카르도는 어느새 동생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여하게 된다.
동생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실은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게 된 리카르도. 하지만 그런 삶 역시 온전한 자신의 삶이 아니라 동생의 불행을 매개로만 유지될 수 있는 삶이다. 동생의 행복을 바랐지만 오히려 동생의 불행이 있어야만 존속되는 모순의 고리를 그는 끊지 못한다. 그 고리를 끊어주는 것은 결국, 형을 떠나는 동생이었다.
여장남자인 안젤로 역시 비슷하다. 그의 본명은 마리나다. 자신의 죽은 남동생 안젤로를 위해, 그는 동생의 못 다 이룬 꿈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래서 자신이 안젤로가 돼 동생의 인생을 대신 산다. 불경하다는 이유로 여자는 무대에 설 수 없던 시대, 안젤로는 자신을 남자로 속인 채 카스트라토인 척 오페라 무대에 서야만 했다. 그래서 남성으로 존재할 수 없는 남자 파리넬리와 여자이지만 남자인 척 해야 하는 안젤로의 애정이 더 애틋해진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할 수 없다. 안젤로 역시 이 진부한 진리를 깨닫고 무대에서 내려온다. 재능도 있고, 노래도 좋아하지만 안젤로가 아니라 마리나의 노래를 불러야만 그가 그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여러 단점에도 충분히 박수받을 수작뮤지컬 <파리넬리>에는 자잘한 단점들이 있다. 예컨대 다소 톤이 튀는 미용실 장면이나 난해한 듯 조야한 일부 의상,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앙상블의 조합이나 관객의 집중을 흐트러트리는 음향이 그렇다. 소재는 독특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참신하지는 않다. 일관된 감정선은 평이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를 약간은 지루하게 만든다. 래리펀치를 열연한 배우 원종환마저 없었으면 극 전체가 경직될 뻔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도 충분히 박수를 줄만한 수작이다. 무대에 잔뼈가 굵은 안유진, 이준혁의 호연은 말할 것도 없다. 1막에서는 다소 파리넬리에 묻히는 감이 있었지만, 2막부터는 듀엣을 부르거나 합창을 할 때도 훌륭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빛나는 배우들이다.
특히 파리넬리를 연기한 카운터테너 루이스초이는 등장부터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연기는 다소 서툴지만, 그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 모든 단점을 지워버린다. 비록 전곡이 아니라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루이스초이가 열창하는 오페라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무대는 충분히 직접 볼 가치가 있다. 그는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카스트라토의 비애를 잘 풀어낸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하지만, 꿈꾸기 참 어려운 시대다. 아직도 나의 인생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여러모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테다. 누군가에게 강요받았던 욕망과 자신의 좌절을 뒤로한 채,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간 어느 가수의 이야기가 있다. 식상하지만 여전히 울림 있는 메시지를 품에 안은 채….
▲뮤지컬 <파리넬리>의 포스터
HJ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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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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