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감독은 남자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고싶은 선망의 직업이다. 대한민국에서 한 해 오직 10명에게만 허용된 자리이지만, 매일매일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려야 하는 압박감 또한 큰 직업이기도 하다.
롯데 자이언츠는 대한민국에서 유난히 뜨거운 야구 열기를 자랑하는 구도 부산을 연고로 하고 있다. 야구계에서는 '한국에서 프로야구 선수라면 한번쯤 사직구장에서 뛰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전통적으로 부산의 야구 열기는 남달랐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인기 구단답게 롯데를 이끄는 감독 역시 팬들 사이에서는 '우리 감독'이라고 불릴만큼 각별한 대우를 받는다. 성적에 따라 수많은 열성팬들을 아군으로 만들 수 있지만, 잘못하면 가장 극성스러운 적군으로 돌릴 수도 있는 것이 롯데 감독의 운명이다.
기대만큼 압박감도 큰 자리여서인지 역대 롯데 감독들의 수명은 짧은 편이었다. 프로야구 33년 동안 무려 16명의 감독들이 이 자리를 거쳐가며 감독의 임기가 평균 2년 정도에 그쳤다. 원년부터 프로야구 역사를 함께 해오며 가장 많은 감독을 자주 교체한 팀도 롯데다.
롯데 역대 감독 중 유일한 우승 기록 강병철...마무리는 좋지 못했다
롯데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지휘봉을 잡은 인물은 강병철 감독이다. 강병철 감독은 롯데 한 팀에서만 무려 세 번(2대, 6대, 12대)이나 지휘봉을 잡는 진기록을 세웠고, 83년 첫 감독대행 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9년 가까이 롯데를 이끌었다. 롯데의 역대 감독들 중에 유일하게 우승(84, 92년)을 팬들에게 선물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반면 우승을 하는 과정에서 고 최동원(84년), 염종석(92년)같은 특급 투수들의 '혹사'로 단명의 빌미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세 번째 임기였던 롯데에서의 마지막 2년간(2006~2007)은 극심한 성적 부진과 선수단과의 불화 등으로 물의를 빚으며 마무리는 좋지못했다.
단일 재임기간 동안 가장 오랜 시간 롯데를 이끌었던 인물은 7대 김용희 감독(현 SK)이다.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기도 한 김용희 감독은 무려 4년 7개월(93.11.20∼98.6.16) 동안 지휘봉을 잡으며 역대 롯데 최장수 감독으로 남아있다. 95년에는 롯데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삼성 감독과 SK 육성총괄 등을 거쳐 현재 이만수 전 감독의 뒤를 이어 SK의 신임사령탑에 취임했다.
시즌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김명성 감독...1년 못 채운 단명 감독들
롯데에는 1년을 채우지못하고 물러난 단명 감독들도 수두룩하다. 3대 성기영 감독(1989), 5대 김진영 감독(1989), 9대 우용득 감독(2002)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롯데의 암흑기 시절은 감독들에게도 잔혹한 시간이었다. 특히 8대 고 김명성 감독(1999~2001)은 역대 프로야구 감독들 중 가장 비극적인 인물로 기억된다. 김명성 감독은 1999년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며 찬사를 받았으나, 2001년 성적이 추락하면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시즌 중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역시 고인이 된 임수혁과 함께 롯데 야구 사상 가장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반면 10대 백인천 감독은 부산 팬들 사이에서 지금도 '롯데 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종종 회자된다. 현역시절 한국야구계의 전설로 명성을 떨쳤던 백인천 감독이지만, 롯데에서는 극심한 성적부진과 함께 잦은 기행 및 돌출발언으로 논란의 도마에 오르며 팬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야구의 신이 와도 지금의 롯데를 구원할 수는 없다"는 등의 망언을 일삼아 지금도 백인천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이를 가는 부산 팬들이 상당수다.
롯데 중흥기 이끈 유일한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
롯데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13대 제리 로이스터 감독(2008~2010)은 프로야구 역대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인 감독이다. 2008년 부임 이후 7년 동안 하위권을 전전하던 롯데를 단숨에 포스트시즌으로 끌어올리며 일약 구도 부산의 구세주로 등장했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의 재임기간 동안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구단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가을잔치에 참여하며 부산의 야구역사를 새롭게 썼다.
로이스터 감독의 시대는 롯데 야구의 인기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로도 기억된다. 'No Fear'로 대표되는 선이 굵고 호쾌한 공격 야구 철학, 선수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메이저리그식 선수단 운영 등은, 화끈하고 열정적인 구도 부산의 야구정서와 잘 들어맞으며 인기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14대 양승호 감독(2011~12)은 전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업적을 계승하며 2012년까지 구단 역사상 최다인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2011년에는 롯데에 정규시즌 최고성적인 2위를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양승호 감독은 고려대 감독 시절 입시비리에 연루된 것이 들통나 불명예스럽게 하차하며 롯데 감독사에서 또 하나의 흑역사를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그 뒤를 이어 취임한 15대 김시진 감독은 롯데에서 선수생활 말년을 보낸 92년 마지막 우승멤버중 하나였지만, 감독으로서는 2년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와 함께, 강력한 프런트와 선수단 사이에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식물감독'이라는 꼬리표를 피하지 못했다. 김시진 감독은 결국 임기 1년을 남기고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지휘봉 잡은 신임 이종운 감독, 잘 할까
롯데 구단은 지난 10월 31일, 이종운 1군 주루코치를 자이언츠의 제 16대 감독으로 발표했다. 이종운 신임감독은 과거 롯데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지냈고, 은퇴 후 경남고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프로에서는 아직 지도자 경력이 일천한 인물이다. 젊고 새로운 인물을 선호하는 최근 프로야구의 추세를 감안하면 놀랄만한 선택도 아니다.
하지만 롯데의 현재 상황과 시기를 감안할 때 적절한 인사였는지에는 평가가 엇갈린다. 롯데는 김시진 감독 사퇴 이후 선수단과 프런트간의 갈등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다. 롯데가 후임감독 후보로 검토하던 공필성 코치와 프런트 실세로 거론되던 이문한 운영부장이 선수단의 집단 반발로 탄핵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김시진 전 감독이 이미 불명예스럽게 하차한 뒤라 차기 롯데 감독은 누가 지휘봉을 잡아도 정상적인 리더십을 발휘할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이 큰 상황이다. 역대 롯데 사령탑을 통틀어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지휘봉을 물려받은 셈이다.
이종운 감독은 초보 감독임에도 시작과 함께 이중의 부담을 안게 됐다. 첫 번째는 흐트러진 팀의 기강과 내분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다. 이종운 신임감독은 주변에 적이없는 원만한 인품으로 알려져있지만 한편으로 일부 팬들과 선수단 사이에는 또다른 '친 프런트 인사'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 신임감독이 선수단과 프런트 사이에서 확고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시작부터 레임덕을 맞이하게되는 상황이 나올수도 있다.
둘째는 역시 성적에 대한 부담이다. 한때 가을잔치 단골손님이던 롯데는 2년 연속 4강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올해는 시즌 중반까지 4강을 유지하다가 팀 내분과 뒷심 부족이 겹쳐 추락하면서 팬들의 실망감도 컸다. 롯데는 1992년 마지막 우승 이후 프로야구 역사상 최장기간인 22년 연속 무관에 그치고 있다.
꼴찌 한화가 김성근 감독, KIA가 김기태 감독 등 그나마 프로에서 과거 실적을 올린 경험이 있는 지도자들을 영입한 것과 달리, 롯데는 두산(김태형)과 함께 또다시 검증되지않은 초보 감독 카드를 꺼내들었다. 불과 몇주전만 해도 감독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않았을만큼 갑작스럽게 선임된 이종운 카드가 얼마나 '준비된 감독'으로서의 면모를 보일수 있느냐는 다음 시즌 롯데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다.
롯데 팬들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암흑기의 아픈 기억을 잊지않고 있다. 7년연속 포스트시즌 탈락과 4년연속 꼴찌를 겪으며 롯데의 부진은 곧 한국프로야구의 흥행 침체기로도 이어졌다. 잃어버린 성적과 팬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팀재건의 중책을 맡은 신임 감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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