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계>의 주요 등장 인물왼쪽부터 '명동의 큰 손'(이기영), '세희'(신은경), '민영'(오인혜), '용훈'(강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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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주요 인물로 '용훈'(강지섭)과 '민영'(오인혜) 그리고 의상실 실장(강걸)이 등장한다. 용훈은 세희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그녀를 지켜주고 혹은 해결사로의 역할을 해낸다.
거의 대사 없이 표정과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그는 끝까지 세희를 배신하지 않는다. 민영은 편의점에서 일하다 사채업자에게 돈 갚을 것을 독촉 당하는데 이 장면을 세희가 보게 되고, 자신의 어릴 적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그녀를 보며 동질감을 느낀 세희는 그녀를 선택하고 자신의 사업에 그녀를 끌어 들인다.
이들을 데리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설계'에 들어간 세희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변수를 맞는다. 자신이 자주 방문하는 곳의 의상실 실장인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업계의 진리를 거스르고 사랑 앞에서 그녀는 무너지고 만다. 세희가 20대 중반의 연하 남에게 마음을 주는 순간 그녀의 '설계'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설계'는 연출력과 편집부터...가장 중요하게 연출되고 편집기능이 힘을 발휘되어야 할 곳이 이 부분부터이다. 나름대로 감독은 이 부분에서 상당한 욕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상을 중심으로 한 종합 예술로서의 영화엔 어떠한 욕심도 허락되지 않는다. 선을 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고 과감하게 베팅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
세희의 '설계'대로 복수극은 흘러가지만, 끊임없이 도중에 반복되는 배신과 음모의 굴레는 전혀 긴장감과 자극을 주지 못한다. 베드신은 뜬금없었고, 각 캐릭터간 치밀한 두뇌싸움은 자막으로 표현되지만, 단순하고 지나친 반복으로 인해 몰입을 방해한다. 스릴러 장르에서 볼 수 있는 잔혹한 치정살인이라든지 살벌한 두뇌싸움 그리고 감독이 반전이라고 내뱉는 장면에서는 관객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영화로서 <설계>는 초보 영화학도가 공들여 만든 듯 한 습작에 담당 교수의 냉소적인 눈빛이 가득하다. 관객의 수준을 너무 얕보았음일까? 스토리와 구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없어 보인다.
오인혜의 낮은 톤과 남자를 유혹할 때의 간드러지는 하이 톤은 너무도 귀에 거슬린다. 더구나 영화의 포스터처럼 '치명적인 매력'으로 등장하는 오인혜는 복합 다중적 이미지인 '민영'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신은경과 함께 출연했다는 것만으로 충무로에서 오인혜의 가치 상승을 기대했다면 아직은 보류해야 할 듯.
또한, 세희 옆에서 묵묵히 그녀를 지켜주고 때로는 해결사가 되어 주는 강지섭의 모습은, 과거 텔레비전 드라마 <모래시계>의 마초적이며 다소 순애보적인 이정재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허나 그랬다면 감독은 그의 눈빛에 걸맞은 연출력과 대사분량에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세희가 의상실의 연하남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가장 극적인 반전의 장치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밋밋한 연기력 때문인지 그는 깊은 산 속의 흙구덩이 속에서 매장되는 것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관객은 정직하다흥행을 만드는 것은 감독도 아니고 시나리오나 연출력이 아니다. 오직 관객만이 흥행을 만든다. 최근의 영화 <타짜>나 <신의 한 수>를 모방한 느와르 풍의 시나리오와 영상, 카메라 워크, 플롯이 존재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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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