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가는 뼈마디로 고통스럽지만 쉬지 않고 죽는 날까지 '그림 그리는 노동자'로서 살다 간 르누아르
(주)피터팬픽쳐스
르누아르는 인상파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젊은 시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화풍은 아직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적이며 따뜻한 화풍이 바로크, 로코코, 고전주의, 사실주의, 낭만주의 다양함을 겪으면서도 인물들과 배경의 색감 등이 사조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그림은 정확하고 사실적이며 구체적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이른바, '살롱'이라고 하는 미술계의 권위적인 심사를 거친 모든 그림들은 그랬다.
마네를 필두로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은 이러한 교조적인 화풍을 배격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데로 그림을 그린다. 비주류를 자처한 이들은 그들만의 일명, '살롱을 거부한 그림들'을 위한 전시회를 열었고 새로운 화풍의 개척자가 된다. 인상파는 구체화에서 추상화로 가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다. 르누아르는 그렇게 생전에 성공을 한듯하다.
영화는 이 모든 풍상을 겪은 빛의 화가 르누아르의 말년을 그리고 있다. 굳어가는 뼈마디,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다리, 탄력과 빛을 잃은 피부를 한 르누아르는 아침부터 해가 떨어지기까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 다행인 것은 그를 찾아 모델, 하녀, 정부 노릇까지 해주는 여인들이 주변에 넘친다. 의자에 앉아있으면 모델이자 하녀인 건장한 여성들이 의자에 앉은 르누아르를 그가 원하는 곳으로 들어 나른다.
바람과 빛과 나뭇잎과 꽃의 색은 자체로 그림의 배경이 된다. 배경 속 주인공인 '데데'가 누드모델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든다. 자유분방하고 독립심과 자존감이 강한 데데는 모델 역할에 충실하지만 현실에 안주한 르누아르의 여인들은 경멸한다. 이제 스물 갓 넘은 처녀의 피부의 빛과 볼륨감이 느껴지는 몸매에 매료된 르누아르는 그녀를 그리고 또 그린다.
영화는 르누아르 말년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매일 이어지는 야외에서의 그림과 모델들, 집안일을 하는 여인들, 르누아르의 두 아들과 갓 태어난 아기, '데데'로 불리는 앙드레가 활기를 불어넣으며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큰 아들 장은 한쪽 다리를 다친 채 병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갓 스물을 넘긴 장과 데데는 곧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르누아르는 자신의 그림 속 이상 적 모델이자 뮤즈로서 데데를 사랑하고 큰 아들은 연인으로서 데데를 사랑한다. 소년이자 사춘기인 둘째 아들에겐 호기심 넘치는 이성으로서 데데가 다가오고.
▲아들 장은 전쟁터에서 다리를 다쳐 돌아오고, 아버지 르누아르는 뼈가 굳어 거동이 불편하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거장으로 후세에 남았고, 장은 후에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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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화면 속 가득한 빛, 프랑스 파리 교외의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경, 그리고 르누아르의 여인들을 마치 르누아르가 그린 화폭의 장면처럼 만날 수 있다. 점점 굳어가는 뼈마디 때문에 고통스러움이 더할수록 르누아르의 미학적 정념은 한없이 고양된다. 연인으로서 자신의 뮤즈인 '데데'를 대하는 아들에게 그가 말한다. "그녀의 가슴선과 피부 빛은 내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절대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야."
이 말은 사실 곧 전쟁터에 재입대 하는 아들에게 할 소리는 아닌 듯하다. 아들뿐 아니라 당시 마을을 배회하는 젊은이들 대부분은 신체에 전쟁의 상처를 담고 있다. 그래도 미(美)만을 추구하는 아버지 르누아르를 대하는 아들 장의 눈빛은 어른스럽다. 오히려 굳어가는 몸으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에 대해 연민이 가득할 정도다.
거장 르누아르의 늙은 모습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또 아들이 전쟁터에 가서 어찌 되든, 또는 사춘기의 아들이 어떻게 지내든 아랑곳하지 않고 모델을 그리고 탐하는 인간 르누아르의 모습도 아름다울 수 없다. 그러나 어쩌랴 후세에 길이 남을 걸작의 창조자의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시비를 걸 수는 없잖은가. 쇠락하는 육체와 욕망하는 내면은 인간사의 비애를 불러일으킨다. 솟아나는 예술혼을 굳어가는 몸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르누아르의 뒤틀린 손을 주무르며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이제 그만 그리고 쉬세요. 고통스럽잖아요.", 르누아르가 말한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예술은 영원히 남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영화가 끝나고 앤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중에 피에르 오귀스트 느루아르의 몇 안 되는 대사와 아들 장의 눈빛과 르누아르가 말한 '티치아노의 그림 속 만지고 싶은 여인'과도 같은 데데(크리스타 테렛 분)의 몸매가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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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지나가지만 예술은 영원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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